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식 (사)한국생태복원협회 회장
홍태식 (사)한국생태복원협회 회장

D-54일

올해 1월 9일 조경인신년교례회를 성황리에 마치고 난 다음 날 단체장 회의에서

재단 이사장은 불쑥 “올해 조경의날에는 국무총리를 모시겠습니다.”라고 말을 던졌다.

A 협회장은 피식 웃으며 “아니 어제 행사에서도 국회 국토교통위원장 모시느라 가슴 졸이며 대기하고, 행사 순서도 뒤죽박죽이 되어 강의하러 온 이익주 교수한테 결례를 범했는데, 이번엔 총리님을 상대로 희망고문하는 겁니까?” 하며 손사래를 쳤다. B 협회장은 “나도 그 상황에 진땀이 나던데, 그래도 새해 덕담하시고 조경이 건설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립서비스를 들었으니 다행이죠. 왜 행사에 늦게 도착하셨대요?” 라며 조심스레 물었다.

재단 이사장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에피소드 하나를 풀어 놓았다. “말도 마세요. 어제 오기로 일정을 보름 전에 잡아놓았는데, 갑자기 위원장 본인이 긴급사안으로 위원회 전체회의를 어제 날짜로 소집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 행사에 못 오게 됐다고 의원실에서 말하길래 멘붕이 왔죠. 보좌관에게 읍소도 하고, 언론에 참석한다는 기사까지 이미 내보냈는데 꼭 오셔야한다고 했죠. 며칠 지난 다음에 연락해보니 여전히 불참할 것처럼 대답하길래, 한마디 던졌죠. 우리 조경인이 전국적으로 12만 명인데 위원장님 지역구에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렇게 실망시키면 않돼죠. 그랬더니 30분 후에 잠시 짬을 내서 참석하겠다는 보좌관 전화를 받은 거예요.”

C 협회장은 눈을 크게 뜨고 “정말 우리 조경식구들이 거기 지역구에 많이 살고 있나요? 하긴 내년이 총선이니까 설득 효과가 만렙이였겠네요” 라며 감탄했다. D 협회장이 정색을 하며 “어이구 몇 명이나 살고 있을라구? 재단 이사장이 임기응변으로 선출직인 의원의 위크포인트를 건들어 준거지.” 해설해줬다.

재단 이사장은 “아닙니다. 우리 학회 직원도 거기 살고요, 찾아보면 조경인들이 많이 살거예요.” 라고 웃으며 정리했다.

E 협회장은 신중론을 피며 “조경의 날 행사에 국토교통부장관 모시기도 어려운데, 총리를 모실 수 있을까요? 표창도 최고등급이 장관상인데?” 걱정스레 물었다.

재단 이사장은 “안 그래도 어제 국토부 사무관에게도 다음 행사에 총리님을 초청한다고 하니까, 피식 웃으며 ‘건설의 날에도 총리 참석이 드문 일인데 조경의 날에 초청한다고요?’ 하는 뉘앙스로 총리님 일정 감안해서 잘 해보라고 대답하대요. 그래서 더 쎄게 나갔죠. 반드시 모셔서 공원일몰제로 대표되는 녹지정책의 허술함과 도시공원재정비 필요성을 요청할거라고.”

A 협회장은 “국토교통부 실무자하고는 사이 좋게 지내야죠. 이사장님이 너무 쎄게 나간거 아닙니까?”라며 걱정스레 물었다.

재단 이사장은 “한번쯤은 국토부에 우리 조경의 위상을 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더라고요. 그동안 학회장 자격으로 여러 번 방문했는데 조경분야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아요. 아니 아예 없었죠. 이번 행사를 전환점으로 삼아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고 공원일몰제를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고 나아가 도시공원인증제를 도입해보려고요. 도시공원 사무가 단순히 지자체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니라 중앙정부인 국토부가 직접 나서야하는 일이라고 설득하고 제도를 개선해야죠.”

D-7일

조경의 날 행사 1주일 전에 이사장은 단체장들을 재차 소집했다.

재단 이사장은 환하게 웃으며 “어젯밤에 총리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총리님이 참석하기로 확정했답니다,”라고 말했다. E 협회장이 박수치며 "이사장님이 수고 많으셨네요. 조경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을 해내셨네요"라며 축하해줬다. D 협회장도 "언론에 보니까 3‧1절 100주년행사 등 봄철에 여러 국가적인 행사 일정이 많던데 우리 행사에 오시기로 했다니 기분 좋습니다."라며 거들었다. C 협회장은 "이번 초청 성공에도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은데 초청 경위를 듣고 싶네요"라며 이사장에게 다가 앉았다.

