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이 우보농장 대표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

[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오래전 한반도의 논 경관이 지금처럼 황금벌판이었을까. 황금색 벼에 고정된 우리의 시각에서는 낯선 문답이 아닐 수 없다.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는 “과거 한반도 논의 빛깔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한 마을은 붉고, 한 마을은 황금색, 아니면 검은 벌판이었을 것이다. 그런 벌판들이 다양하게 있었을 것이다”며 경관농업으로서 토종벼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자광도, 가위찰, 궐나도, 버들벼, 조동지, 보리벼, 흑도, 다백조, 북흑조. 100년 전 이 땅에 심긴 토종벼 이름이다. 일제가 한반도를 점령한 1910년 전만 해도 1500여 종의 벼가 농부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많던 토종벼는 일제강점기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수확량에 최적화된 개량품종으로 획일화돼 거의 사라졌다. 현재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에는 토종벼 450여 품종이 보존돼 있을 뿐이다.

이 대표는 잊혀져가는 토종벼에 대한 안타까움에 9년 전부터 우보농장에서 250여 종의 토종벼를 복원해왔고, 내년에도 200여 종을 보태 온전한 토종벼 종자 회복을 꿈꾼다. 그는 수천 년 자연이 키워온 우리 벼에서 도농교류, 생물다양성 보전, 경관회복 등 그 다원적 가치를 발견하며 도시와 농촌,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찾았다.

그 많던 토종벼는 어디로 갔을까…

토종벼의 개성·검은 들판의 기억 소환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는 까락(벼, 보리 따위의 낟알 껍질에 붙은 껄끄러운 수염)이며, 낟알이며 저마다 고유한 아름다움과 개성을 지닌 토종벼 매력에 푹 빠져있다. 일반적으로 황금벌판이라 함은 경관성과 종 다양성이 고려되지 않은 개량품종으로 심긴 풍경을 일컫는다. 그러나 개량종과 달리 토종벼는 각 품종마다 색과 모양이 달라 토종벼의 특성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경관을 연출할 수 있다.

이는 토종벼의 품종별 특성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논에 불을 지른 듯 모습(다백조, 붉은차나락), 꿩이 날아와 앉아 있는 형상을 한 벼(까투리찰), 익으면 황금벌판이 된다는 통설을 깨버리고 검은 들판으로 물결치는 벼(흑저도, 흑도, 흑갱, 북흑조)를 보면, 한반도라는 좁은 공간에서 이토록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과 모양을 만들어 냈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다.

토종벼에는 다수확 품종만을 고집하는 개량종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 특히 토종벼의 유전적 특징으로 토종벼 80%에 달린 긴 까락을 꼽을 수 있다. 까락은 새와 해충의 공격을 막기 위해 진화한 생존전략이다.

이 대표의 토종벼에 대한 애착은 100년 전 농부가 키웠던 쌀이 이 땅 어디에서 자랐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인위적으로 도태된 토종벼에 대한 열망에서 출발했다.

이 대표는 “토종벼는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쌀이다. 수백 년, 수천 년 이어져온 품종이고 지역과 마을의 농부를 먹여 살렸던 쌀이다. 이게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너무 억울했다. 어느 품종이 맛있냐는 얘기는 우스운 얘기다. 존재했다는 자체를 기억해 달라”고 전했다.

이 대표는 이처럼 사라진 토종벼의 기억을 현대로 소환해 도시경관에 활용하고자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황금벌판의 개량종 벼가 아니라 검은 벌판이기도 하고 붉은 벌판이기도 흰 벌판이기도 하고. 그런 다양한 벼들이 도시농업공원이든 공동체농장이든 심긴다면 경관으로서도 훌륭하다. 와 이런 벼가 있구나! 할 것이다. 인위적으로 개량한 색을 내는 게 아니라 과거에 존재했던, 우리나라에서 계속 심겨왔던 벼를 보여주는 것, 의미 있는 일이다.”

경기도 고양시 우보농장의 토종벼 논 경관 ⓒ우보농장
경기도 고양시 우보농장의 토종벼 논 경관 ⓒ우보농장
북흑조
북흑조  ⓒ우보농장

토종벼, 도시농업교육 콘텐츠로써 가치 무한

‘노마드 프로젝트’ 도농공동체로 도시농업 영역 확장

이 대표는 도시농부학교가 밭농사 중심의 도시농업에서 벗어나 벼농사 교육과정으로 확대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도시농업 교육현장에서 논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논이 없는 도시민을 위해 도농교류 방식의 공유농업에서 대안을 모색했다. 논이 없는 도시민과 논이 있는 농부가 벼농사를 매개로 1년에 네 차례 만나 농사 짓고 쌀을 수확해가는 ‘노마드 프로젝트’를 이 곳 우보농장에서 1년 간 실험했다. 씨앗을 파종하고 모내기하고 수확하는 전 과정을 통해 도시와 농촌이 교류하는 도농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이 대표는 “벼농사만이 가질 수 있는 도시농업의 활용 방식이다. 거의 1년간이니 농부는 안정적으로 도정해서 쌀을 전달해줄 수 있다. 도시민과 농부와의 결합방식으로 좋은 모델이다. 이를 전국적으로 키워보고 싶다”고 밝혔다.

