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정원의 주인은 “식물”이다
[조경시대] 정원의 주인은 “식물”이다
  • 김승민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9.10.16
  • 호수 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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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민 디자인 봄 대표
김승민 디자인 봄 대표

[Landscape Times] 정원박람회를 통해 새로운 정원의 탄생이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봄보다 꽃이 적은 계절 가을. 오랫동안 고심하며 준비하였을 그들의 열정과 구슬땀으로 갓 순산한 정원은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하다. 10여년 이상 지속된 정원의 조성과 시민정원사 교육 등의 노력은 일반인들에게 정원을 생활문화로 접하게 하였으며, 전공자들에겐 직업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하였으며 정원을 둘러보는 다양한 단체와 모임을 잉태시켰으니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정원을 만들며 전통!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통적인 정원요소와 재료, 메시지는 접근하고 이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식물분야에는 전통식재를 운운하지만 초화류의 경우는 전통식물종에 대한 논의마저 명확하지 않으며 유한한 생명체로서 식물은 시간차로 인한 현존상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전통정원의 실체는 당시대로부터 온전히 존치되어 온 것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경제개발의 시대상을 겪어왔던 경관으로서 그동안 우리는 이를 간과한 채 현존하는 건축물과 일부 주변 경관의 뼈대만을 내세워 전통정원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실체 위에 전통을 하나의 복원 또는 재현해야 할 책임을 느끼며 우리나라 식물에 대한 저서로서 각종 농서와 강희안의 양화소록, 현존하는 정원도, 사대부들의 서화와 서민이 즐겼던 민속화, 조선왕조실록 등 고문헌을 통해 식물의 단편들을 모아 옛정원의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모든 식물은 저마다의 특성으로 피고 지며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장독대의 경비대 맨드라미,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펴 충신으로, 다산의 상징인 열매가 꽉 찬 석류를 두고 유박은 적우(赤雨)라 비유했고 이를 박세당은 촌객이라 이름 붙였다.

식물은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하고 주관적이고 공통적인 상징을 지닌다. 조경공간 안에서의 지피식물은 단순한 기호와 식재의미 외에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구현하는 이상 세계를 담아 정원 조영자의 심상을 대변하였다. 이는 일상의 공간에서 식물을 대하는 선조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확장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상징성 외에도 선조들은 꽃을 자신의 기준대로 품평하였으며 꽃의 특징과 의미를 명확하게 분류하여 품격을 달리 둠으로서 식물에 대한 애착과 전문성을 엿볼 수가 있으며 정원에 담아 의미를 부여하여 식물을 아끼고, 가까이 하며 인격을 수양하고자 하였던 생활문화임을 알 수 있었다.

그중 유박(柳撲, 1730~1787)은 자신의 화원 백화암(百花庵)에서 화훼재배 체험을 살려 정리한 것으로 화암수록 내용 중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는 45종의 꽃을 선발하여 구등품으로 나누었는데 32종이 초화류 및 관목류로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유박이 오랫동안 꽃을 키우고 감상한 체험과 지식의 핵심이 담겨 있어 정원을 조성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새겨 볼 가치가 있다.

또한 정원 조성을 위해 중국에서 태호석을 수입하고 수선화가 유행하여 수입을 금지하는 등 다양하고 화려한 정원을 갖고자 조성하던 시기가 있었으며, 배식에 있어서도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서북쪽에 대나무를 심어 겨울철 북서풍을 막아주고 겨울찬바람에 댓잎이 스치는 소리를 정원에 담았다. 우물가에는 복숭아나무를 기피했고, 큰 나무도 집안에는 기피하였다.

요즘시대에 번잡하게 옛것이냐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자한다. 우리나라 자연환경에 잘 견뎌온 식물이 이 땅의 주인이요. 이 땅에 정원에는 잘 견뎌온 옛 정원의 식물이 정원의 주인일 수밖에 없지 않나 라는 생각과 함께. 현존하는 박제된 전통조경과는 차별된 정원의 모습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방지원도, 꽃담, 전통정자, 화계로 꾸며지는 고정된 전통조경을 이곳저곳에서 본다.

지금 우리가 사진처럼 그대로 재현하여 따라하는 정원이 전통정원은 아니지 않을까. 우리 세대의 중요한 것을 얹어내야 전통이고 영속성이 있는 것이지 않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시대의 경제, 문화, 사상, 종교, 재료 등에 따라 전통요소나 구성은 달라지며 이 또한 전통인 것이다. 그래서 전통은 진화되고 바뀌는 것 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원이 채워지는 공간에 있다. 어디에 정원을 조성하느냐에 따라 지역의 특색이 반영되고 다양한 재료의 선정과 쓰임과 시공 방법 등에 개성이 산다. 현재는 경기도의 정원도 서울의 정원도 순천의 정원도 어디서 많이 본 듯 엇비슷하고 차별성이 미흡하여 아쉽다.

올해 박람회에서 갓 조성된 정원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정원에서 뿜어내는 에너지에 놀라워하며 주의 깊게 보았다. 특별한 재료를 과하게 시도하거나 단순한 공간구성으로 한 컷의 사진을 보듯 압축되어 뻔하고 지루하였으며 식재의 변별력이 없이 유사한 배식과 정리된 식재형태를 찾기 어렵다. 대부분 아파트에 살며 정원을 찾는 이들의 바람 앞자락은 정원에서 얻고자 하는 감응이 차지할 것이고, 자연을 통해 공감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의 동요를 이끌어 내는 어떤 것을 기대하며 들어서는 곳이 정원이 아닐까. 정원 안에서의 감응은 어디로부터 오기에 선조들의 정원과 우리들의 정원은 이다지도 느리고 다른가. 선조들이 정원에서 찾고자 하였던 의미와 가치를 떠올려본다.

[한국조경신문]

김승민 객원 논설위원
김승민 객원 논설위원 red205@hanmail.net 김승민 객원 논설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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