재단 이사장은 “사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여러분들이 도와주셨죠. 총리님이 예전 도지사 시절에 정책자문을 성심 성의껏 해준 조경학과 교수님이 애쓰셨고, 자세히 밝힐 수 없는 지인들이 조경의 중요성을 말해주셔서 총리님 마음을 움직이신 거 같아요.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미세먼지나 도시재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경분야의 역할을 강조했고, 조경학과 졸업생의 일자리 창출이야기도 꺼냈습니다. 우리 세대보다는 미래세대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총리님이 오셔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셔야한다고 여러번 비서진에게 말씀드렸죠.”

B 협회장은 일정에 대해서 물었다. "총리님은 축사 후 잠깐 환담하시고 가시기로 했나요?"

재단 이사장은 상세 일정을 말했다. “아닙니다. 저도 한 30분 정도 계시다 가실 줄 알았는데 1시간 정도 시간을 내주셔서 정책건의도 받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동참한 후 가시겠다고 하네요. 보통은 분 단위로 일정관리 하는데 우리 행사에 상당히 오래 계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건의할 내용을 정리하려고 오늘 모셨으니, 좋은 의견 내주시죠. 총리께서 오시니 국토부, 환경부, 산림청, 문화재청, 서울시에서 고위 공직자들도 당연히 참석할 예정입니다.”

A 협회장은 “제일 먼저 건의할 내용으로 국토교통부에 조경전공한 사람을 선발해달라는 거죠. 지난 몇 년동안 조경진흥법 제정이후 하위법령을 만들 때 고생한 걸 생각하면... 조경분야를 잘 아는 기술직 공무원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죠. 교원과 경찰을 제외한 일반직국가공무원이 16만 명 정도인데, 조경담당 공무원이 한 명도 없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정부에서는 꾸준히 녹지조경직을 선발하는데 비해 중앙정부는 너무 푸대접하는 것 같아요.”라며 주장했다. E 협회장은 “조경지원센터와 조경진흥단지에 국가예산을 지원이 필요하고요. 내년까지 해결해야할 도시공원 일몰제 문제도 지자체 예산으로 알아서 하라고 할 게 아니라, 중앙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B 협회장은 “행사의 품격을 높이자면 행사비용을 더 쓰더라도 전문사회자에게 맡겨야합니다. 귀빈들도 많이 오는데 능수능란한 MC를 섭외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라고 제안했다.

그 밖에도 많은 제안이 있었지만 재단 이사장은 “본 행사 전 총리님과 국토부 차관님 등 각 부처 고위공직자들과 환담하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지만 지금 나온 제안들을 잘 정리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총리님은 국회의원뿐 아니라 지방행정을 직접 해보신 분이라 건의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빠르셔서 본 행사때 희망적인 말씀을 바로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며 행사 전망을 밝게 보았습니다.

D day 행사 후

시상식과 축하공연 등 모든 행사가 끝난 후 뒷풀이 장소에서 C 협회장은 “이사장을 포함해 행사 준비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총리님의 축사 내용도 엄청나게 좋았고, 조경학과 학생들을 전면에 내세워 신선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도 참석자들에게서 박수를 많이 받았네요.” 라고 평가했다. D 협회장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환담장에서 짧은 시간동안 건의한 내용이 축사 내용에 거의 다 포함되어 더욱 좋았습니다. 특히 중앙정부에도 조경직 공무원을 채용토록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하실 때 청중들이 술렁거리며 박수칠 때가 감동의 도가니였네요.”라며 참석자들의 반응을 전했다. 재단 이사장은 동감을 표하며 “준비하는 우리와 기꺼이 참석해서 행사장을 빛낸 조경 식구들 모두가 수고했죠.” 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다들 행사장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B 협회장이 작년 6월 문대통령이 청와대 경내 산책 중에 비서진들과 나눈 대화를 소개 했다. 비서실장이 향나무를 보며 “측백입니까”라고 묻자 문 대통령이 향나무라고 알려줬다. 눈향나무를 비서실장이 ‘눈 쌓인 것처럼…’이라고 식물 이름의 뜻을 넘겨짚자 문 대통령이 ‘snow, 즉 눈 쌓인 것처럼’ 이 아니라 ‘누워있다’는 뜻이라고 재차 지적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단다. 문 대통령은 ‘그건 임 실장의 탓이 아니라 우리말 탓이다. ’눈‘ 하나에도 뜻이 너무 많다’며 위로했다. 문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에도 봄이면 국회 의원동산에 핀 꽃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설명과 함께 올리는 등 식물에 관심이 많고 축적된 지식 역시 많은 편이라고 알려졌다는 세간의 평가를 전해줬다.

C 협회장은 무릎을 탁 치며 “그럼 내년에는 대통령님을 조경의 날에 모시자고요”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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