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 성균관대 교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싸움의 전략이 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謀功)편에 나오는 말인데, 적도 알고 나도 알면 아무리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이야기다. 인간 세상이 하도 험하다보니 매일의 일상을 전장(戰場)으로 아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그래서 이 병법(兵法)은 바야흐로 생법(生法)이 되었다. 각자 개체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경영 전략에 있어서도 이 방법은 주효하다. 조직 측면에서든 개인에서든 병법은 생법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죽지 않으려고 이렇게 치열하게 주 5일을 싸우고는 주말에는 힐링의 시간을 위해 숲이나 산으로 향한다. 이제 산과 들에는 물오른 나무들이 봄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하니, 나무가 주는 음이온이 어떻고 피톤치드 성분이 어떻고 하면서 평온과 안정을 즐긴다. 그렇게 지친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나무를 많이 심자는 날이 바로, 식목일이다. 사실 나무와 식물은 평화의 상징이다.

하지만 식물에게 물어보면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그들이 생명을 영위하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겨우내 땅 속에서 바깥세상을 기다린 씨앗이 발돋움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야들한 가녀린 새싹을 기다려온 곤충들이 기회를 노려 침범한다. 특히나 양분을 채워 부지런히 성충으로 변태해야 하는 애벌레들에게 싹들은 더할 나위없는 먹잇감이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식물이 겪는 어처구니없는 고난이다. 하지만 식물은 전쟁의 명장(名將)이다. 물론 곤충들이 짝짓기를 도와주어야 하니 바로 일망타진할 수는 없어, 일단 18%까지는 참고 먹혀 주지만 자신의 생존에 무지막지한 위해를 가하는 애벌레를 마냥 두고 보지는 않는다.

전쟁이란 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이고 결국엔 한 판 붙게 되는 게 현실이다. 나무는, 식물은 ‘지피지기(知彼知己)’의 대가이다. 어느 정도 먹히는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지기(知己)’는 기본이고, 자신을 갉아먹는 적의 정체를 꼼꼼하게 스캔한다. 애벌레의 침을 통하여, 암컷인지 수컷인지, 얼마나 성장했는지, 종류는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판별하고는 상대에 딱 맞는 화학물질을 제조한다. 이 화학물질은 적의 탈피를 방해하기도 하고, 단백질 합성에 이상을 초래하기도 하고, 호르몬에 이상을 주어 짝짓기도 못한 채로 일찍 죽게 만들기도 한다.

무서운 생화학무기인 셈이다. 적에게 딱 맞는 독을 생산한다는 것은 바로 식물이 ‘지피(知彼)’의 명수라는 걸 의미한다. 그러니 백번을 싸워도 결코 두렵거나 위태롭지 않다. 하지만 곤충들도 넋 놓고 당하지만은 않는다. 식물의 화학물질에 여러 번 당하고 나면 자신들도 몸속에 해독성분을 만들게 된다. 이제 전쟁은 제2라운드에 접어든다. 식물들 또한 다른 전법을 준비해야 한다. 인간세상의 전쟁도 자신의 힘만으로 부족하면 누구와 손잡느냐가 중요하다. 조직 생활에도 라인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렇게 식물들도 함께 전쟁할 아군을 찾는다. 간단하다. 상대를 워낙 잘 알고 있으니 상대의 천적을 아군으로 삼으면 된다. 적의 적은 아군이 아닌가?

이제 식물의 무기창고에서는 아군을 부르는 화학성분이 생산된다. 바로 애벌레의 천적인 말벌을 불러들이는 향기이다. 식물이 만들어낸 이 정확한 신호는 딱 그 곤충의 천적을 불러들이고, 천적인 말벌은 얼씨구나 날아들어서는 (식물을 갉아먹는) 애벌레의 몸속에 자기 알을 낳는다. 알에서 깨어난 말벌의 유충들은 애벌레를 양식 삼아 자라나니 이 전쟁은 식물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게다가 이렇게 신호를 보낼 때 주변 식물들은 이 향기를 엿듣는다. 주변 식물들은 이게 적의 적을 부르는 신호라는 것을, 그리고 적과의 한 판 승부가 바로 옆집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래서 자신들도 부지런히 독으로 사용할 화학물질을 생산하여 전쟁준비를 마친다. 이것 또한 중요한 생법(生法)인데, 바로 ‘한비자(韓非子)’ 팔경(八經)편에 나오는‘참험(參驗)’이다.

한비자는 제왕학으로 유명한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로서, 비록 불운한 일생을 마쳤지만 그의 사상은 진시황(秦始皇)의 통치 근간이 되었다. ‘참험(參驗)’이란 통치자인 왕이 일을 판단하여 처리할 때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증험(證驗)에 꼭 맞으면 그에 따라 일을 시행해야 하는데, 특별히 일의 징조를 잘 알아내어 화근을 처리하고 환란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민주사회에는 제왕이 없으니 최고 경영자가 참험의 주체가 될 것이다. 식물은 기업의 현명한 CEO이다. 동맹을 위한 이웃 회사의 기미를 알아차리고는 자신도 필요한 준비를 철저히 한다. 하지만 아무 때나 자신의 독을 사용하여 행동을 개시하지 않는다. 준비는 다 갖추었지만, 자신에게도 침입이 시작될 때, 가장 적절한 순간에 행위에 옮긴다. 주변 상황은 수시로 변하므로 한정된 자신의 자원과 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무는, 식물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자신의 속성을 잘 알고 주변의 상황을 면밀하고 기민하게 살펴서 생존을 영위한다. 참으로 똑똑하지 않은가? 식목일을 맞아 숲이나 공원에 가면 나무와 식물들에게 그들의 전략과 생존법을 꼭 물어 보라. 우리는 뛰어난 명장이며 현명한 CEO인 그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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