[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롱우드가든에서의 사계절을 기록한 책 ‘나는 가드너입니다’의 지은이 박원순 가드너(에버랜드리조트 식물콘텐츠그룹 프로)가 지난해 에세이 ‘식물의 위로’에 이어 영국 큐 왕립식물원과 미국 스미스소니언가든 협업으로 탄생한 DK ‘식물’ 대백과사전을 번역해 지난달 출간을 맞았다.

에버랜드리조트 식물콘텐츠 그룹에서 꽃 축제 연출을 기획하는 박원순 가드너는 평소 일반 대중이 정원과 식물에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책에 목말랐다. 가드너로 바쁜 일과를 보내면서도 꾸준히 식물에 관한 저술과 번역을 병행하는 이유다. 유명 가드너로 변신하기 전 출판사에서 편집기획자로 근무하면서 접한 국제도서전은 “정원이라는 신세계”에 눈 뜨게 해준 계기였다. 그곳에서 만난 전 세계 아름다운 식물 책들은 경이로웠다.

종이책이 저물어가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책의 힘을 믿는 박원순 가드너에게 정원일과 글쓰기는 다르지 않다. 오는 14일(금), 내달 6일(금) 출간 기념 식물학 특강을 앞둔 그에게서 식물과 책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원순 가드너
박원순 가드너

출판 배경은?

첫 직장이 사이언스북스 출판사였다. 주로 식물관련 책을 편집했다. 그 인연으로 DK 시리즈 중 하나인 ‘식물’을 번역하게 됐다. 일반출판사에서 출판하기가 쉽지 않은데 사이언스북스에서 DK시리즈를 독점 계약해 출간하고 있었다. ‘식물’은 연구서나 학술서라기보다 이미지 중심의 편집과 상대적으로 짧은 텍스트로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대중교양서로 접근했을 때 적절한 역자라는 요청이 와 수락했다. 책을 처음 보는 순간 꼭 소개 해야겠다 싶었다. 기획부터 번역까지 1년여 걸쳐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수려한 식물사진과 스토리텔링은 식물세계의 ‘낯설음’과 동시에 놀랄만한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식물을 소재로 한 인문학적인 접근도 인상적이다.

첫 번째 미덕은 이미지다. 큐 왕립식물원과 스미스소니언가든과 제휴하고 프로젝트화해 이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단순 접사촬영이 아닌 배경을 날려 이미지를 따서 작업했다. 솜털처럼 세밀한 부문이 표현될 만큼 고도의 픽셀로 작업해 그림만 봐도 식물정보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설명방식이다. 뿌리, 줄기, 잎, 꽃, 열매 다섯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 설명하고 있다. 책을 통해 식물 구조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꽃 이미지와 핵심적인 설명만 요약해놓으니 한 장만 봐도 광합성 같은 기작이 한눈에 이해된다. 식물은 텍스트와 함께 이미지로 이해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일러스트도 실사와 설명도해가 잘 매치돼있다. 텍스트를 읽고 필드에 나가 공부하는 게 맞지만 필드에 나가지 않더라도 실제 사진을 책 속에서 볼 수 있어 공부하기 좋다.

전문가들은 직업상 공부를 별도로 하고 있지만 일반인에게 개념을 설명할 때는 (대중 상대의) 요약본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전문가들도 참고할 수 있는 책이다.

