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농업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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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Times] 도시재생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골목길, 유휴공간에 마을정원을 만들어 낡아버린 경관을 재생시키고 나아가 멀어진 이웃과의 관계도 재생시키고자 하는 노력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항상 우리 주변에 다양한 꽃과 나무가 많았으면 하는 생각만으로 새로운 식물들 찾는 일에만 몰두해오다가 2015년 우연한 기회에 맡게 된 마을정원 사업은 아주 큰 발상의 전환의 기회가 됐다.

주변에 많은 꽃과 나무를 심어주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꽃과 나무를 좋아하게 하면, 우리 주변에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훨씬 더 오래도록 많은 꽃과 나무들을 볼 수 있고 더불어 사람들까지 모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도시회복력을 찾는 아주 간단하지만 그 어떤 그린 리모델링 기술보다 효과적인 방안이다.

요즘 많은 사업들 앞에는 ‘주민참여’라는 단어가 붙는다. 완주군 ‘아파트 르네상스’ 주민참여 사업,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주민참여 사업, 수원형 마을공동체 주민제안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마을정원 사업도 그동안 전문가에 의해 진행되었던 설계·시공·감리 프로세스에 다양한 주민들과의 협의 과정이 추가되면서 예상치 못한 난감한 순간들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던 일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조성된 곳을 보고 즐기는 주체는 결국 주민이므로 주민이 원하는 형태의 마을정원이 되어야 오래도록 보존되는 일이니 주민참여의 횟수가 많을수록 오랜 시간이 흘러도 싱싱한 푸르름이 유지되는 방법이 된다.

주민참여 마을정원 만들기는 주민들이 수동적인 단순 참여가 아니라 기초 작업부터 식재 후 관수까지 마을정원사 교육을 통해 직접 조성하고 관리하는 것뿐 아니라 감시까지 하는 마을활동가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심화과정과 재교육과정을 통해 전문적인 마을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면 어느새 주민 하나하나는 가든 프로슈머(Garden Prosumer)가 된다.

1980년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21세기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져 소비는 물론 제품 생산과 판매에도 직접 관여하여 해당 제품의 생산 단계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프로슈머(producer + consumer)의 시대를 예견한 바 있다. 정원을 만들고 소비하는 일들이 이제 정원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정원 교육은 실습교육과 병행할 때 비로소 효과적이다. 직접 흙을 고르고, 식물을 배치하고, 각 자리에 맞는 식물을 심고 식물의 이름표를 붙이는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개인이 아이디어를 내면서 발전시킬 수 있게 된다.

정원을 가꾸는 것이 일이 되면 안 된다. 정원을 즐기도록 해야 한다. 정원을 아름답게 관리하는 것도 하나의 즐기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정원관리를 위해서는 물을 주는 방법부터 중간 중간 식물 상태에 따라 비료를 주는 방법을 알 수 있도록 한다. 더운 여름이나 환경이 좋지 않을 땐 식물이 병이 걸리기 쉽다. 마을정원은 대부분이 화분이나 옥상과 같이 땅에 직접 식물을 심을 수 있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식물의 병해충 관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국 35개주 마스터가드너 교육과정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마을정원사 교육과정 구성 비율표를 봐도 역시 정원식물과 정원관리에 대한 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정원 조성에서 정원설계가들이 갖는 어려움 중 하나는 단시간 내에 주민을 교육하여 설계, 시공 작업을 진행해야하기 때문에 단계마다 다수의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기란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마을정원의 목적을 명확히 하여 마을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이고 마을공동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이고 이를 통해 얻고자하는 마을정원의 가치를 먼저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적에 따른 설계와 이에 맞는 관리방안을 협의해가면서 참여하는 주민과 전문가 모두 보람된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주민참여 마을정원 사업에 다른 잣대의 평가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경관성, 환경성보다 주민교육 참여율, 참여횟수, 쓰레기 무단투기 저감율, 주민간의 소속감·친밀감 등이 기준항목이 될 수 있다.

마을정원의 목적 중 하나로 공동체 활성화라는 말은 빠지지 않는다. 나 자신이 이 공동체에서 만족할 만한 부분이 있어야하고, 공동체 안에서 나 혼자가 아닌 이웃과의 친밀감 속에서 소속감이 생기게 되면 ‘우리’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즐거움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연대감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정리를 해보면서, 최근 사회적인 문제인 미세먼지 저감 문제에 있어서도 마을정원을 만들어 생활주변 환경개선에 앞장서는 연대의식으로 나부터 솔선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면, 마을 한 쪽에 작은 정원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큰 가치를 가진다는 것에 뿌듯하고 보람찬 마음들이 생긴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죽란시사(竹欄詩社)’. 다산 정약용이 집 마당에 대나무로 엮어서 만든 울타리(竹欄)를 만들고 매화나 석류 등을 심고, 뜻이 맞는 선비들과 특별히 날짜를 정하지 않고도 정원의 살구꽃이 필 때, 복숭아꽃이 필 때, 한여름 참외가 익을 때, 초가을 서쪽 연못에 연꽃이 필 때, 국화꽃이 필 때, 첫눈 내릴 때, 또 화병에 꽂아놓은 매화꽃이 피는 것을 함께 보면서 시를 읊던 모임(詩社)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때가 되면 꽃이 피어 나비가 오고 사람들이 모이는 죽란시사와 같은 모습이 진정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마을정원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각양각색의 우리 주민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식물들을 찾아본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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