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고정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지난 주 미세먼지농도가 극에 달했다가 주말에 다소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때 다행이다 안도하기 전에 방심하면 어쩌나하는 우려가 앞섰다. 조금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미세먼지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듯 잊고 사는 건 아닐까. 그런데 방금 “주말이 지나간 자리에 미세먼지가 다시 찾아왔다”는 뉴스에 접했다. 한숨이 나오고 막막해진다.

이럴 땐 영웅이 나와줘야 한다. 미세먼지를 무찌를 용맹한 영웅은 어디에 있나. 국어사전에서 영웅의 뜻을 찾아보니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 설명한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이 설명에 빠진 것이 하나 있다. 영웅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야기 속 영웅은 대개 장렬하게 전사한다. 무진 고생 끝에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자신은 죽어가는 것이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다. 그런데 요즘은 거기에도 변화가 온 것 같다. 미션 임파서블의 영웅을 보면 말도 안 되는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긴다. 속편을 위해서 살아남아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예를 들어 아내와 생이별하는 등의 희생 정도는 따른다.

아닌 밤중에 영웅 운운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미세먼지 문제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여러 해전부터 국내의 환경관계 전문기관으로부터 독일은 미세먼지를 어떻게 잡았나하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 독일의 미세먼지 상황이 한국보다 나은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잡았다’고 볼 수는 없다. 1960년대 중반부터 “파란 하늘 되찾기” 운동을 시작하여 산업배출시설의 여과장치, 자동차 배기정화시설 등을 의무화하고 배출한계를 부쩍 낮춰 잡아 1990년대에 미세먼지 배출량이 현저히 감소했다. 이후 각종 환경평가 및 감시도구를 구현하는 한편 정화 및 여과 설비의 효율을 높여 미세먼지 배출량도 꾸준히 감소했다. 물론 국민들 각자 노력한 결과도 적지 않다. 지금은 미세먼지보다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알려진 온실가스 배출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뿌연 미세먼지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실은 다른 환경문제도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독일의 미세먼지 농도와 온실가스 배출량이 2015년경부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감축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정치적 내지는 인간적 한계다. 독일은 환경선진국이기 이전에 산업국가다. 자동차와 기계 수출에 의존한 경제이기 때문에 그 이중성으로 인한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산업경제의 성장을 멈추지 않으면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카드를 다 써버린 상태라 해도 좋겠다. 이렇게 성장과 환경보호가 같이 갈 수 있다는 주장을 ‘녹색 기만’이라고도 일컫는다. 급진적 환경보호 로비뿐 아니라 수많은 경제학자, 생태학자들이 녹색기만을 지적하며 더 강력한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의 감축이 불가능함은 물론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환경개선의 성과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문제는 그 강력한 정책이 과연 무엇인가다. 탈핵에 이어 석탄화력 발전도 완전히 포기할 것을 결정했지만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구현할 것이므로 그 20년 동안은 상황이 크게 호전되지 않을 것이다. 그 외, 예를 들어 항공운행과 자동차 교통을 반감하는 등 국민들에게 희생 아닌 희생을 요구해야 한다. 그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막강한 자동차 산업의 눈치도 봐야한다. 자동차 수출에 수많은 사람들의 밥줄이 걸려 있는데다가 미국을 비롯하여 사방에서 미친 듯 견제가 들어오므로 이에 대처하기도 급급한 상황이다.

그뿐이 아니다. 농업이 교통이나 화력발전 못지않은 미세먼지 배출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정치가들은 건강을 찾는 소비자들과 농산업계 양쪽에서 압력을 받고 있다. 그래서 정치가들이 불쌍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때 강력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나서 장렬하게 전사할 정치가들, 즉 영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죽음을 불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차기에 당선되지 못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대신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니 이 역시 좋은 일 아닌가.

이는 독일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한국은 독일에 비해 상황이 훨씬 나쁘기 때문에 더 많은 영웅이 필요하다. 정치가들이 미세먼지 감축하는 방법을 몰라서 절절매는 것이 아니다. 방법은 다 알려졌지만 유권자들이 무서워서 쉬쉬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유권자들, 즉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가만히 보면 중국에서 넘어온다는 소식이 있을 때만 소비자들이 목청을 높인다. 그에 반해 자가 배출량이라도 좀 줄이자고 호소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다. 자가 배출? 우리가 언제? 나는 그런 거 배출 안하는데? 다 중국에서 온다며.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우리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될까? 세계에서 아이큐가 최고로 높은 사람들 아닌가.

중국이라고 아무 것도 안하고 미세먼지를 한국 쪽으로 날려 보낼 궁리에 골몰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5년 북경의 미세먼지를 40% 감축하는데 성공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결과 오존이 증폭해 버렸다고 한다. 여태 미세먼지가 누르고 있다가 솟구쳐 오른 것이다. 이렇듯 환경문제는 복합적이다. 중국에다 대고 삿대질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풍향이 문제라면 우리 함께 제갈공명이 되어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지혜와 의지까지도 보여줘야 한다. 미세먼지의 배출원과 감축 방법 등에 대해선 이미 수많은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제발 검색 좀 해서 읽고 각자 조금이라도 감축에 기여하자.

아이들이 “엄마 아빠 나빠요. 왜 우리에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 줬어요.”라고 말할 때 “다 너희들 잘되라고 그런 거야.” 이렇게 대답할 것인가.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각자 영웅이 되어야 한다. 심청처럼 인당수에 풍덩 빠질 필요도 없다. 풍성한 물자와 이기에 대해 타고난 권리가 있다는 사고방식, 소소한 일상의 불편도 참지 못하는 안일함이라는 괴물과 싸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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