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Landscape Times] 1월은 무채색의 계절이다. 아, 또 눈 얘기? 아니, 숲 얘기다. 얼마 전 오랜만에 독일 절친의 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런데, 그 집에 가면 그 집 큰아들 때문에 밥 먹고 나서 반드시 카드놀이를 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나하고 카드놀이 해요.”라고 조르며 따라다니던 아이가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밥만 먹고 나면 카드를 꺼내온다. 이번에는 문득 “그런데 한국엔 카드놀이 없어요?”라고 묻는다. 물론 있지. 그러면서 우리의 화투를 묘사해 주었다. 실물이 없으니 기억을 더듬거리며 설명하던 중 여태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는다. 화투의 그림들이 바로 우리의 절기를 묘사하고 있음을. 그걸 왜 여태 몰랐을까. 1월은 송학인데 송학이 무엇인가 하면.. 이러면서 설명하는 중 송학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물론 베를린 변두리에 가면 두루미 군락을 볼 수 있고 적송림도 있지만 우리 송학의 정서와는 너무 다르다. 다음 날 궁여지책으로 그루네발트를 찾는다. 그루네발트는 베를린 도시 숲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곳이다. 두루미보다는 멧돼지를 만날 확률이 더 큰 곳이지만 나름대로 정서가 있다. 도시 숲 산책은 주로 겨울에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자전거가 산책로를 채워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다.

 

베를린 중앙역이나 동물원 역에서 전철 7호선을 타고 서남 방향으로 약 20분 정도 가다 보면 그루네발트(Grunewald)역이 나온다. 하차하면 바로 숲이 시작된다. 이곳에 역사가 처음 들어선 것이 1873년. 본래 군사 목적으로 지었다고 한다. 여러 번 개축했으나 원형은 변하지 않았기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루네발트 숲 자체는 물론 역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오래되었다. 인간이 최초의 촌락을 짓고 살기 이전 베를린 일대는 광활한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숲을 조금씩 들어내고 그 자리에 도시를 짓고 살면서도 지독한 베를린 시민들은 그 중 약 8천 8백만 평을 지켜냈다. 우선 훼손하고 후에 복구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보존한 것이다. 그 덕에 베를린은 독일에서 가장 큰 도시면서 가장 큰 면적의 숲을 보유한 도시가 되었다. 그중 제일 먼저 지켜낸 곳이 그루네발트 숲이다. 1915년에 베를린시 정부에서 프로이센 국유지였던 숲을 매입하면서 베를린 도시 숲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로이센 국유림은 경제림이었다. 그때 숲을 매입하면서 용도를 ‘영구휴양림’으로 변경했는데 그 계약 내지는 협약이 지금도 유효하다. 그것을 후에 번복하지 않아 유효했고 1990년 통일 후에 산림 보호법을 갱신할 때에도 영구림 협약내용을 그대로 수렴하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확실히 보장되어 있다. 지금 누군가 그 숲을 일부 떼어서 개발하자고 한다면 그 누군가는 베를린 시민들에게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때 그루네발트 숲을 굳이 매입하여 도시 숲, 영구휴양림으로 지정한 데에는 이런 연유가 있다. 산업혁명 이후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급속히 팽창했다. 1870년 80만 인구가 1900년에는 불과 30년 사이에 배로 늘어 180만 명이었다. 1915년경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당연히 개발 압력이 생겼고 서남쪽의 그루네발트에 고급 빌라 단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숲이라고 하나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강이 흐르고 호수 여러 개가 연계되어 있어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당연히 돈 있는 사람들이 번잡한 도시를 떠나 그곳에서 살고자 하였고 단지 개발이 시작되었다.

한편, 산업이 발달하고 인구가 폭증하면 환경이 나빠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당시엔 공장 굴뚝에 여과 장치도 없었으므로 도시 공기가 급속히 나빠졌다. 시민들 건강이 사회의 이슈가 되었다. 이에 1893년 1월 베를린시 행정부에서 장관실에 휴양림 지정에 관한 제안서를 기안하여 제출하고 그 목적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날로 지저분해지는 도시 환경을 깨끗이 하고 시민들의 건강을 앞으로 영원토록 지켜주기 위해 넓은 면적의 휴양림 지정이 불가피하며” 등등. 뒤이어 식수 보호를 위해서도 숲 보존은 불가피하다는 학자들의 성명이 따랐다.

도시 숲을 영구히 보존하자는 데에는 토지 투기를 저지하자는 또 하나의 목적성이 있었다. 살기 좋은 동네 그루네발트의 땅값이 오르는 중이었다. 1904년 베를린 일간지 두 곳에서 합동 작전을 펼쳐 ‘그루네발트 개발 반대 서명 운동’을 벌였다. 순식간에 3만 명이 서명했다. 물론 당장 효과는 없었다. 1909년 1월 16일 숲 보호 연맹과 일간지가 협동하여 숲 보호의 날을 개최했다. 언론은 ‘베를린 그루네발트는 정녕 망하는가?’ 등의 선동적 구호를 내걸었다. 그래도 효과가 없었다. 국유지를 처분하기 위해서는 황제의 재가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황태자가 자기 소유의 숲을 팔아 재산을 한몫 챙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시민들이 공화국 체계를 원하던 때였으므로 황실의 행적은 늘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런 차에 황태자가 개발업자들에게 숲을 매각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여론이 흥분했다. 우리의 박근혜와 최순실 사건과 흡사했다. 황태자의 행각이 영구 숲 지정을 오히려 도운 결과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사회적 압력을 견디지 못한 황제가 마침내 국유림을 베를린시에 매각한다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베를린시는 이 넓은 숲을 반드시 휴양림으로 쓰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했고 그 약속을 지금껏 이행하고 있다.

이후 시를 둘러싸고 있는 외곽의 숲 면적을 차례로 더 사들였다. 서남쪽의 그루네발트 뿐 아니라 북서쪽의 테겔과 슈판다우 숲, 동남쪽의 뮈겔 숲, 북쪽의 바르님 숲을 매입하여 1920년, 지금으로부터 꼭 백 년 전 베를린 도시 숲 면적은 약 2만1500 헥타르, 6천만 평에 달하게 된다. 이후 면적이 더욱 증가하여 현재 약 8천 8백만 평의 도시 숲 면적을 보유하게 되었다. 대도시로서는 유럽 최대라고 한다. 명실공히 숲과 호수의 그린벨트로 둘러싸인 도시의 면모가 백여 년 전에 확립되어 지금껏 큰 변화 없이 유지될 수 있던 데에는 당시 영구림 협약이 크게 작용했다. 물론 그 협약을 백 년이 넘도록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독종임에는 틀림이 없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그린벨트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주장은 완전 헛소리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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