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기자
이수정 기자

[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걸리버의 여정을 통해 근대 영국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조나단 스위프트가 현대에 살았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작가가 당시 과학에 대한 불신이 깊었는지 소설 속 허구의 공간 라퓨타에서는 오이에서 추출한 태양광으로 식물을 키우는 장면이 나온다. 생명을 기계장치로 키울 수 있다는 오만함을 그린 날카로운 알레고리다.

최근 스마트팜에 대한 열기를 반영하듯 얼마 전 킨텍스에서 열린 케이팜귀농귀촌박람회장에도 ‘수직농장’, ‘어그테크’, ‘디지털농업’, ‘빅테이터’라는 단어가 여러 곳에서 들렸다. 스마트팜이 기후변화, 식량생산의 대안인 것처럼 떠들지만 정작 스마트팜에서 배양해서 키울 수 있는 작물은 아직까지 엽채소류에 한정돼 있다. 에너지를 과용해 키우는 스마트팜이나 수직농장이 정작 기후변화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식물 ‘공장’ 아닌가.

농업의 미래는 첨단과학에만 있지 않다. 기후변화 대응과 먹거리 해결을 위한 방편으로서 ‘식물공장’이 아닌 도시의 먹거리 숲에 주목해보자. 이는 도시농업공원은 물론 도시텃밭에서도 실현 가능하다. 그동안 텃밭 대부분은 단순히 먹거리 위주로만 재배돼 경관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겨울이면 황량한 경관이, 또한 봄이면 아직 작물이 자라지 않아 미세먼지나 황사에도 취약하다는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환경오염과 에너지 위기 시대에 지속가능한 생태정원의 방법론이자 퍼머컬처의 한 분야로서 먹거리 숲으로 접근하면 이러한 골칫거리는 해결될 수 있다. 특히 경작면적이 제한된 도시에서의 조경과 먹거리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자연에서 발견한 식물군집을 모방해 식재하는 먹거리 숲에서는 곡물이나 일년생 채소가 아닌 질소를 고정하는 교목, 열매를 선사하는 관목, 그리고 이 나무들 하부에는 채소나 허브 같은 식용식물이나 약용식물, 관상식물이 혼식된다. 숲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기후변화에 강해지며 친화성 있는 식물로 조합하는 길드를 통해 도시에서도 여러 형태의 먹거리 수확이 가능하다는 점은 분명 이점이다. 다양한 종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상생하는 식물군집으로 설계하기 때문에 곤충과 야생동물이 공존하며 종다양성 면에서도 긍정적이다. 더불어 빛과 토양, 생육특성을 고려한 조밀한 식재, 두둑이나 나선형의 텃밭으로 설계해 생산성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먹거리 숲이나 퍼머컬처 디자인이 지속가능하려면 먼저 부지가 확보돼야 한다. 지난 6월 경기도가 대대적으로 홍보한 1호 공영도시농업농장도 LH가 소유한 유휴지를 한정적으로 이용하므로 건물이 들어선 이후에는 사용불가다. 순천시가 2016년 전국 최초로 도시농업을 테마로 조성한 신대도시농업공원도 동부권 제2청사 신축으로 운영이 중단된다. 먹거리 숲은 도시농업의 비전과도 맞닿는다. 도심 속 먹거리 숲이 지속하려면 지자체의 장기적인 정책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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