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본사 발행인·조경기술사)
김부식(본사 발행인·조경기술사)

조경학도들이 동양정원사를 배우게 되면 한국정원, 중국정원, 일본정원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동양3국의 정원을 살펴보면 시대별로 정원양식이 변천을 거듭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국가와 시대를 초월한 동양3국 정원의 공통점은 ‘휴식과 치유의 공간’이라고 생각된다.

일본 현대정원에 대하여 알아볼 기회가 생겼다. 정원디자이너이자 선승(禪僧)인 마스노 순묘가 선(禪)을 주제로 조성한 정원이 주목을 받으면서 일본 현대정원의 한 흐름을 형성했다.

일본 요코하마에 위치한 겐코지(建功寺)의 주지스님인 마스노 순묘는 20년 전인 1988년에 동경 르포트호텔의 중정에 설치한 세이잔료쿠스이노니와(靑山錄水の庭)라는 작품으로 예술선장문부대신(藝術選獎文部大臣)신인상(新人賞)을 받은 것을 필두로 여러 지역에 선의 정원(禪의 庭園)을 조성했다.

선의 정원에서 느껴지는 그윽하고 아름다운 자태와 고요하면서 상쾌한 분위기는 선(禪)이 지닌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데서 나온다고 한다. 인간관계도 선의 정원처럼 조화가 중요하며 조화를 잃으면 문제가 생긴다며 다음의 일곱 가지 아름다움의 조화를 강조한다.

첫째, 완벽하지 않아야 아름답다. 선의 세계에서는 완벽하게 균형이 잡힌 상태를 아름답게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균형을 아름답다고 본다. 완성된 상태는 그 다음 단계로 뛰어 넘을 가능성을 잃었기 때문에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소박하여 질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 선의 정원을 만드는 일 중에 가장 기본은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것이다. 깎고 깎아서 더 이상 깎아 낼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선의 정원이 완성된다. 동양의 수묵화에서 먹의 농담(濃淡)만으로 다양한 색을 표현하듯이 간소한 아름다움이어야 한다.

셋째, 쉽게 흔들리지 않는 고고함이다. 젊은 소나무는 길게 뻗은 가지 위로 싱싱하고 푸른 잎이 무성하고 싱싱하지만 노송에게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말할 수 없이 강력한 위엄이 느껴진다. 고고함은 원숙하고 강인한 정취를 지닌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넷째, 과시하는 마음을 버린다. 선의 정원을 만들 때 자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어떻게 해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만족할지 오로지 거기에만 집중하며 만들어야 비로소 자연스러운 정원이 완성된다.

다섯째,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 정원에서 미처 보이지 않는 경관을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여백의 공간이 필요하다. 정원을 보는 사람은 여백을 통해 만든 사람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보이는 실물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욱 중요하다.

여섯째, 자유로운 아름다움이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관례나 관습처럼 세상에는 일정한 틀이 있지만 선의 정원은 세상이 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풍경이 자아내는 늠름한 고요함, 탈속의 아름다움이다.

일곱째, 평온한 마음을 유지한다. 사람은 살다보면 아무래도 욕심과 집착이 생겨나기 마련인데 선의 정원에서 정신을 모아 집중하면 떠들썩한 도심 한복판에서도 정적을 느끼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 선의 정원이다.

마스노 순묘는 선(禪의) 정원(庭園)을 만들 때마다 마음이 맑아지는 터, 정적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놓는다. 머무르는 이가 가만히 서서 풍경을 바라보며 고민이나 잡념을 훌훌 흘려보내는 마음을 담는다.

캐나다 대사관 선의 정원은 고산수(古山水)식의 바위와 모래로 전통을 현재에 재현하였고, 사무가와신사(寒川神社) 후원의 정원은 물과 수목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일본식 전통정원의 모던 가든(Morden Garden)인데 바라보고 있으면 선(禪)의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는다.

교토의 한 정원사는 선의 정원을 관리할 때 흔적이 뻔히 보이게 손질을 하지 않는다. 그저 뻗친 가지나 이파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맞춰 다듬을 뿐이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어디를 다듬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능숙하게 손질을 한다고 한다.

일본의 정원이 한국정원과 같을 수는 없다. 정원에 사용하는 돌의 크기와 모양도 다르고 소나무를 전정하는 방법도 다르다. 마스노 순묘의 선의 정원이 마냥 좋다는 의견은 아니지만 일본전통의 정원형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조성한 작품이 많은데 한국 전통정원을 계승하는 현대정원이 손꼽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올해도 며칠이 안 남았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정리하며 참선하는 마음으로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할 장소가 정원이면 좋겠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에게 정원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느끼고 휴식과 치유의 공간으로 하는 정원도 많이 생겼다. 또한 정원작가들이 각자의 브랜드를 가지고 활동할 만큼 영역이 넓어졌다. 젊은 정원작가들의 창의력과 자연관이 점차 높은 수준에 이르렀고, 국제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서 한국정원의 미래가 밝다.

마스노 순묘의 선(禪)의 정원(庭園)을 섭렵하면서 우리 정원작가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한국 현대정원의 작품세계도 전통을 계승하고, 전통을 현대적으로 승화하는 진중함과 성숙함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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