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병  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주) 부원장
강서병 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주) 부원장

한 우물 쓰는 사이가 마을

과거 우리는 바위틈 사이로 물을 괴게 하거나 땅을 파서 돌을 원형으로 쌓아 만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었다. 관정(菅井) 파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수동 펌프에 마중물을 붓고 지하수를 끌어올렸다. 마을은 지하수로 연결되니 어쩌면 같은 물을 마셨다고도 할 수 있다. 한자 마을 동(洞)은 물 수(水)와 같을 동(同)의 합성어이다. 마을 단위로 물을 같이 쓴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한 우물 쓰는 사이가 마을인 것이다.

 

상수에서 허드렛물을 분리하자.

도시화와 산업화로 많은 물이 필요해지자 우리는 댐을 만들어 빗물을 저장하였다. 댐에서 취수해 정수한 물을 상수(上水)라고 한다. 상수는 ‘음료수나 사용수 따위에 쓰기 위하여 수도관을 통하여 보내는 맑은 물’로, 상수도는 ‘먹는 물이나 공업, 방화(防火) 따위에 쓰는 물을 관을 통하여 보내 주는 설비’로 사전에 정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상수는 식수뿐만 아니라 화초에 물을 주거나 불을 끄는데 사용되는 허드렛물을 포함하고 있다. 정수비용 절약을 위해서라도 상수에서 허드렛물을 분리하면 어떨까?

 

빗물! 마실 수도 있다.

빗물에는 마일리지란 게 있다. 산과 들을 거치면서 질소, 인 등 비점오염물질이 섞인다. 도시와 도로에서도 각종 오염물질이 섞인다. 빗물에 포함되어 있는 오염물질의 양이 5mg/L이라면 하류 강에서는 100~300mg/L 정도가 된다. 빗물은 땅에 떨어져 흘러가면서 오염 마일리지가 쌓인다. 빗물이 하천수보다 더 깨끗하다는 의미이다. 산성비도 빗물을 기피하는 요소이다. 비는 원래 약산성을 띠며 대기오염물질과 화학반응을 통해 강산성을 띠기도 하지만 빗물을 며칠 정도 받아 놓으면 먹는 물 수질기준 이하가 된다.

빗물은 우리나라에서는 우수(雨水)라고 하며, 중국, 일본에서는 하늘 위의 물이란 뜻으로 천상수(天上水) 또는 천수(天水)라고 불린다. 비는 인간 세상과 만나는 순간 오염의 길로 접어든다. 우산을 거꾸로 해 빗물을 모으면 하천수보다 쉽게 정수할 수 있고 약간의 정수과정을 거치면 마실 수도 있다.

 

빗물로 만든 하늘물 맥주
빗물로 만든 하늘물 맥주

 

구름에 빨대를 꽂으면 먹는 물이 된다.

비가 땅에 떨어져 비점오염물질과 만나기 전에 빗물을 모으면 어떨까? 구름에 빨대를 꽂아 빗물을 받는 상상을 해보자. 빗물로 밥을 지어먹고 세수도 하고 화초에 물도 주고 수영장을 채우는데 쓸 수 있다. 빗물로 건물을 닦아 미세먼지도 줄이고 여름철에는 녹지, 건물, 포장공간에 뿌려 도시 열섬화 현상을 줄이는데 사용할 수도 있다.

빗물로 맥주도 만들어 마시고 있다. 서울 노원구 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는 천수 텃밭에서 생산한 홉(Hop)과 서울대 빗물연구센터에서 정수한 빗물로 하늘물 맥주를 만들었다. 각종 미네랄이 많은 경수(硬水)인 지하수와는 달리 빗물은 부드러운 연수(軟水)이기 때문인지 맛이 부드럽고 좋은 것 같다.

 

하늘물 문화 운동이 시작되다.

극단 해는 2018년부터 서울시 초등학교 어린이를 대상으로 ‘헬프! 브레인’이라는 빗물 활용 실천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빗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2019년 9월 3일에는 국회 물포럼 주관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물 순환과 물문화 세미나」가 국회에서 열렸고, 10월 13일 제주 탐나라공화국에서 「하늘물 공동브랜드 연구 개발 협약 및 하늘물 선포식」이 있었다.

 

지난 12월 6일 서울대 빗물연구센터는 관정도서관에서 '제1회 하늘물 전시회 및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러한 노력들로 하늘물이라는 브랜드가 가랑비에 옷 젖듯 시나브로 대중에게 각인(刻印)될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에 열린 문화브랜드 선포식 모습.
지난 12월 6일 서울대 빗물연구센터는 관정도서관에서 '제1회 하늘물 전시회 및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러한 노력들로 하늘물이라는 브랜드가 가랑비에 옷 젖듯 시나브로 대중에게 각인(刻印)될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에 열린 문화브랜드 선포식 모습.

하늘물법을 만들자

빗물관리의 법령 정비도 시작되었다. 2019년 6월 13일 물관리기본법에 물 순환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었다. 11월26일에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빗물이용·하수 재이용 등 순환’을 ‘적극적인 빗물관리 및 하수 재이용 등 물 순환’으로 개정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물재이용법과 시·도, 시·군 조례는 빗물이용시설과 중수도, 하·폐수 처리수 등 물 재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정과 도시에서 빗물을 보다 적극적으로 모으고 상수를 대체할 수 있도록 물 순환에 대한 제도 정비와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물의 재이용과 빗물 이용뿐만 아니라 공원·녹지, 옥상 등 그린인프라(Green Infrastructure)와 저영향개발(Low Impact Development)이 포함된 통합적인 빗물관리정책이 필요하다. 여기저기 분산된 빗물과 관련된 법령을 모아 하늘물법을 만들면 어떨까?

 

물맹(물盲)에서 탈출하자

어떤 생각에 물들어가는 것을 ‘동화(同化) 된다’라고 한다. 학문을 통하여 인지(人智)가 깨어 밝게 되는 것을 ‘문화(文化)된다’라고 한다. 오염된 물이라는 빗물에 대한 오해를 풀고 빗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면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문맹, 컴맹, 폰맹이란 말처럼 우리는 물맹(물盲)에서 탈출해야 한다.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철학을 바탕으로 인문학, 문화, 예술,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하늘물 문화운동이 전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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