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지난주, 뜻하지 않게 파리에 갈 일이 생겼기에 간 김에 라 빌레트 공원을 다시 찾았다.

십여 년 만인 것 같다.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가 출판된 이후 기회 되는 대로 책 속의 장면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일종의 현장 검증인 셈이다. 마음 같아서는 카메라를 둘러메고 본격적 100장면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여의치 않기에 기회를 보아 두서없이 다닐 수밖에 없다.

파리의 라 빌레트 공원은 99번째 장면이었다. 1984년 이곳에서 ‘공원 도시’라는 혁신적 개념이 탄생했다. 20세기 말 21세기를 앞둔 시대의 공원은 도시 속 녹색의 별세계가 아니라 그 자체가 도시며 도시가 곧 공원이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싹트기 시작한 새로운 패러다임이었고, 라 빌레트 공원은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의 해법이었다.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 - 건물, 녹지와 정원, 문화시설, 쇼핑센터, 식당과 카페, 운동공간과 놀이터를 모두 집합시켜 모자이크 방식으로 이어 붙여 형성된 장소다. 그러므로 음악도시 및 테크닉 박물관 등의 대규모 건축을 비롯 극장, 전시관, 재즈 카페 등의 크고 작은 건물이 요소요소 들어섰다.

한 가지 결정적으로 빠진 것이 있다면 주택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는 도시의 역동적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수많은 실업 청년들이 공원의 벤치에 누워 자는 모습을 보며 문득 저 벤치가 주택 대용인가 싶기도 했다. 물론 공원 주변에 바로 주택가가 있고 거기서 내 집 마당에 내려서듯 바로 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공원 도시라는 개념이 완전히 구현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기존 개념의 해체와 새로운 개념의 탄생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하일브론에서 열린 연방정원박람회는 공원 도시의 개념이 한 걸음 진보했다고 볼 수 있다. 공원 중앙에 주택 단지를 세우고 사람들이 이미 들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라 빌레트에서 모자랐던 점이 보완된 것이다. 이런 게 진정한 발전이 아닐까.

라 빌레트 공원의 가장 큰 특징은 ‘폴리Folie’라 불리는 26개의 선홍색 조형 시설물이다. 폴리는 주로 풍경화식 정원에 만들어 세웠던 소형 건축물들을 말한다. 작은 파빌리온이나 신전 등 뚜렷한 용도 없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존재했던 것인데 베르나르 추미는 이 폴리의 개념을 재정의하여 용도를 부여했다.

공원 전체를 바둑판처럼 격자형으로 나눴는데 각 격자가 도시구역을 뜻하며 각 격자의 교차 지점에 신호등처럼 폴리를 하나씩 세운 것이다. 카페, 간이 식당, 매표소, 극장 입구 등으로 용도가 모두 다르다. 말하자면 도시의 문화와 상업시설이 집중한 ‘몰mall’을 26개의 단위 요소로 분해하여 공원 전체에 분산 배치한 것이다. 그래서 해체주의 작품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번 방문 길에서 정작 보고자 한 것은 10개소의 테마 정원이었다. 라 빌레트에 테마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거울정원, 트렐리스 정원, 드래곤 정원, 대나무 정원, 바람과 모래언덕 등등. 그동안 어떻게 성장했을까. 가슴이 뛸 정도로 궁금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나무 정원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든 정원 앞에 서서 혹은 정원 속을 거닐며 그저 아연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근사하더라도 좋은 소재와 완벽한 마감 그리고 적절한 식물 적용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자라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성장형 정원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

물론 관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처음 시공할 때 고품질의 소재를 써서 매우 정밀하고 견고하게 천천히 완성하면 후에 예산이 모자라 관리가 소홀하거나 요즘처럼 기후변화로 극심한 건조기가 지속하여도 본연의 빛남이 크게 손실되지 않는다.

 

라 빌레트 공원의 트렐레스 정원. 트렐리스를 돋보이게 하려면 포도나무가 아니라 덜 지배적인, 가벼운 느낌의 덩굴식물을 적용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 점을 제외하더라도 조악한 소재를 적용한 까닭에 트렐리스 디자인의 장점을 살리지 못해 아쉬웠다. © 고정희
라 빌레트 공원의 트렐레스 정원. 트렐리스를 돋보이게 하려면 포도나무가 아니라 덜 지배적인, 가벼운 느낌의 덩굴식물을 적용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 점을 제외하더라도 조악한 소재를 적용한 까닭에 트렐리스 디자인의 장점을 살리지 못해 아쉬웠다. © 고정희

 

먼지를 뒤집어쓰더라도 빛나는 보석은 광채를 잃지 않는 법이다. 라 빌레트의 정원들은 보석이 아니라 보석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빛이 탁해지고 깨지고 망가지는 인조석들이었다.

많은 정원을 빠르게 완성하는 것이 관건이 아니다. 퀄리티와 완성도를 고려하여 충분한 예산을 잡아 하나씩 점진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방법을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컸다.

거의 모든 정원에서 식물보다는 조형물과 시설물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더더욱 재료의 퀄리티와 완벽한 마감이 아쉬웠다. 작가적 의도만 확실하다면 시설물이 지배해도 좋고 식물이 지배해도 좋은데 이때 중요한 것은 비율과 조화감이다.

시설물이 지배하는 경우 식물을 조심스럽게 써서 시설물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좋고 식물이 주인공일 경우 시설물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라 빌레트의 테마 정원에서는 식물과 시설물이 서로 헤게모니 싸움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둘 다 모두 과다하게 적용하여 충돌을 금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결과는 혼돈이었다.

예를 들어 포도나무 트렐리스 정원Jardin de la Treille의 경우 – 포도나무와 트렐리스를 둘 다 좋아하는 까닭에 부지런히 찾아갔는데 – 포도나무 줄기의 검은 색과 금속제 트렐리스의 백색 사이의 대비 효과를 누리겠다는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서로 굵기가 다른 철봉을 리듬감 있게 비스듬히 세워 멋을 주었고 철봉마다 포도나무가 감고 올라가게 했으며 하부에는 9단의 테라스에서 모두 90개의 작은 캐스케이드가 물을 쏟는, 그야말로 파라다이스를 닮은 정원이 될 수 있었다. 다만 포도나무의 성장 행태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그리고 값싼 철봉의 과다한 배치와 지붕을 덮은 그물구조의 조악함 그리고 철봉과는 전혀 이질적인 테라스 판석 소재 등으로 인해 신선한 대비 효과보다는 소재들의 혼란스러운 아우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라 빌레트 공원을 뒤로하고 역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물주께서 각 문화권에 일정 분량의 정원 예술성 총량을 배당해 주었다고 가정한다면 프랑스의 경우 바로크 시대에 너무 한꺼번에 다 써 버린 것이 아닐까?

[한국조경신문]

 

섬정원 jardin des îles으로 가는 길. 이런 장면이 자주 눈에 들어 왔다. © 고정희
섬정원 jardin des îles으로 가는 길. 이런 장면이 자주 눈에 들어 왔다. ©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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