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정원에 무엇이 있나? - 다섯 번째 이야기
[조경시대] 정원에 무엇이 있나? - 다섯 번째 이야기
  • 김승민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9.08.21
  • 호수 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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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정원의 주인공이다”
김승민 디자인 봄 대표
김승민 디자인 봄 대표

[Landscape Times] 첫 회 기고에서 “지금은 정원을 이야기하는 시대”라고 말문을 열었는데 다음 주면 어느 방송사는 예능프로그램으로 정원을 주제로 웃음을 주는 시대에 도착해 있다. 제작진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무엇을 보여줄 것이며 시청자들의 반응 또한 예측할 수 없지만, 정원을 유쾌한 웃음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시대가 왔음을 방송촬영에 참여하며 알게 되었다.

그들의 관심이 우리 분야의 어느 지점을 짐작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없음에 이견이 없으나 현실감응력이 빠른 방송사가 정원을 이야기하는 시대라고 전하는 빠른 전파력을 기대하며, 그동안 조성된 정원을 관찰하고 조성한 실무경험과 강의 노트를 토대로 “정원의 주인공은 식물이다”를 주제로 소통하고자 한다.

앞서 정원에 무엇이 있나 이야기하며 정원에서 “식물은 정원의 주인이다”라고 하였다. 정원은 식물을 기르고 가꾸는 장소성이 크다. 식물을 기르고 생산하는 장소로써 농장의 수익성 개념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식물을 기르거나 식물에 둘러 싸여 있으면 나타나는 뭔가 특별한 효과는 이미 알려져 있다. 식물이 많이 보이는 입원실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투여랑 감소, 원예활동을 통한 퇴역군인의 재활효과, 원예활동을 하는 학교에서 유리창 파손의 감소, 마을정원(community garden)의 활성화에 의한 지역사회 내 공동체 의식 증가 및 경범죄율 감소 등 식물 가꾸기를 통해 나타나는 학습증진효과 및 몇몇 교육적 심성(상상력, 관찰력, 분별력, 집중력, 계획성)의 배양, 회사 내 정원을 꾸몄을 때 나타나는 능률향상, 환경효과, 저렴한 운동효과 등 수없이 많은 연구결과가 그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정원일의 즐거움’에서 ‘가드닝을 할 때야말로 모든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식물 기르기 다시 말해 가드닝의 예를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찾을 수 있다. 15세기 조선의 인재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계기”라 하였으며, 16세기 회재 이언적의 ‘회재집’에 “꽃을 심어 대자연의 이치를 더듬고(種花探造化)”라 하였으며, 17세기 독석 황혁은 ‘독석집’에서 “천성을 기르는 것과 꽃을 기르는 것은 다르지 않다(養性養花非二法)”. 다산 적약용은 ‘여유당당전서’에서 “생존문제를 해결하는 것(養口體)이 급선무이기는 하지만 꽃을 보고 기르는 것은 마음을 기르는(養神心) 일로서 아무리 과도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정원은 어떠한가.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멋지고 이상적인 것도 좋겠지만 영속성 있는 정원이 조성되어 유지되려면 우리는 지금 정원사급의 조경가가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조경가급의 정원사가 필요한 것일까? 정원은 식물을 가꾸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정원에는 정원사가 있으며, 정원사와 조경가는 역할이 구별되고 다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매년 지자체별 예산으로 조성된 정원과 새롭게 조성되는 정원을 계절별로 꾸준하게 찾아다니며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그 후 주로 정원을 조성하는 이웃한 전공자들에게, 조성된 정원을 관리하며 조성한 사람보다 그 정원을 오랜 기간 경유한 관리자들에게, 또한 일반인들에게도 혹은 정원을 준비하는 후배에게, 때로는 동일 분야 선배에게 혹은 스승에게 되묻곤 한다. 정원 안에 주인공은 무엇입니까? 정원에서 없어도 되고 빼버려도 된다면 무엇입니까? 라고.

또 그들에게 묻는다. 끊임없이 나에게 묻는다. 정원에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원에서 무엇을 보는가?  정원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정원과 어떻게호흡할 것인가?

