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병 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주) 부원장
강서병 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주) 부원장

[Landscape Times] 도시는 물순환 체계를 왜곡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은 산하(山河) 또는 산천(山川)이라고 한다. 볼록한 곳은 산(山)이요. 오목한 곳은 물이 흐르는 하천(河川)이다. 자연이라는 공간에 도시라는 인공구조물이 들어섬으로써 갑자기 많은 빗물이 일시에 하천으로 흘러가 홍수를 유발하거나 지하수가 낮아진다.

도시는 건물과 도로와 같이 빗물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불투수면과 공원·녹지와 같이 빗물이 땅속으로 투수되는 자연지반으로 나뉠 수 있다. 어느 지역의 유출량을 강수량으로 나눈 값을 유출계수라고 하는데 지붕과 도로는 0.8~0.95, 공원·녹지는 0.05~0.25이다. 즉 비가 오면 지붕과 도로에서는 대략 평균 90% 정도가, 공원·녹지에서는 대략 평균 15% 정도가 하천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첨두유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첫째로 인공지반의 표면을 녹화해 유출을 줄여야 하고, 둘째로 토양이 수분을 잘 함유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 만들어진 공원·녹지는 공사할 때 토양의 입단구조가 깨져 물리성이 매우 안 좋아진다. 때문에 포장용수량 즉 빗물 저장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옥상녹화, 투수성 포장재 사용, 침투를 촉진할 수 있는 저영향개발 기법, 토양복원 등을 통해 개발 전과 유사한 물순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도시 물순환 회복은 재해로부터 안전하고 쾌적한 도시를 만드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오목한 디자인 개념도
오목한 디자인 개념도

볼록한 디자인은 우대하고 오목한 디자인은 천대하는가?

그동안 우리는 공원·녹지를 조성할 때 일반적으로 산처럼 성토(Mounding)해 나무를 심는다는 고정관념을 가져왔다. 숲으로 우거진 공원·녹지는 시대의 패러다임이었다. 물이 고이는 촉촉한 습지(Wetland)는 모기가 서식하는, 불량한 경관으로 인식해 왔다. 빗물은 집수정에 모아 가급적 빠르게 우수관을 통해 하천으로 흘려보냈으며, 빗물이 고일 곳이 없어야 제대로 된 설계, 시공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에는 요철(凹凸)이 있다. 산(山)이 있으면 천(川)이 있고, 산지(山地)가 있으면 습지(濕地)가 있다. 습지는 생명을 잉태하고 유지하는 물이 있는 곳이다. 습지에는 수생식물이나 버드나무, 낙우송, 물푸레나무 등 수목을 심으면 된다. 이런 습지가 있어야 생물다양성이 높아지고 도시의 미기후가 개선되어 쾌적한 도시가 된다. 마운딩을 플러스(+) 등고선으로, 습지는 마이너스(-) 등고선으로 보다 적극적인 도입이 필요하다.

보도는 왜 높고, 차도는 왜 낮아야 하는가? 보도의 물은 항상 차도로 흘러야 하는가? 빗물은 집수정과 컴컴한 우수관을 통해 하천으로 흘려보내야 하는가? 중앙분리대는 차도보다 항상 높아야만 하는가? 차도의 물이 보도의 식수대로 흘러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일까?

빗물공화국! 탐나라공화국!

강우현 탐나라공화국 대표는 춘천 남이섬을 연간 300만 명이 찾는 국민관광지로 만든 빗물 상상가이다. 그는 2014년부터 제주 한림읍 곶자왈(나무·덩굴식물·암석 등이 뒤섞여 수풀처럼 어수선하게 된 곳) 10만㎡에 80여 개의 크고 작은 연못을 만들어 왔다. 그는 “물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탐나라공화국 인근에 마을에서 식수로 사용하는 정수장이 있었음에도 연못에 끌어 쓸 수가 없었다. 식수를 연못에 쓰는 것은 당연히 안 되는 일이지 않겠는가? 제주도 중산간 지역은 지하수 관정(管井)을 뚫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관정을 뚫을 수도 없었다. 물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15㎞ 떨어진 마을에서 끌어오는 것이었는데 수도 인입 비용이 무려 15억 원이나 든다고 해 포기했다. 결국, 가뭄 때 연못 유지용수와 조경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1,000톤의 우수저류조를 만들었다. 이런 탐나라공화국의 빗물 활용 철학과 개념을 도시에 적용하면 어떨까?

