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서울 한복판 청계천 을지로 일대 공구상가 골목에 칼바람이 일고 있다.

청계천 일대 상인들은 이명박 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한 번의 생채기를 입었다. 두 번째 찾아온 재개발의 기운이 또다시 이 곳을 강타하고 있다. 청계천과 충무로 사이 총 8개 구역 중 공구상가가 밀집된 3구역과 6구역 일부는 이미 철거가 진행 중이고, 다른 구역 또한 보상 절차 중에 있다. 일부 상인들도 이 곳을 떠난 상태다. 이 자리엔 주택공급을 위한 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계획이 발표된 바 있다.

청계천에서 3대를 이어온 공구상인의 말대로 “탱크도 만들고 인공위성도 만드는 곳”이 청계천 일대 을지로 공구상가다. 5만 명 이상의 상인들이 이 곳을 생계 터전으로 유지했고 각각의 상가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움직이며 제조산업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었다. 이들 상가들과 함께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곳을 지켜온 노포도 청계천변의 현대적 건물과 대조를 이루며 서울의 독특한 도시경관으로 자리 잡았다.

청계천 상가의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 거점으로는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들 수 있다. 서울시도 다시세운프로젝트를 통해 젊은 예술가들과 연구자, 디자이너들을 입주시켜 세운상가 일대에 도시재생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해당지역 상가 세입자들과의 협상 없이 일방적으로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 주상복합아파트 건설을 계획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이들에게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은 개발의 재생산에 불과하다.

공구거리 상인들의 거센 반발이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재개발의 유령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막개발로 도시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허물어뜨리는 현상은 비단 청계천 공구상가에 그치지 않는다. 조선시대부터 양반의 행차를 피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종로 옛길 ‘피맛골’이 그러했다. 좁고 구불거린 피맛골은 반듯한 주상복합건물에 가려 이름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경희궁 일대 한옥마을도 이제는 박물관에 박제돼 있다.

주택문제 해결이라는 미명 하에 건설사의 이익만이 빈껍데기로 남은 도시괴담은 뉴스테이개발도 모자라 미니신도시로 지정된 과천 화훼단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화훼단지 또한 오랫동안 화훼인프라를 형성하며 수도권 최대 화훼산업으로 성장해왔지만 정부의 기업형 임대주택 건설로 강제 이주 운명에 처했다. 과천시장 또한 당초 화훼특구 공약을 배반하며 화훼인들의 분노를 샀다. 폭력적인 개발 논리는 과거 독재시대 유산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않았다.

서울시의 시정은 지금까지 개발보다 도시재생으로 방향 전환해 지속가능한 도시로 추진 중이다. 그린벨트 해제 반대와 공원일몰제 대비 도시공원 매입원 등 일련의 녹색사업에 매진하고 있음도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동안 추진된 청계천정비사업이 시정과 역행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 가운데 박원순 시장의 재개발 전면 재검토 발언에 이어 서울시는 23일 서울의 정체성 담은 세운상가 일대 보존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개발은 멈추지 않고 있다.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터전을 바라보는 상인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시의 새로운 도심 역사 보존 정비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청계천 상인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협의가 전제돼야 한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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