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오랜만에 프라이부르크에 다녀왔다.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볼프스부르크(Wolfsburg)라는 도시를 지나치게 되었다. 카날 변의 날렵한 초현대적 건축과 조경이 자른 듯 선명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볼프스부르크는 중부독일 운하에 위치한 일종의 기업도시다. 1938년 히틀러가 폴크스바겐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건설했다. 폴크스바겐 공장을 대규모로 짓고 직원들을 위한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인구 12만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초현대적 감각의 산업-공원 복합시설을 신축하여 2000년 하노버 엑스포에서 <자동차도시>라는 이름으로 선 보이면서부터 볼프스부르크 앞에는 자동차도시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문득 높은 담장 뒤에 나란히 열지은 순백색의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족히 수천 대는 되는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가야 비로소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아마도 팔지 못한 디젤 자동차들을 감춰둔 듯 했다. 지금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소위 자동차 공동묘지 중 하나일 것이다. 순백의 자동차 수 천대가 줄지어 선 모습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여 순간 설치 미술이 아닐까는 착각도 들었다.

프라이부르크는 자른 듯한 직선의 자동차도시 볼프스부르크와는 영 딴판의 도시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그린 시티, 유럽의 생태수도, 태양의 도시. 그럼에도 프라이부르크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자꾸 볼프스부르크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만난 프라이부르크의 변한 모습에 크게 놀란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순수한 생태 도시 프라이부르크가 그새 생태 비지니스·관광도시가 되어 있었다. 뭔가 어수선하고 도시 전체가 들 떠 있었다.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돈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는 것이 없다. 생태도시라는 브랜드를 팔아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는 작금의 현상이 이를 입증한다." 이건 독일 자연환경보호 연맹 프라이부르크 지부장이 한 말인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한 흑림 산맥을 등진 채 드라이잠 강이 부려놓은 넓은 벌판을 끼고 형성된 프라이부르크는 예로부터 독일 남부 최고의 관광지였다. 당시에는 수려한 경관 때문에, 중세 대학도시의 매력 때문에, 맛 좋은 포도주 때문에,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높은 일조량을 보이는 온화한 일기 때문에 휴양지, 관광지로 명성이 높았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부터 녹색당의 본거지로 그린 시티라는 이름을 얻었고 보봉, 리젤펠트라는 두 개의 생태 마을을 지으면서 유럽의 생태수도라는 작위를 받았다. 그때만 해도 생태가 관광 아이템이 될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해외에서 소문을 들은 생태 도시 탐방객들이 줄지어 몰려 오자 처음엔 자랑스러웠고, 신기했고 그러다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탐방객들이 뿌리고 가는 돈이 적지 않아 꽤 괜찮은 수입원임을 깨닫게 되었다. 기관에서는 이제 거의 방문객을 받지 않는 대신 각종 민간단체에서 전문 가이드나 설명회 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볼프스부르크 자동차 도시 앞을 지나가는 폐차 운반선. © Wusel007, CC BY-SA 3.0
볼프스부르크 자동차 도시 앞을 지나가는 폐차 운반선. © Wusel007, CC BY-SA 3.0

 

보봉이나 리젤펠트 등의 생태마을 뿐 아니라 전 도시에 속속 생태건축이 들어서고 솔라 타워가 솟아올랐다. 2009년에는 그린 시티 클러스터라는 친환경 산업 관광 공사가 설립되었고, 2013년 6월엔 드디어 한적한 보봉 생태마을에 호텔이 들어섰다. 물론 건축 상까지 받은 우수한 녹색 호텔이긴 해도 본래 계획에 없던 건물이었다. 중앙 도로 변에 여분으로 남겨두었던 땅을 할애하여 호텔을 지은 것이다. 같은 해, 시청사 건물도 친환경으로 신축하기 시작하여 이제 1차 공사가 끝났다. 소위 말하는 플러스 에너지 하우스로서 건물 외피에 부착한 솔라 패널을 통해 생산하는 에너지 량이 소비량보다 많다. 이제 프라이부르크 시는 생태 아이템만 골라서 탐방할 수 있는 <그린시티 맵>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배포하고 있는데 한국, 중국, 인도, 캐나다와 러시아가 주요 타겟 국가란다.

그러다보니 혹시 온갖 친환경상을 휩쓰는 재미, 관광 수입을 올리는 재미가 톡톡하여 생태 건축을 정신없이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프라이부르크는 지금 독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다. 주택난이 시작되어 도시 동쪽, 디텐바흐 저지대에 6,500 세대 규모의 신도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땅은 본래 홍수방지를 위한 범람지로 지정되어 개발이 금지된 곳이었다. 시에서는 예외 조항을 적용하여 개발을 허용했다. 유럽의 생태수도에서 하필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은 땅을 개발한다는 사실이 시사 하는 바는 적지 않다. 친환경 단체의 저항이 심해 올 초 국민투표에 붙이게 되었고 그 결과 60퍼센트가 찬성표를 던져 개발이 확정되었다. 이 일로 인해 독일 생태계가 들썩거렸고 이제 그린 시티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린이라는 수식어를 빼야 한다는 원성이 높았다.

프라이부르크 친환경의 핵심은 에너지 절약, 솔라 에너지를 이용한 에너지 플러스 하우스의 보편화, 그리고 전기차로 도시 교통을 완전히 대체하겠다는 교통 콘셉트로 요약할 수 있다. 전기차로 완전히 대체한다는 목표는 얼핏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 지금까지 생산되어 나돌아 다니는 차들은 모두 폐차 처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볼프스부르크 자동차 도시의 높은 담장 넘어 숨겨둔 수천 대의 차들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앞으로 지구는 폐차로 도배될 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프라이부르크 생태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모범적인 보봉 생태마을의 교통 콘셉트를 보면 내 마을 안의 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자동차를 마을 경계지구로 내 몰았다. 보봉 마을 경계에 세운 주차 건물은 이미 포화되어 새롭게 주차 면적을 임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를 프라이부르크 시 전체로 확산시켜보면 내 도시 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일단 내 도시만 친환경이면 된다는 지역 이기주의의 좁은 시각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린 시티라고 다 녹색으로 빛나는 것은 아니며 프라이부르크를 세계적 모델로 무조건 칭송할 일도 아니다.

프라이부르크 보봉 생태마을의 그린 시티 호텔 © 고정희
프라이부르크 보봉 생태마을의 그린 시티 호텔 © 고정희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