LID 식생형시설 단면
LID 식생형시설 단면

저영향개발(LID), 미기후, 생물, 웰빙을 고려해야

저영향개발은 Low Impact Development의 약자인 LID로 불린다. 개발로 인하여 변화하는 물순환 상태를 자연친화적인 기법을 활용하여 개발 이전의 상태와 유사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기법으로 정의된다. 자연친화적인 기법은 LID기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빗물이용시설, 침투형시설, 식생형시설로 구분할 수 있다.

빗물이용시설은 다른 말로 빗물통 또는 빗물저금통이라고도 하는데, 「물의 재이용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물재이용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서 수도세를 감면해 주는 등 인센티브를 준다. 도시 옥상에 있는 파란색 물통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눈에 거슬린다. 세련된 디자인과 색상을 가진 모습이면 좋을 것 같다. 서울 노원구 천수텃밭에 설치된 피카츄가 우산을 들고 있는 빗물통이 하나의 사례이다.

침투형시설은 침투트렌치(Infiltration trench), 침투도랑(Infiltration ditch), 침투측구(Infiltration channel), 침투빗물받이(Infiltration ditch culvert) 등과 같이 땅속에 묻히는 시설이다. 지하에 설치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침투기능이 저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식생형시설은 식생체류지(Bio retention)/빗물정원(Rain garden), 식생수로(Vegetated swale), 식물재배화분(Planter box), 나무여과상자(Tree box filter), 옥상녹화(Green roof) 등이 있다. 공원·녹지, 옥상, 가로수, 화단 등이 대상이 된다. LID는 저류 기능도 있으므로 식생형시설에 저류형 생태습지도 포함할 필요가 있다.

환경부는 2016년 LID기법 설계 가이드라인에 이어 2018년 LID기법 조경․경관 가이드라인을 발간하였다. 그만큼 LID에 있어서 조경·경관이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식생형시설의 고려 요소로 토양, 식물, 멀칭, 소재, 안내시설로 제시하고 있다. LID 토양은 10-3cm/sec 이상의 투수계수를 갖고 사질양토, 사양토, 양토를 권장하고 있다. 식물은 토양의 침수빈도, 수분 함유상태에 따라 3개 구역으로 나누어 권장 식물을 달리하고 있다. 권장 식물 팔레트와 사례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어 전공자가 아니어도 알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국내 처음으로 LID와 관련된 조경·경관 가이드라인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도시 열섬현상과 바람길 등 미기후(Microclimate)를 얼마나 개선하는지? 도시민의 정신적, 육체적 웰빙(Well-being)과 사회적 커뮤니티 형성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야생동물의 종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 에 대한 내용이 추가되면 더 좋은 가이드라인이 될 것 같다.

물순환 선도도시 사업에 조경가의 역할을 기대하면서

환경부에서는 대전, 광주, 전주, 안동, 김해 등 5개 도시에 물순환 선도도시 사업을 추진 중이다. LID에서 식생은 우리의 피부에 닿은 옷과 같다. 조경․경관에 따라 거칠거칠할 수도 있고 부드러울 수도 있다. LID는 홍수를 줄이고 오염물질을 정화한다는 기본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시민들의 피부에 와 닿아야 한다.

옥상은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농업 즉 퍼머컬쳐(Permacluture)의 기회요소이다. 토양은 빗물을 저장하는 물탱크이며, 식물과 함께 오염물질을 여과하는 곳이다. 물이 있어야 토양이 살고, 토양이 살아야 빗물을 더 많이 머금을 수 있다. 그래서 토양 동물과 토양 미생물이 중요한 것이다.

LID기법은 홍수 때에는 저류지 역할을 하고 평상시에는 공원 역할을 하는 복합적 기능을 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자연에 근거(Nature-based)한 디자인을 통해 경관적으로 아름답고 생물에게도 이로운 LID가 되어야 한다. 이 분야에 조경가의 역할을 기대한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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