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Landscape Times] 지난 10월 6일, 독일 하일브론에서 173일간의 장정을 마치고 부가(BUGA)가 막을 내렸다.

베를린에서 하일브론은 아주 먼 길이기 때문에 폐막식엔 가보지 못했다. 저녁 6시에서 9시 반까지 오케스트라, 합창단, 관악단, 무용단이 총동원된 다채로운 무대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다는 소식만 들었다. 화려한 폐막식을 예고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작은 물방울’이라는 제목으로 근사한 분수 쇼를 펼치며 막을 내리련다는 소식이 전부였다. 여러모로 하일브론 사람들은 특이한 사람들이다. 마지막 날 눈물을 보인 시민들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 도시가 부가열기에 빠졌었다.

개장 초기부터 꽃샘추위가 덮치고 연일 비가 내렸으며 여름엔 기온이 40를 넘나들었음에도 220만 명 목표를 초과하여 방문객 수 230만 명을 돌파했다. 오프닝 이전에 이미 정기권 5만 장 이상이 팔려 주최 측에서 오히려 놀랐다고 한다. 여태 부가 개최를 꺼렸던 사람들치고는 이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하일브론 사람들은 정말 특이한 사람들이다. 남부의 보수적 가톨릭 진영에서 예외적인 신교도시며 그에 머물지 않고 가톨릭을 비꼬고 빈정거리는 맛으로 사는가 하면, 다른 도시에서 다투듯 녹지조성에 힘을 기울일 때 오로지 산업화를 꾀했고 정원박람회를 개최한 진정한 동기 역시 녹지확충이나 정원문화의 진흥보다는 도시개발 의도가 앞장섰다.

주거단지 네카보겐 2019년과 2030년 비교. ⓒBUGA Heilbronn 2019 GmbH
주거단지 네카보겐 2019년과 2030년 비교. ⓒBUGA Heilbronn 2019 GmbH

하일브론 부가에 대해서는 지난번 ‘고정희 신잡 7 누구를 위해 피는 꽃일까’에서 자세히 소개했으므로 반복은 피하고자 한다. 다만 정원박람회 역사상 최초로 박람회장 한가운데 주거지가 들어선 사건으로 인해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는 점을 다시 떠 올려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건축·도시 관련 전문지에서도 관심을 보여 특집 기사를 실어가며 “이것이야말로 정원박람회의 혁신이 아닌가. 진정한 도시 재생의 원동력이다” 등으로 반응했다. 여태 조경의 성역이었던 정원박람회의 심장부에 깊숙이 파고든 것을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이제 정원박람회의 막이 내렸으니 정원박람회장에서 여름섬(Sommerinsel)과 중간계(Inzwischenland)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주거지가 확장된다. 처음부터 계획되었던 일이다. 사업이 완성되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네카 강과 호수 사이에 자리 잡은 신도시와 이를 둘러싼 녹지띠가 전부일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이 “여기가 정원박람회장이었다고?” 이렇게 물을 것이다.

2013년, 2015년, 2017년 연 3회에 걸쳐 독일 정원박람회는 실패작까지는 아니었어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연방 정원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이 혹시 호랑이 등타기처럼 어렵고 위태한 작업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게다가 고집 센 늙은 호랑이다 보니 등타기가 더욱 어렵다고 여겨 박람회 개최를 포기한 도시도 더러 생겼다. 그렇다고 탈핵 선언하듯 탈정원박람회를 선언할 사람들은 아니다. 이제 혁신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가 이들이 결론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하일브론이 발 빠르게 하나의 해법을 제시해 주었다. 돌파구가 될 조짐이다.

우선 커야 맛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연방 정원박람회장의 규모가 점점 증가하여 평균 100ha에 이르렀는데 하일브론은 겁도 없이 달랑 40ha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것도 모두 정원이 아니라 건축지를 포함하여 40ha다. 2017년 베를린 국제정원박람회의 103ha가 늙은 대호였다면 이번 하일브론은 날렵한 젊은 호랑이였거나 아니면 로데오의 사나운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올라타는 것이 수월하진 않았다. 구 산업지의 재생작업, 오염된 토양 복원, 중세로부터 산업 항로로 이용해 왔던 네카강의 자연화 작업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 작업에 긴 시간과 많은 공을 들였다. 결과물을 보면 레스토랑의 메뉴를 제외하고는 모두 최고의 수준이었다. 규모가 작음으로써 밀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네카보겐과 잔디 조형물로 이루어진 여름섬. 곧 철거될 예정이다.ⓒBUGA Heilbronn 2019 GmbH/Westenberger
네카보겐과 잔디 조형물로 이루어진 여름섬. 곧 철거될 예정이다.ⓒBUGA Heilbronn 2019 GmbH/Westenberger

정원박람회장 한복판에 자리 잡은 주거단지의 명칭이 네카보겐이다. 여기서 호수를 끼고 가다가 네카 강을 건너면 바로 구도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말이 강이고 호수지 거의 미니어처 수준이기 때문에 도보로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네카보겐을 설계할 때 관건이 되었던 것 중 하나가 기존 도시와의 연계성이었는데 그 점에 있어 성공한 것은 틀림없다. 우리 속에 갇힌 동물처럼 정원박람회장 속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도보로 또는 자전거로 녹지를 지나 호수를 끼고 강을 건너 출퇴근할 수 있는 매력적인 주거지다. 다녀온 뒤로부터 계속 눈에 밟히고 생각할수록 들어가 살고 싶은 곳이다. 도시 설계적 해결방안과 미래형의 건축 및 주거개념을 찾기 위해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무려 5년간 토론했다고 한다. 워크숍을 근 이백 번 개최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하일브론 사람들은 정말 특이한 사람들이다. 이런 접근법을 썼으니 결과에 대한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졌고 정원박람회에 애착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도시계획, 시민참여, 건축, 조경과 정원 사이의 다원적 화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호랑이 등타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정원박람회의 성역 심장부에 깊숙이 파고 들어온 도시를 고까워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가 정원에 포위된 셈이어서 지금까지 정원에 큰 관심을 두지 않던 건축가들이 정원에 눈을 뜨고 건축잡지에서 정원박람회에 대한 특집을 내게 된 것 등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시 분리보다는 화합이다. 지난 173일 내내 주변에서 들려오는 부가 소식은 칭찬 일색이었다. 사사건건 트집 잡고 비판하기 좋아하는 독일인들이 이리 칭찬하는 것 역시 드문 일이다.

폐막식에서 하일브론 시장이 다음 타자 에르푸르트 시장에게 부가(BUGA)기를 넘겨주었다. 이미 설계가 마무리되어 시공이 한창인 에르푸르트 부가는 하일브론과 색채가 전혀 다르다. 기존의 에가 파크(ega park)를 보완하고 확장하는 개념이다. 에가 파크는 동부 독일에선 매우 중요한 장소며 칼 푀르스터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그래서인지 칼 푀르스터 정원 복원을 위시하여 정통 정원문화를 제대로 선보이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그 다음번 2023년 부가는 만하임에서 개최될 예정인데 300ha의 구 군사부지 중 55ha를 정원박람회장으로 재구성한다. 이 역시 순수한 정원박람회가 될 것이다. 2023년까지는 이미 수년 전에 설계도가 나와 있어 수정이 불가하지만 2025년 로스톡에서 열리게 될 부가는 하일브론을 본받아 ‘도시+정원박람회’의 개념으로 방향을 잡았다. 때가 되면 자세히 소개하려 한다.

추신: k-pop에 비하면 도저히 못 봐 주겠는 수준이지만 유튜브에서 하일브론 부가춤과 부가송을 감상할 수 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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