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지난 4월 17일 독일연방정원박람회 2019의 막이 올랐다. 이번엔 남부의 하일브론Heilbronn 이라는 도시에서 열린다. 10월 6일 전통적인 옥토버 축제와 함께 막이 내릴 때까지 총 173일간 쉼 없이 „꽃이 필“것이다. 하일브론 시는 이번 BUGA의 모토를 „꽃피는 삶Blühendes Leben“이라고 잡았다. 얼핏 듣기에 상상력 부재의 케케묵은 구호 같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이번 정원박람회의 의도가 매우 정직하게 표현되어있다.

이번에는 <정원과 도시의 합병 박람회>로 개최된다. 독일 정원박람회는 전통적으로 도시 재생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도시 내지는 건축박람회와 동시에 개최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13년 함부르크 국제정원박람회 때에도 건축박람회와 동시에 개최되었다. 그러나 대개는 박람회장 주변에 신도시가 탄생하거나 혁신 건축을 지어 전시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일브론에서는 이 원칙을 뒤집어 정원박람회장 중심부에 신도시를 앉혔다. 작년에 이미 1 단지가 준공되어 800 명의 주민이 입주하여 살고 있다. 이번 부가에서는 정원과 꽃, 주택 뿐 아니라 주민들도 전시 아이템이 된 셈이다.

처음부터 정원박람회가 관건이 아니었다. 신도시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이를 정원박람회로 포장하여 선보이는 것이다. 정원박람회가 끝나고 나면 공원의 중심부를 다시 도려내고 그 자리에 주택을 더 지을 예정이다.

그러므로 꽃피는 삶이라는 모토의 <삶>은 하일브론 시민 전체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원박람회장 중앙에 들어 선 신도시 입주민들의 삶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앞으로 계속 꽃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결국 이번 정원박람회를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800 명의 입주민들이다. 향후 정원을 일부 걷어내고 신도시를 완성하면 최종적으로 3,500 명의 주민과 일천의 일자리가 꽃 속에 묻힐 예정이다.

하일브론Heilbronn이라는 도시의 명칭은 치유heil 의 샘bronn 혹은 성스러운heil 샘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듯하다. 네카 강변 숲 속에서 샘물이 솟아난 곳이니 이미 선사 시대로부터 사람들이 거주할만했다. 아닌 게 아니라 켈트족이 거주했던 흔적이 있다. 자연을 숭배했던 켈트족은 원천을 중심으로 마을을 지었고 이것이 지금 하일브론의 시초가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름과 달리 하일브론은 산업과 금융의 도시다. 네카 강변의 요지에 자리 잡은 관계로 중세에 이미 주요한 상업도시로 성장했다. 이 시기에 네카 강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이고 지류를 운하로 만들었다. 강과 운하에 각각 통관 교량을 설치하여 통행하는 상선에 세금을 부여함으로써 내륙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목재항, 소금항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 19세기에는 발 빠르게 기계화에 편승, 남독의 산업 중심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륙 무역항을 매립하고 그 위에 철도를 건설하여 화물역 부지가 되었다.

바로 이곳, 40ha의 화물역 부지가 이번에 공원도시로 변신한 것이다. 한때 접근이 불가했던 네카 강변에 자연풍경이 되살아났다. 2013년 공사를 시작하여 땅을 파 보니 오염된 토양이 300 톤이었고 세계 제2차 대전 때 영국 공군이 퍼부은 폭격물의 잔재가 13톤 묻혀있었다. 그 참에 19세기에 매립되었던 목재항을 다시 파서 두 개의 호수를 만들며 박람회장의 틀을 잡았다.

이번 박람회장은 각 테마에 따라 모두 다섯 구역으로 나뉘는데 각 구역을 <대기권>이라 칭했다. 새로운 세계라는 뜻일 것이다. <새로운 강변풍경>, <여름 섬>, <과학 섬>, <중간계>와 <자라는 도시>의 다섯 권역에 도합 100 건이 넘는 아이템을 선보인다.

작년 가을 백만 개의 튤립 구근을 심었고 1,700 주의 에너지 수목 미루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으며 이 숲 속에 테마 정원들을 배치했다. 영구 수목 964주를 심고 구 화물역 물류 저장고를 화훼전시관으로 개조했다. 이곳에선 매주 새로운 화훼 작품이 선보인다. 총 1만 5,000㎡의 화단에선 작년부터 숙근초 10만 본, 장미 8천 주가 자라기 시작했다. 무대와 공연장 8곳이 마련되어 총 5,000 건의 행사가 열릴 것이며, 2,700 명이 앉을 수 있는 식당이 마련되었다. 조경업체 85개가 참여하고 84 개의 조경설계사무소와 정원 작가 수십 명이 기량을 뽐낸다. 두 개의 호수에서는 매일 화려한 분수 쇼가 벌어진다. 쏘아 올린 분수가 스크린이 되어 조명으로 그림을 그리는 남다른 쇼가 압권일 듯하다.

그러나 이번 박람회의 핵심은 역시 신도시 <네카보겐Neckarbogen>의 1 단지다. 그래서인지 이 주변에 가장 많은 아이템이 집중되어 있다.

오랜 세월 산업화에 치중한 까닭에 하일브론은 다른 독일 도시들에 비해 녹지 구조가 취약한 편이다. 산림이나 포도밭 등을 제외한 순수 휴양공간의 비율은 2.5%에 그친다. 인구 전국 7위라는 관점에서 보면 연방정원박람회 개최가 많이 늦은 셈이다. 2003년부터 연방정원박람회 개최를 도모하기 시작했으나 도시녹지의 부족을 보완하려는 의도 보다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도시개발 과제에 탄력을 주기 위해서였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사람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자린고비들이다. 단 일 센트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자연을 극히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보다 금전에 대한 사랑이 조금 더 크다. 그러므로 도시재생 과제가 압박해 오지 않았더라면 과연 정원박람회를 개최했을까? 이런 물음이 저절로 떠오른다. 꼼꼼하게 따지느라 12년의 준비과정을 거쳤다. 철저하게 계산하여 박람회장 규모를 40 ha에 국한시켰다. 연방정원박람회 평균 면적의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박람회 개최 뒤에는 반 이상의 면적이 신도시로 개발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녹지 증가율은 변변치 못할 것이다.

다만 중앙역에 잇대어 녹색 도시와 휴양공간이 탄생했다는 점, 네카 강 1.6 킬로미터 구간에 자연성이 회복되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써 산업화에 따라 크게 훼손된 네카 강의 풍경이 일부 향상되었다. 그러나 완전한 회복은 미래의 과제로 남아 있다. 아마도 주판알을 튕겨 이득이 남는다는 결론이 얻어지면 비로소 다음 과제를 해결코자 할 것이다. 다시 30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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