세 번째 미덕이라면 인문학적 스토리텔링이다. 옛 명화 속에서 식물이 어떻게 표현됐는지 명화를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동서양을 아울러 식물과 관련된 예술작품의 스토리텔링이 있어 식물학의 역사가 단지 식물연구만으로 이뤄져온 게 아니라 과거로부터 여러 문명과 문화 속에서 얽혀 내려왔다는 면에서 식물학 흐름을 이해하는 데도 좋다. 식물세밀화에 요즘 관심이 높은데 세밀화는 단지 관찰만해서 그리는 게 아니다. 영국 빅토리아시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시대 디오스코리데스의 약초학을 보면, 식물의 의학적인 효과나 기능을 밝힌다든지 귀족들이 식물을 그림으로써 자신들의 식물컬렉션을 어떻게 만들어갔는지 이런 것들을 읽어가는 재미가 크다. 만약 이게 빠져있다면 책은 건조했을 것이다. 명화 속 이야기들을 통해 식물도감이 훨씬 풍성해졌다. 마치 살아있는 역사를 담고 있다는 느낌이다. 책 부록이 과별 도감인데 한국판에서는 따로 책자로 편집했다. 식물을 공부하는 사람도 과별 특성을 헷갈려 한다. 대표 70여 종을 소개하고 있는데 식물 분류학 공부하는 데도 유용하다.

이번에 발간된 ‘식물’에 앞서 ‘나는 가드너입니다’ ‘식물의 위로’를 썼다 그 전에 ‘세상을 바꾼 식물이야기 100’을 번역했다. 책을 쓰고 옮기는 일을 직업과 병행하고 있다. 쉽지 않을 텐데 어떠한가.

가드너로 직업을 바꿨어도 책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식물과 정원 관련된 책을 소개하고 정원문화를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가드너가 마찬가지겠지만 가드너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다. 좋은 이야기나 소스를 책에 도입하는 걸 직업과 병행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국제도서전에 가보면 원예도서가 엄청 많다. ‘식물’에 버금가는 예쁜 책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책들이 국내에 왜 소개가 안 될까 생각했다. 출판사 근무할 때도 이런 책들을 소개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비용이나 판매문제 때문에 쉽지 않았다. 가드너로 일하다보니 그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나는 가드너입니다’ 경우, 롱우드가든에서 일 년간의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낸 책인데 많은 분들이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시간과 혜택이 주어졌으니 최대한 활용해야겠다는 계획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 사진도 열심히 찍고 일과 후 기숙사에서 매일 매일 기록하고 이런 것들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출간됐다. 사람들이 정원에서 일어나는 일들, 예를 들면 물의 정원, 수련이야기도 신기해한다. 전혀 이 분야와 상관없는 분들도 책을 읽으며 관심을 갖는다. 책이 정원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는 데 기여하는 것 같다.

출판사가 햐향산업으로 들어서면서 힘들어졌다. 그러나 책이 가진 힘은 있다. 인터넷이나 동영상이 정보를 대체하지만 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은 불변할 것이다. 자신만의 경험을 녹여 책을 엮는 것, 아마 모든 가드너들의 로망일 것이다. 주변에서 부러워하지만 글쓰기가 힘이 들긴 하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자기만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책을 제안한다.

DK 시리즈 '식물' 대백과사전을 번역한 박원순 가드너. 오는 14일 출간을 기념해 식물학특강을 앞두고 있다.
 DK 시리즈 '식물' 대백과사전을 번역한 박원순 가드너. 오는 14일 출간을 기념해 식물학 기초에 관한 식물학특강(민음사 이벤트홀)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소개하고 싶은 주제나 내용이 여럿 있는데 천천히 기획해서 차근차근 갈무리해나갈 것이다. (식물도감에 소개된) 우리나라 야생화를 넘어서서 좀 더 외국에서 많이 활용되는 정원식물, 컬티바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정원 관련된 도감이 소개됐으면 한다. 아무리 좋은 식물이라도 우리나라에 없다는 게 문제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너서리 운영하시는 분들 중 내공가진 분들이 우리나라에 적용할만한 컬티바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소개할 필요가 있다. 모든 걸 담을 순 없겠지만 우디플랜트, 페레니얼플랜트, 애뉴얼플랜트, 쉐이드가든, 수생식물 등 분야별로 세분화해서 깊이 있게 다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를 위해선 텍스트나 내용도 중요하지만 디자인이나 이미지 작업 등 완성도 높은 기획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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