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Landscape Times]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가 쓴 단편 소설 중에 <페널티킥 선상에 선 어느 골키퍼의 두려움>이란 책이 있다. 1970년에 쓴 것으로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고 난해한 작품이어서 평론가나 문학도 외에는 아무도 읽을 수 없다는 평도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환경평가 제도를 종종 이 소설의 제목에 비유하곤 한다. 환경평가제도 자체가 페널티킥을 앞둔 골키퍼와 같다. 이 불쌍한 골키퍼가 골을 막을 수 있는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또한 페터 한트케의 단편처럼 전문가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 역시 닮았다.

우리 환경평가제도는 사실 페널티킥을 받아내야 하는 골키퍼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아예 선수가 골키퍼 밖에 없다. 축구 경기를 하는데 상대편 팀은 열 한 명의 선수가 모두 뛰고 우리 편은 달랑 골키퍼 혼자 나와 섰다. 골키퍼 혼자 분투하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자. 우선 상대편 열 명의 선수를 제치고 골을 넣어야 한다. 워낙 뛰어난 선수라 골을 넣었다 치자. 골을 넣자마자 재빨리 돌아서서 이젠 상대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 그러다 상대 공격수가 골 앞에 도착하면 얼른 골문에 서서 날아오는 공을 막아야 한다. 그 경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경기에 진 책임까지 혼자서 져야 한다면?

여러 해 전부터 국내에서 환경영향평가를 담당하는 전문가를 도와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내 역할은 물론 독일 내지는 유럽 연합의 제도를 설명해 주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의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익히게 되었고 우리의 제도가 마치 골키퍼 혼자 이끌어 가는 축구 경기를 연상시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주 전에 국내 환경영향평가 전문가들과 독일 전문가들의 만남을 주선하여 함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드러났다. 한국 골키퍼 자신이 혼자 경기에 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음을. 더 나아가서 다른 나라의 경우 11명의 선수가 함께 뛴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축구를 혼자서 하지 뭐 하러 11명씩이나. 이런 반응이었다. 이쪽에서도 11명이 뛰면 경기가 대등해진다는 사실도 인정 않으려 하여 결국 논쟁으로 번졌다.

여기서 상대편은 물론 환경을 해치는 각종 개발 계획이나 사업을 뜻한다. 이들은 막강한 자본의 힘, 사회적 동조, 마구잡이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취약한 제도와 정책이라는 이름의 선수들로 무장하고 마구 공격해 들어온다. 이점은 어느 나라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한국의 경우 이에 맞서 싸우는 선수가 오로지 골키퍼, 즉 환경영향평가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하필 골키퍼에 비유하는 이유는 공격수가 이미 골문 앞에 다다른 시점에서야 비로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면 사실 너무 늦는다. 용도지 지정에 관한 문제를 예를 들어보자. 이는 물론 환경영향평가의 과제가 아니다. 선행한 국토계획이나 도시개발계획에서 환경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판짜기를 하는 것이 옳다. 즉, 배출이 많고 환경을 훼손하는 산업시설이 들어설 수 없는 공간을 선 지정하는 것이 옳다. 주거용지에서 가깝지 않은 곳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생태적으로 가치가 높은 지역은 금하는 것도 상식이다. 녹지도 피해야 한다. 계획을 수립한 뒤에는 공공과 여러 관계자에게 물어 재삼재사 점검해야 한다. 이 과정을 전략환경평가라고 하는데 우리도 전략환경평가제도를 도입했으므로 말하자면 수비수를 한 명 더 고용한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략환경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명목상으로 수비수를 고용한 뒤 벤치에 앉혀두고 있다.

유럽 연합에서는 2014년에 환경영향평가 지침을 대폭 개정하여 전략환경평가의 비중을 높였다. 실무에서도 전략환경평가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배출, 공간소모, 환경 훼손 자체를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건설법, 토양보호법, 수자원보호법, 공해방지법, 산업시설 설치에 관한 법 등 수많은 특별법에서 요구하는 기본적 환경 수준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어 사전 계획 단계에서 이를 일일이 준수하여 환경영향을 최소화한 뒤에 비로소 사업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업 허가 단계에서는 별로 크게 평가할 것이 없어진다. 환경영향평가는 일종의 최종 점검 절차이며 그래도 남아 있는 환경영향은 자연 침해조정 절차를 통해 상쇄 내지는 보상한다.

사전에 방어선을 쳐두지 않았다가 사고가 난 뒤에 수습하려면 비용, 시간, 에너지 등 모든 것이 더 많이 소요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골인된 다음에는 수습할 길이 없다. 골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우길 수도 없다. 그러므로 골문 앞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공을 미리 쳐 내거나 더 좋은 방법은 공격수들의 활약으로 개발 사업 자체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 골키퍼가 별로 할 일이 없어진다. 유럽 연합과 독일의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바로 이 단계에 들어왔다. 즉, 사전 조절의 비중이 커지고 환경영향평가의 비중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유럽보다 먼저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그 이후 사실상 별로 발전한 것이 없다. 제도를 만들었으니 알아서 굴러가겠지 라는 것이 위정자들의 안이한 생각이다. 제도를 만들었으면 그 제도를 만든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여건을 함께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런 제도는 홀로 섬처럼 존재할 수 없고 타 제도와의 연계 속에서 비로소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도 자체를 수시로 점검하여 개선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하는 전문가들은 학창시절 막중한 학습과제를 견디는 데 익숙한 나머지 국가적 과제의 막중함도 홀로 버텨야 한다고 믿는다. 제도를 만든 이들이나 이를 구현하는 이들 모두 같은 생각이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혼자서 그 많은 일을 하다 보면 결과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골이 들어갈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 막중한 과제를 혼자 맡음으로써 형성되는 일종의 권위의식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영역 지키기라는 문제로도 연결된다. 환경평가, 환경보호가 공공의 과제라는 사실은 잊고 나 홀로 지켜낸다는 생각에서 곁을 주지 않게 된다. 이러는 동안 골은 연거푸 들어가고 있다. 혼자 해! 라는 명령체계, 혼자 할 수 있어! 라는 영웅 심리 모두 사회적 무책임의 소산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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