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기 (사)한국조경협회장
노환기 (사)한국조경협회장/
(주)조경설계 비욘드 대표

큰 녀석이 사정이 있어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는 덕분에 우리 가족들의 강원도 화천나들이가 요즘 부쩍 늘었다. 다 큰 아들놈 면회를 간다는 게 주변에 말하기도 어색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이 녀석도 나이 들어 전방GOP에 있다 보니 무척 답답한지 가끔씩 가족이 오기를 기다리는 눈치인지라 온 가족이 가족 나들이 겸 아들을 보러 간다.

우리들 80학번들 세대의 군대와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전방의 군대생활은 녹록해 보이지는 않았고 특히 민통선 초소를 지나 들어갈 때엔 살짝 긴장감마저도 든다.

요새는 워낙 지방도로가 잘 되어 있어 전보다 빠른 시간에 갈 수는 있는데 산세가 깊은 주변은 겨울이라도 강원도의 자연풍광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줍지 않게 작자미상의 짧은 글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경관에 대한 태도를 다시금 짚어본다.

若將除去無非草(약장제거무비초)
好取看來總是花(호취간래총시화)
베어버리자니 풀 아닌게 없지만
두고 보자니 모두가 꽃이더라

자연은 우리에게 인생을 가르쳐 주는 또 하나의 스승이라고 느낄 즈음 민통선 아래의 마을인 사방거리로 들어선다.

인적이 드믄 강원도 산골에서 이 곳은 갑자기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이질감과 함께 답답한 느낌이 함께 밀려온다. 도로 주변의 상가들은 불규칙하게 배열을 이루고 전면의 보행자들이 적절하게 이동 할 수 있는 보도나 공간은 없다. 밀도로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토지이용을 계획할 수 있으나 자본의 욕망이 과하게 노출된 형상처럼 간판과 함께 드러내고 있다. 무리지어 다니는 군인들은 과연 이 거리가 잠시라도 외출이라는 달콤한 휴식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보행자를 위한 안전하고도 쾌적한 통로,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로수와 가로휴게공간은 상권을 활성화 시켜 줄 수 있는 연결고리 일 터인데 지자체도 상가 입점주에게도 자신의 간판에게서 시선을 빼앗아 가는 장애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지방소도시는 피할수 없는 인구감소라는 현실을 안고 있는데 토지가가 저렴한 외곽의 무분별한 개발도 한 몫을 하고 있는 형상이었다. 이런 광경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 모든 것들이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재생사업의 또 하나의 요소들이다. 삶의 질 증진, 빈곤과 소외 극복 등 공공의 이익이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협력과 호혜를 바탕으로 접근하면 중앙의 공동화나 외곽부의 훼손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회사 다니던 젊은 시절에 운이 좋아 미국에 단기 연수를 갈 일이 있었다. 캘리포니아 소살리토에 있는 SWA본사를 방문했을 때,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에 대해 동경을 느끼기도 하고 서부부터 중남부까지 사례지를 답사했을 때도 감동보다는 충분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감정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었는데 로스엔젤레스 남부에 있는 어바인에서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주택단지 외곽에 관리가 잘 되어있는 테니스코트가 8면이 있었는데 5-6살 정도 되는 꼬마 두 명이 한 면에서 아주 즐겁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7면은 비어 있고. 거기서 갑자기 서울에 있는 큰놈 생각이 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면서 잔디언덕에 주저 앉았다. 아파트 주차장 사이에서 세발자전거를 타는 녀석이 떠오르면서.

과연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애가 꿈도 가질 수 있고 창의력도 생기는 거지, 클러스트 구조의 좁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피해 자전거를 모는 우리 애들의 미래는 무엇이 될련지 라는 절망감마저 드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화천읍내는 세계4대축제라고 자칭하는 산천어축제로 인해 도로가 무척 혼잡했다. 주민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쳐나고 자신감이 엿보였다. 어떤 수단이든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표 아래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산천어축제를 바라 보는 시각 자체가 부정적인 측면 등 다양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교량의 가로등, 로타리의 랜드마크, 각 종 안내시설 등 읍내의 모든 시설에 각기 다른 형태와 색상의 물고기로 도배되어 있다 싶이했다.

경관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은 이해하나 조금은 덜 천박하지 않으면 안 될까 생각해 본다.

나는 조경을 좋아한다. 단지 내가 조경인으로 오랫동안 혜택을 누리고 살아온 것도 있지만 속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공공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역할을 주도할 수 있다는 건 인생을 살면서 어떤 업역의 전문가들도 쉽게 접근하지 못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극소수만을 위한 명품이 아닌 대중에게 사람 사는 얘기와 자연성을 돌려 주는 공간을 만드는 사명감도 더불어 가질 수가 있으니까.

그 와중에서 수익성도 높지도 않고 주체로서 작업을 하지 못 할 때도 많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경제권을 쥐고 있는 직업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작업을 할 때 주도권을 가지고 간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동료들과 나 자신도 때때로 인간적 자존감과 삶이 파괴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 힘들어 한다.

사회는 여러 가지 직업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직업이 좋은 직업일까?

요즈음 유행하는 TV드라마 SKY캐슬 처럼 사람들이 인정하고 근무환경도 좋고 돈도 많이 벌면서 존경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영혼도 팔 수 있는 그런 직업만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은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 그 자체가 즐겁게 느껴지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거기서 소명감을 느끼며 밥 먹고 산다면 나는 감히 절반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본다. 뜨거운 가슴으로 조경을 사랑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현실을 헤쳐 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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