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동심원갤러리에서 조설협 주최로 개최된 고주석 박사 특강.
지난 15일 동심원갤러리에서 조설협 주최로 개최된 고주석 박사 특강.

[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네덜란드에서 활동 중인 고주석 박사가 방한해 조경가들에게 ‘재현과 조경설계’(Representation and Landscape Architecture)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지난 15일 조경설계업협의회(회장 최원만) 주최로 서울숲 동심원갤러리에서 열린 특강에서 고 박사는 철학적 사고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동서양의 조경 역사와 더불어 해외 조경설계의 재현 층위에 대해 강의했다.

고 박사는 르 꼬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아 건축학을 전공, 이후 조경으로 전공을 전환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울산대공원 설계가이기도 한 그는 국내에서 용산공원 현상공모 경험을 통해 설계공모 심사방식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는 “세계를 이야기(텍스트로서)가 아니라 사진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과학적 툴(투시도나 원근법)이다”고 말한다. 르네상스 시기 개발된 재현 툴로서 투시도는 건축에서 재현형식이 됐다. 그러나 조경에서 현실을 재현할 때 함정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경과 Landscape Architecture가 등식이 아니다. 여기에 논리적 근거는 없다. 시간, 바람, 등 자연의 현상이 단순히 그림으로 표현될 수 없다”고 말했다.

투시도 같은 과학적 툴은 합리적 이성과 경험을 통해 진리를 탐구한 데카르트의 산물이다. 고 박사는 과학적 데이터 기반 툴이 아닌 완전히 다른 층위의 재현이 필요함을 설파했다. “투시도는 거리를 고정시킨다. 그러나 실제 이용자들은 시간을 두고 공간을 경험한다”며, “나무의 실재가 외관에만 있지 않다. 재현(Representation)을 다시 재현한 것이다. 이것을 리얼리티로 착각한다. 조경은 단순히 물리적이지 않다. 테크닉이 아니다. 접근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그는 근대 이후 모더니즘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건축에 영향 받은 다양한 조경설계 방법을 설명하며 종국에는 지역사회 “주민이 참여하는 설계”를 강조했다. 사회적 맥락과 지역사회의 참여로 접근하는 랜디 헤스터(Randy Hester)의 설계사례를 예로 들며, “추상적이지 않은 설계, 주민참여 위해서는 불완전한 설계여야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한 설계가 현실의 프레임 밖 리얼리티를 경시하게 됨을 지적, 사회적‧환경적 맥락을 고려한 재현의 설계여야 함을 피력했다.

나아가 고 박사는 감성적(시적) 접근으로서 조경을 제시했다. 그는 1920년대 과학과 이성의 범주에서 벗어나 혁신적 재현 테크닉으로서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조경이 비주얼 아트라고 생각하지만 몸으로, 숨으로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디자인에서 텍스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보이지 않는 설계의 요소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자연은 과학적 분석 대상이 아니다. 설계가 (이용자에게) 소외감을 주는 이유다”고 말했다.

또한, “평면과 단면으로 구분되는 관습적 설계가 아닌 새로운 재현테크닉을 연구해야 한다. 그림이나 건축을 뒤쫓지 말고 조경만의 고유한 재현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시간이라는 툴을 가지고 투시도나 원근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험으로서의 공간으로 접근하기를 제안한 것이다.

고 박사는 용산공원 현상공모 당시를 회고하며 국내 현상설계 심의방법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했다. “그림만 보고 선정한다. 리스크가 너무 크다. 대지의 잠재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설계한다. 아름다운 공원인지 의문이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조경은 대지의 잠재성을 내다보며, 창의적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중략)보이지 않는 것을 잡아내야 한다. 수학적 공간과 경험적 공간은 분명 다르다.”

끝으로 “초기 조경이 픽쳐레스크를 추구했다. 조경이 예술에 의해 재현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조경구조는 죽고 디자인만 강조됐다”며 과정의 재현으로서 “조경가는 설계, 시공, 관리까지 작업함으로써 매년 변화하는 모습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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