아울러 수천 년 이 땅에서 자연에 적응해 나온 다양한 토종벼의 유전적 특성에서 학교텃밭 교육 콘텐츠를 찾았다. 이 대표는 “벼의 색은 자연에 적응해 나온 색이다. 왜 검은 색이고 붉은 색일까? 의문이 들 것이다. 검은 색을 띠는 북흑조는 평안남도에서 주력으로 심었던 벼다. 그 곳 사람들은 검은 벌판만을 생각했을 것이다”며 “아이들은 전국에서 키워졌던 검은색, 붉은색. 흰색. 청록색, 황금색의 벼를 학교에서 심어 그 지역의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전국 16도에서 자랐던 토종벼를 페트병에 각자 벼를 골라 심어보면서 어떤 걸 가장 우선으로 고려해 심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말했다. 동일한 색과 모양의 개량종에서는 불가능한, 자연이 들려주는 소중한 토종벼 이야기들이다.

이 대표는 도시농부들이 벼농사를 실천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써 ‘밭벼’를 추천했다. 밭벼는 글자그대로 물이 없는 밭에서 재배하기 좋을 뿐 아니라 고추나 고구마 등 다른 작물과 사이짓기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논이 없는 도시민의 도시농업활동으로서 밭벼를 추천했다. 고추 등 다른 작물과 사이짓기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래 사진은 페트병에서 씨앗으로 키운 다양한 품종의 토종벼.
논이 없는 텃밭에서 벼농사가 가능한 밭벼는 고추나 고구마 등 다른 작물과 사이짓기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래 사진은 페트병에서 씨앗으로 키운 다양한 품종의 토종벼.

토종벼, 전통농업의 소중한 유산

‘박제된 볍씨’ 아닌 ‘쌀’이어야 살아남아

내년 세계토종벼대회 개최할 것

토종벼는 기본적으로 볏짚 같은 자연부산물을 투입하는 전통순환농법에 어울리는 작물로 화학비료에 걸맞지 않는다. 키가 커 질소질이 과하면 쉽게 쓰러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농법으로 땅의 회복은 물론 가장 오래된 방식으로 벼를 재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토종벼는 살아있는 농업유산이다.

토종벼는 쌀의 품질 기준이 되는 찰기 면에서나 수확량 면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경기도 고양에 있는 1만3000여㎡ 우보농장에는 이 대표가 2009년 농촌진흥청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로부터 나눔 받은 20여 종의 토종볍씨를 포함해 그동안 증식해온 250여 종의 오방색 토종벼들이 자라고 있다. 올해 120여 종의 토종벼를 추가로 증식한 이 대표는 볍씨를 단순 종자 수집이나 보존, 나눔에서 멈추지 않는다. ‘쌀’로 수확하는 농 행위를 통해 오래 전 한반도에 분포했던 품종별 쌀을 현대의 먹거리로 복원하고자  한 것이다. 80여 품종의 토종벼를 키워 쌀로 수확하는 이유다. 

이 대표는 토종벼의 종자보존을 넘어 ‘쌀’ 생산을 궁극적으로 지향한다. “중요한 건 쌀로 나와야 된다. 시민, 요리사, 농부가 선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이 목표다”고 말하는 그는 ‘토종쌀’이 지속가능하려면 볍씨로 박제할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기억하고, 그들의 밥상에 올라 ‘토종쌀’을 이야기할 때 토종벼는 비로소 현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금까지 토종벼 축제만 4회, 테이스팅 워크숍도 20회 거치며, 여러 경로로 대중과 만났다. 벼가 갖는 "근원적이고 자연적인" 본질 때문에 예술가나 작가들과의 협업도 성과다.

끝으로, 인도, 일본, 대만 등 전 세계적으로 토종벼를 키우는 농부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내년 ‘세계토종벼대회’를 개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조경신문]

지난 11월
지난 7일 경기도의회에서 개최된 토종벼 심포지엄에서 전국 토종벼 볍씨 및 토종쌀 100종이 전시됐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잃어버린 토종벼 역사를 조명하고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를 비롯해 전국 토종벼 농부들이 참여해 토종벼의 다양한 멋과 맛을 품평, 재배경험을 공유했다.

 

우보농장 입구
우보농장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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