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요즘 뮌헨 바이헨슈테판 대학 조경학과, 식물적용학 전공생의 학사 논문 한 편을 심사하고 있는 중이다. 칼 푀르스터 재단에서 격년제로 대학생 논문상을 주고 있는데 그 논문 심사위원회에 내가 속한 관계로 2년 마다 학생들 졸업논문을 읽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각 대학에 공문을 보내면 교수들이 우수 논문을 한 편 선정하여 재단에 보낸다. 3인으로 구성된 재단 내부 심사위원회에서 논문을 돌려가며 읽고 심사평을 쓴 뒤 토론회를 거쳐 최종 선발한다. 상금이 2천 유로, 원화로 환산하면 2백 5십만원이 넘는 금액이니 학생들에겐 큰 상이다. 칼 푀르스터 서적에 대한 판권을 독점하고 있고 22종의 전문잡지를 출간하는 울르머 출판사Ulmer Verlag에서 상금을 제공한다.

그런 연고로 지금 위의 논문을 읽는 중인데 국내에서는 식물적용학이란 용어가 생소할 듯싶다. 더욱이 „고정희의 독일정원이야기“에서 소개한 뮌헨 연방정원박람회장(2005)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기에 이 자리에서 잠깐 소개할까 한다.

2005년도 연방정원박람회장이 „리머파크Riemer Park“로 이름을 바꾸고 시민공원이 된 지도 15년 가까이 되어 간다. 당시 실험적인 식재 기법을 일부 도입하여 이곳 학계에서 화제가 된 곳이기도 하다. 200 헥타르가 넘는 광대한 면적이다. 이곳을 식물로 채우는 것 자체가 보통 과제가 아니다. 하이너 루츠Heiner Luz라는 이름의 조경가가 새로운 숙근초 식재기법을 개발한 것이 있는데 „주도 식물 형성의 원칙Principle of Aspect Forming Plants“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겠다.

수목과는 달리 성장이 매우 빠르고 변화무쌍하여 조경가나 정원사의 도전과제가 되는 것이 숙근초 식재설계와 관리다. 정원박람회를 찾는 관람객들 대부분이 아름다운 꽃을 기대하기 때문에 일년초는 물론 다년생 숙근초를 대량으로 심어 주어야 만족한다. 그 넓은 면적을 채우기도 급급한데 절기마다 양상을 달리해야 한다. 게다가 시장에 나와 있는 숙근초의 종과 품종이 수만에 달하므로 선발의 고충 역시 크다. 하이너 루츠는 이십 여년 간 숙근초와의 씨름 끝에 „초기 투자 비용이 적게 들고 관리가 용이하면서도 오래 그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기법을 개발하여1993년 슈투트가르트 국제정원박람회에서 조심스럽게 첫 선을 보인 바 있다. 이후 결점을 계속 보완해 나가다가 2005년 뮌헨 연방정원박람회장에서 대규모로 구현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전시 정원 공간이 아니라 박람회장의 기본적인 경관 틀을 형성하는데 이 기법을 적용했다.

그 원칙을 보면 우선 한 공간의 모습을 주도하는 대표 숙근초를 두어 종 선발한다. 선정 기준은 아름다운 외모, 뛰어난 환경적응력과 생장력이다. 예를 들면 <붓꽃과 민트> 또는 <샐비어와 무늬염주그라스> 등의 주인공 한 쌍을 정하는 것이다. 그 다음 이들을 동반하고 자리를 채워줄 조연과 엑스트라들을 선정하는데 이때 식물사회학적 관점에서 서로 경쟁하고 밀쳐내는 종이 아니라 사이 좋게 어우러지는 종들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즉, 자연적인 식물군락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다. 이 기법을 적용하면 야생화가 가득 피어 있는 들판이나 사면, 능선 등의 자연스러운 경관 연출이 손쉽다. 식물에 대한 풍부한 지식, 장기간의 연구와 관찰, 오랜 실무경험 및 창의적 사고가 있어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 할 수 있다. 이후 여기저기서 따라하다가 지금은 거의 경관 만들기의 원칙으로 정립되어 가고 있다.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식물적용학이다. 정원이나 공원, 특히 생육조건이 까다로운 도시 공간에 어떤 식물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배치해야 하여야 미학적, 생태적, 경제적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가를 연구한다. 이때 각 식물의 성격은 물론 식물 상호 간의 생태적 어울림, 지역적 환경조건과의 관계, 토양, 수분 등의 생육조건에서 소재시장형편, 효율적 관리 방법까지 두루 섭렵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 1970년대 처음으로 조경학과의 과목으로 도입되었는데 그새 점점 복합적인 응용학문으로 성장하여 지금은 여러 대학 조경학과에서 독립된 학과과정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졸업 후 정원박람회 또는 공공공간 조경 등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고 잘만 하면 카시안 슈미트나 피트 아우돌프 처럼 국제적 명성도 얻을 수 있다.

뮌헨 리머파크로 다시 돌아 가보면 거기 „평행정원“이라는 것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름 그대로 길고 좁은 화단이 평행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오로지 야생숙근초와 장미만을 심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서 총 면적이 무려 2헥타르에 달한다. 이곳을 „마치 물감통을 들이 부은 것처럼 화려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설계자의 의도였다. 야생화를 이용하여 색채디자인을 해 보이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확실한 공간이어서 „주도 식물 형성의 원칙“을 거부하고 오로지 식물의 색상만을 감안하여 배치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과연 평행정원의 콘셉트가 십 년 뒤에도 원형을 간직할지 두고 보자는 식으로 반응했다. 모니터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나 뮌헨의 녹지국에서는 여태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학생이 그 작업을 해 낸 것이다.

그 학생은 2017년 봄에서 가을까지 현장에서 식물 조사를 마치고 그 결과를 기록했으며 2018년에는 분석 방법론을 직접 개발했다. 그리고 개최 당시 심었던 실시도면과 조사 결과를 꼼꼼하게 비교하여 설계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 그 여부를 분석했다. 이를 모두 정리하여 이번에 졸업 논문으로 완성한 것이다. 결과를 보니 베이스 경관은 애초 의도했던 자연스러운 야생화 군락이 자리잡아 최소한의 관리, 즉 연 1회 벌초해 주는 것으로 족한 반면 평행정원의 물감통은 자연의 역동성을 이기지 못하여 일찌감치 천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색상만 보고 선정했던 숙근초들이라 야생 식물의 침입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도태한 것이다. 면적이 넓기 때문에 예산이 넉넉한 뮌헨 시 공원녹지국에서도 관리에 역부족이었다.

이 학생의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결론을 제대로 내리지 못해 흐지부지된 것이 흠이지만 기성 학계에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외치고 관리 당국에서도 모른 척할 때 그 힘든 일을 한 것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받아 마땅하다.

부가 뮌헨 2005년의 평행정원. 넓고 긴 숙근초 화단의 딜레마. 튤립 등을 심었을 때는 아름답지만 박람회가 끝난 뒤 접경면적이 너무 커 외부 식물의 침입을 견디지 못하고 덤불이 되어갔다. [사진: 고정희]
부가 뮌헨 2005년의 평행정원. 넓고 긴 숙근초 화단의 딜레마. 튤립 등을 심었을 때는 아름답지만 박람회가 끝난 뒤 접경면적이 너무 커 외부 식물의 침입을 견디지 못하고 덤불이 되어갔다. [사진: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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