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식물의 아바타들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식물의 아바타들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19.08.21
  • 호수 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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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Landscape Times 김진수 기자] 식물이나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능력과 기술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자연에는 신기하게도 댐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동물이 있다. 바로 비버이다. ‘바다삵’이라는 별명을 가진 쥐처럼 생긴 포유류 비버는 작은 하천에 사는데, 강 속에 둥지를 만들고는 둥지 주변에 나무를 잘라서는 댐을 쌓는다. 댐의 길이는 무려 20∼30m에서 650m까지 되고 규모는 몇 천 평방미터나 된다. 비버는 왜 이런 댐을 만들까? 작은 개울가에 살면서 나뭇가지 껍질이나 새싹, 수초, 나무뿌리, 산딸기 등을 먹는 비버 입장에서는 먹이가 금방 떨어져서 더 먼 곳으로 먹이를 구하러 가야 한다. 그래서 댐을 만들어 놓고는 수중에서 쉽게 이동한다.

비버는 물가를 길게 확장해서는 힘들게 육지를 넘나들지 않고서도 쉽고 안전하게 먹이를 얻는다. 어떤 교육의 도움도 없이 비버는 생득적으로 이 일을 잘 해낸다. ‘이기적 유전자’의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는 비버의 댐을 ‘확장된 표현형’이라고 했다. 어떤 생물의 형태나 행동을 유전자의 표현형이라고 하는데, 비버의 몸과 행동 또한 유전자의 표현형이고, 비버가 만들어낸 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표현형의 확장이라는 주장이다. (새의 둥지나 거미가 만든 거미줄도 확장된 표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비버를 댐 만드는 토목공으로 숙련시킨 거다. 비버가 유전자에게 정신지배 당한 꼴이다.

생존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개미는 곤충 중에서 가장 용감하고 현명한 종 중 하나다. 개미가 뭉쳐서 움직이면 웬만한 다른 곤충들은 꿈쩍도 못한다. 개미의 용맹함에는 덩치 큰 포유류까지도 제압될 지경이다. 그런 개미를 중간 숙주로 활용하는 교활한 어떤 흡충(뇌충)이 있다. 이 흡충은 최종 숙주에 도달하려고 중간 통로로 개미를 이용한다. 개미의 식도하신경절에 잠복해서는 개미의 행동을 지배하는 방식을 쓴다. 이 뇌충에 감염된 개미는 추워져도 둥지로 돌아가는 걸 잊어버리고는 풀줄기의 꼭대기로 올라가서는 잠자는 듯 가만히 있다. 그러면 풀을 먹으러 나온 양이 풀과 함께 개미를 먹게 되고, 뇌충은 최종숙주인 양의 몸속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한다. 용감한 개미도 일개 흡충에게 이렇게 어이없는 정신지배를 당한다.

이 방면에서는 식물도 비버의 유전자나 뇌충 못지않다. 개미와 아카시아의 공생은 생물계의 전설이다. 곤충과 초식동물로부터 연약한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아카시아 중 어떤 종은 개미를 주둔군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땅 속이나 공중에서 지원군을 부르면 그들이 올 때까지 침략을 당하면서 참아야 하는데 그 피해도 크다. 하지만 주둔군이나 경호원을 고용(?)하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언제든 마음놓고 지낼 수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사는 어떤 아카시아 종들은 개미들이 살 집과 양식을 고급으로 마련해서 주둔군을 대접한다. 의리로 똘똘 뭉친 개미들은 이에 즉각 보답한다. 아카시아에게 그늘을 만드는 식물들은 물론이고 아카시아를 먹으러 온 곤충과 초식동물들을 가차 없이 몰아낸다. 그래서 아마존 밀림 한가운데에는 아카시아 나무 주변이 휑하니 비어있는 지역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동안 이런 현상들은 식물과 아카시아의 살가운 유대 정도로 인식되었다. 19세기 중반의 이탈리아 식물학자 페데리코 델피노(Federico Delpino, 1833~1905)는 식물과 개미의 협력관계에 대해 ‘미르메코필리(myrmecophily)’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미르메코필리’란 그리스어로 개미(mύrmex)와 친구(philo)의 합성어이다. 식물과 개미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나누고 돕는 동등한 협력의 윈윈(win-win)의 관계임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연구는 이제까지의 이러한 공생관계는 환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아카시아이다. 아카시아 나무의 생산품인 꽃꿀은 개미를 끄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알려졌는데, 이 꽃꿀 속에는 동물의 신경계에 중요한 조절 기능을 하며 신경세포를 자극할 뿐 아니라 행동까지 통제하는 성분이 있다는 것이 주목되었다. 알칼로이드를 비롯해서 GABA, 타우린, β-알라닌 등이다.

이 중 GABA는 척추동물이나 무척추동물(개미가 이에 속함)에게 작용하는 중요한 신경전달 억제물질이다. 그래서 개미가 꽃꿀을 섭취하고 농도에 변화가 생기면 행동이 확 달라지게 된다.꽃꿀에 함유된 알칼로이드는 개미의 인지력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다. 한 번 이 성분을 섭취하면 니코틴, 카페인처럼 강한 중독성에 노출된다. 이렇게 아카시아는 꽃꿀 내의 물질생산을 조절하여 개미의 행동을 통제한다. 신경활성물질의 양과 질을 조절하는 기술을 가지고 개미의 공격성이나 이동 속도까지 일일이 통제하고 간섭한다.

이렇게 되면 이미 동등한 협력관계라고 볼 수 없다. 꽃꿀에 중독된 불쌍한 개미는 아카시아의 ‘아바타’ 같은 존재가 되어 일거수일투족을 아카시아의 의도대로 행동하고 살게 된다. 용맹한 개미가 이제는 아카시아의 노예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미 신세를 안쓰럽게 여기고 있는 인간은 또 어떤가? 인간 또한 식물 화학성분의 중독자로 식물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누구는 캡사이신 중독이고 누구는 니코틴 중독이고 누구는 카페인 중독이다. 식물의 이러한 계략의 결과로 인간도 개미처럼 식물을 지키고 키우고 품고 애지중지 야단이다. 인류라는 종은 그 긴 세월동안 산에서 들에서 논에서 밭에서 정원에서 또는 집안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식물을 가꾸고 숭배하고 아주 난리법석으로 살고 있다. 식물의 영락없는 ‘아바타’가 되어서 말이다. 우리 모두는 식물에게 놀아나고 있다! 언제쯤 비버의 유전자보다, 뇌충보다, 훨씬 더 겁나는 식물에게서 해방될 날이 올까?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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