이른 봄 아직 덜 녹은 눈덩이 사이로 노란 꽃봉오리를 내미는 복수초에서 대지를 가르는 식물의 기상을 엿볼 수 있으며, 여름 불볕에 쨍한 햇빛을 받을수록 화색을 발산하는 배롱나무와 마타리는 더위 속에서 볼 수 있는 꽃이다. 가을이면 벼과와 사초과 식물들은 바람의 연주에 맞춰 춤의 향연을 뽐내며, 한겨울 시리도록 찬바람에 화려한 색감으로 돋보이는 수피는 걷던 나를 몇 번씩이나 길섶에 멈추어 뒤돌아보게 하였다. 식물의 색들은 어떠한가. 봄에 노란 꽃이 많이 피는 이유는 노란색에 곤충이 쉽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정원에는 계절마다 다양한 식물들이 나고 지며 속삭이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정원의 주인은 식물들에 응답하고 어루만지고 염려하며 기대어 살아간다. 이것이 우리가 보고자 하는 정원이지 않겠는가. 잠시라도 발길과 눈길을 붙잡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는 나그네처럼 떠나보내고 잊히는 정원이 만들어지고 있지는 않았는지 정원의 시대에 생각해 본다. 정원을 조성하려 참여한 전문가와 정원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담당자는 식물을 살리는 정원을 조성함이 첫째능력일 것이다. 정원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느냐 듣지 못하느냐가 들으려는 관람자의 몫인 것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정원에서 시설물이며 무생물이다. 시설물이 정원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설물(무생물)이 정원의 주인공이 되고 중심이 되더라도 식물이 함께 들어갔을 때 식물을 살리는 정원을 만들어 가자는 주장이다. 자세히 볼수록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변해가는 식물에 비해 시설물은 정원에서 쉽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원박람회에서 시설물이 과한 정원에 쏠림은 착시현상이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재방문하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게 된다. 정원을 아름답게 빛나게 하는 주인공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찰나마다 다른 식물에 비해 변화 없이 한곳에서 지루하게 고정된 상태로 낡아가는 시설물은 쉽게 싫증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정원 안에서 과한 포장과 시설물 위주의 정원은 지금의 현실에서 조금은 거리를 두자. 현실에서 실험적이거나 이상적인 정원으로 관리인이 있을 법한 손이 많이 가는 정원은 아직 이르지 않겠는가.

정원을 가질 수 없는 이들에게 정원을 즐길 수 있는 공용의 정원을 만들어 주고, 자신의 정원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다양한 면적과 형태의 정원을 제시해 주고, 정원을 조성하는 것과 짝을 맞추어 정원이 조성되는 인근 지역 주민들이 정원 가꾸기의 방법과 정원일의 기쁨과 즐거움을 알아가도록 지속적인 교육을 동반해야 함은 정원출품자와 담당자의 두 번째 능력이다.

정원의 시작은 가드닝이다. 가꾸고 매만지는 손길이 불필요하고 처음처럼 그대로 보존되고 찾을 때마다 아름다운 정원,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느낄 수 있는 정원이 있을 수 있을까? 식물을 기르는 의미를 이해하고 식물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정원을 완성시킬 수 있다. 식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식물이 생육할 수 있는 기반과 환경을 철저하게 고려하고, 식물의 크기별·계절별·화색의 정리·성상별 조합·향기의 배치·서식 선호도를 점검하고, 잡초 예방을 위한 다양한 환경의 식재지 등을 고려하는 과정이다. 이는 전공학과 학습으로 턱없이 부족하고 실무를 통해 스스로 공부하고 경험하고 체득해갈 것이며 정원에서 평생 해나가야 할 일이다.

재차 강조하자면 정원을 가꾸는 방법도 정원을 보는 즐거움도 정원의 가치도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습득된다. 정원을 조성하고 정원을 가꾸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생명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도시의 통합적인 시스템과 유사하지 않겠는가. 관련 학과를 이수한 전공자도, 경험이 축적된 설계가도, 실무에 능통한 시공경력자도, 식물재배 등 한 분야에 오랜 기간 종사한 전문가라도 여러 공종이 겹치는 정원에선 초보자이다. 우리를 부르는 정원의 주인공을 보기위해 우리는 정원으로 간다. 식물의 부위에 따라 새싹, 잎, 꽃, 열매, 단풍, 줄기, 뿌리 등의 아름다움이 서로 조합하여 우리의 정원을 푸르고 싱싱한 식물들이 지키게 하자.

정원은 좁은 공간을 아름답게 연출할 수 있는 숙달된 미적 감각, 오랫동안 쌓인 지식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고차원적인 노동이다. 정원사의 철학이 담길 때만이 비로소 ‘정원의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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