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모스한국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제4차 이코모스포럼을 개최했다.
이코모스한국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제4차 이코모스포럼을 개최했다.

[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농업유산은 정치·사회·경제·문화·생태가 복합적으로 축적돼온 살아있는 삶의 유산이다. 인구절벽과 고령화, 농정 부재로 농촌붕괴가 우려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수 세대에 걸쳐 환경변화에 따라 습득한 전통지식의 계승과 보존 같은 유·무형 농업유산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관심과 대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이코모스한국위원회(위원장 이왕기)가 ‘2019 제4차 이코모스포럼’을 지난달 28일(목) 용산아트홀에서 개최했다.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한국위원회는 사라져가는 농촌경관·농업유산 보존을 위해 올해 학술심포지엄 주제를 ‘문화유산으로서 농촌경관 재발’로 정하고 앞서 세 차례 포럼을 진행한 바 있다.

이날 포럼에서는 길지혜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간사와 배지연 서울시청 주택정책과 주무관이 지난 10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2019 이코모스 학술심포지엄의 주요 동향을 보고했다. 이들 발표자에 따르면, 특히 각 나라의 환경이 다른 조건에서 농촌경관(Rural Landscape)에서의 ‘Rural’의 정의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기존 논의돼왔던 ‘Rural’ 개념이 생산과 연관된 토지와 수공간으로 농업, 어업, 임업 등과 관련한 대상으로 한정한 데 반해, 올해 심포지엄에서는 ‘Rural’의 외연의 폭을 넓혀 비도시지역 전체로 확대해 접근했다. 또한 농촌경관(Rural Landscape) 보존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대부분 유형 자산 중심으로 보존되는 농촌경관 한계를 지적하며 자연과 문화, 유형과 무형 자산에 대한 통합적 거버넌스 체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농업활동의 온전한 결과물로서 농업유산을 보존해온 농촌은 생물종다양성·전통농업 보존, 식량담당, 기후변화 대응 등 다원적 가치를 수행하는 공공재다.  그러므로 농촌과 농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속가능한 지원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국내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청산도 구들장, 제주 밭담을 포함해 총 15 지역이다. 세계농업유산은 2002년 세계정상회의에서 소농과 사라지는 전통농업에 대응하기 위해 FAO(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가 도입한 것으로, 한국에서도 다음 세대에 농업유산을 전승하고 보전, 관리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복원정비시스템 미흡,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 증가, 농업유산에 대한 낮은 인식 등 농업유산 보전관리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백승석 한국농어촌공사 지역개발지원단 차장은 이에 대한 대안정책으로서 ▲지방농업유산 발굴 ▲청소년 농촌체험 교육프로그램 확대 ▲농업유산 보전관리를 위한 규제와 지원을 제안하며 무엇보다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정부, 지자체, 민간 협의로 농업활동의 지속가능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라지는 무형유산 지정과 보존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백 차장은 “가장 중요한 건 농민들이 가진 (농업에 대한)생각과 지식을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다. 농민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생각이 곧 전통적 지식이다. 기록할 때 가장 많이 의존하는 게 농민들의 활동 기록이다. (농민들의)경험과 지식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존중해 줄 수 있는 사회적 문화가 만들어질 때 농업의 전통 지식도 유지될 수 있다”고 전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그린벨트가 해제되면서 신도시개발 등 도시화로 인해 농촌지대가 사라지는 현상 또한 농촌경관의 위협 요소다. 김용진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농촌경관보다 농촌을 보존하는 것이 우선임을, 농촌주변(peri-rural), 도시 근교(peri-urban)에 대해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원희 한국자치경제연구원 국제지원단장은 농촌경관과 전통지식시스템 보존에 대한 연구자와 농민의 입장차를 언급했다. 유 단장은 “농업유산에서 제일 중요한건 농촌경관이 아니라 농업이다. 하드웨어적인 건 변하고 있지만 농민들의 농업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농촌경관도 바뀔 것이다”며 지속가능한 농업유산, 농촌경관을 위한 정책을 국가에 물었다.

성종상 서울대환경대학원 교수·이코모스한국위원회 이사는 “이미 90년대 주체(지역민과 농민)와 객체(전문가) 시각 차에 대한 논의가 외국에서 있었다. (주체의 시각이 들어오면서)이코모스나 유네스코에서 이런 논의 끝에 컬처럴 랜드스케이프(문화경관), 루럴 랜드스케이프(농촌경관)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며 “농부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농촌을 객관적으로 경관을 볼 수 없다. 주체가 중요하지만 맹점이 있다. 주체 간 논의가 안 된 상태에서 객체가 참여하다 보니 한쪽의 불만이 생긴다. 교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놓인 농촌경관(Rural Landscape)의 용어에 대한 합의와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성 교수는 포럼을 마무리하며 “세계유산이 국제적으로 중요한 쟁점이 되면서 유산 가치를 넘어 국제적 역학관계에 놓여 있다. 위안부, 군함도, 난징대학살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세계유산 등재 논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유산에 대해 국가에서는 전혀 신경 안 쓴다”고 꼬집었다.

그밖에 포럼에서는 김윤상 전북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농촌마을 사업 추진 시 농촌의 건축문화자산을 활용한 마을 만들기 사례를 통해 농촌문화재 보존과 활용방안을 발표했다.

한편, 이코모스(ICOMOS)는 전 세계의 역사적 기념물과 유적, 문화유산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적 전문가 NGO 조직이자 UN 산하기구인 유네스코의 공식 자문기구다.

[한국조경신문]

이코모스한국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제4차 이코모스포럼을 개최했다.
이코모스한국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제4차 이코모스포럼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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