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지난주까지만 해도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된 경남 하동군 화개면 야생 차밭이 양수발전소 건설후보지로 떠오르면서 생태계와 주민 터전이 한꺼번에 사라질 위기였다. 다행히 지난 21일 하동군은 이달 말 한국수력원자력이 공모하는 신규 양수발전소 건립사업을 포기하면서 일단락됐다. 양수발전소 사업 철회를 위해 지역 주민들이 국민청원을 진행하며 공론화하는 등 반대여론에 부닥치자 군은 사업 공모를 포기했다.

주민 합의 없는 지자체의 일방 행정으로 지리산 생태가 파괴될 순간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전력수급계획에 양수발전소 후보지로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일원은 선정을 피해갔지만 한국수력원자력은 여전히 자율유치 공모를 진행 중이며 어딘가에 또 다른 신규 양수발전소가 건립될 것이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산청 양수발전소에서 이미 국립공원 경계에 있는 계곡과 하부댐 주변마을의 차 재배 영향 등이 계속 문제 제기돼왔다. 양수발전 원리는 위치가 낮은 하부 저수지 물을 위치가 높은 상부 저수지로 끌어올려 물을 떨어뜨릴 때 발생하는 위치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전력생산 방식이다. 전력이 남는 밤 상부저수지에 물을 저장해 전력이 부족한 낮에 저장한 물로부터 전력을 생산한다는 것인데 이미 관련 분야 전문가나 환경단체는 막대한 설비에도 불구하고 투자 대비 이용률 저조 등 비효율적 발전 방식 뿐 아니라 생태계 파괴를 지적해왔다.

화개면 정금리 일원은 2017년 유엔식량농업기구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됐고, 하동 차농업도 지난 2015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하동의 차 농업은 1200년 유구한 역사 속에 자리했을 뿐만 아니라 오래 시간 형성된 야생차밭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농업유산의 다원적 가치 잠재성은 경제적 수치로 측정할 수 없다. 토건개발은 단순히 환경과 경관 훼손에만 그치지 않고 공동체 해체로 이어진다.

제주도에서 일어나는 성산 제2공항 사태도 비슷한 형국이다. 마치 제주도지사는 남의 나라 일인 양 도민 60% 이상이 반대하는 여론에도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국토부와 함께 제2공항 건설을 강경하게 고수하고 있다. 제2공항 타당성 재조사를 요구하는 지역주민들은 소음, 이주문제, 난개발, 오름 등 자연경관의 훼손을 우려한다. 이 곳도 마찬가지로 지역주민과의 합의 없는 행정절차에 저항은 더욱 거세다. 지역경제 활성화, 고용 창출이라는 달콤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제2공항이 건설되면 지금도 넘쳐나는 관광객에 몸살 앓는 제주의 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임은 명약관화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민주주의는 여전히 소원하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들어야할 지자체와 행정기관은 여전히 귀 막고 불통한다. 10년 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로 잃어버린 구럼비 바위가 다시 떠오르는 때다. [한국조경신문]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