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찬 더가든 대표
김봉찬 더가든 대표

지구에는 수많은 식물들이 있다. 도감을 펼치면 아득하기만 하다. 세상 어딘가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식물도 있다. 게다가 원예시장에서는 새로운 교배종과 품종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아~ 이 많은 식물을 언제 다 공부해야 하는 걸까.

조경 일을 하는 사람들은 늘 이런 고민을 안고 산다. 전문적으로 식물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늘 부족한 마음이 있고 공사에 사용되는 식물들은 점차 그 수가 방대해져가고 언제가 부터는 외국의 품종들이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해서 이름을 외우기도 어려운 품종들이 도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인터넷을 뒤져 하나하나 이미지를 확인하고 학명을 외워보지만 머릿속에 남는 것은 없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숨만 나온다.

식물공부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제안하고 싶다. 바로 속(Genus, 屬)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속은 식물분류의 첫 번째 묶음이다. ‘속’이 모이면 ‘과’가 되고 ‘과’가 모이면 ‘목’이 되는 식이다. 만병초의 학명을 보자. Rhododendron brachycarpum(명명자 생략). 여기서 Rhododendorn(로도덴드론)이 바로 속이다. 만병초는 로도덴드론 속에 속해 있는 식물 중 하나라는 뜻이다.

속은 근연관계에 있는 식물종을 모은 집단이다. 다시 말해 같은 속 식물은 한 조상에서 파생되어 세대를 거듭하면서 변이종이 발생하고 점차 확장되어진 식물의 모임인 것이다. 때문에 유전적으로 가깝고 식물의 외형이나 생육환경 등이 매우 흡사하다. 외모도 식성도 성격도 닮은 가족 같은 분류단위다.

속으로 식물을 공부하면 그 속에 해당되는 많은 식물의 특성을 한 번에 알게 된다. 같은 속 식물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에 속을 공부하면 그 속에 해당되는 많은 식물의 특징을 한 번에 공부하는 셈이 된다. Rhododendron을 공부하면 약 500여종의 자생만병초와 수만종의 품종들을 공부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일거다득이다. 물론 언제나 예외사항은 있지만 그것은 별도로 확인하면 그만이다.

가령 식재현장에서 Astilbe 'Fanal'이라는 학명이 적혀있는 식물라벨을 보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순간 당황할 수 있다. 생소한 품종명과 성체가 되었을 때의 형태를 가늠하기 어려운 작은 포트묘 앞에서 우리는 자주 절망하고는 한다. 그러나 노루오줌속(Astilbe)을 공부한 사람은 다를 것이다. 우선 ‘아~ 아스틸베(Astilbe), 이거 노루오줌속이지’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차분히 Astilbe속의 특징을 떠올려 본다.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산지 나무그늘이나 물가 축축한 땅에 자라는 식물, 늦봄에서 여름 쯤 개화, 숲속정원이나 계류주변 또는 화단 식재에 적합, 생김새는 대충 이렇고 토양은 이렇게 하면 되고, 볕이 이정도 들면 심을 수 있고, 그런 공통의 정보들 말이다. 대부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몇 줄의 정보가 수많은 Astilbe속 식물들 앞에서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와 더불어 자신감을 가져다준다.

속을 알고 있으면 생소한 식물들도 금세 친근하게 느껴진다. 더 많은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각종의 특징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어진다. 식물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결국 하나하나 공부해야하는 것은 마찬가지일지 모르지만 속에 대한 기본지식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개별적인 종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일은 엄청난 가속도가 붙는다.

식물을 이렇게 속으로 공부하다보면 식물의 공통점을 찾게 되는 습성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유사한 특징을 찾아 나누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식물분류의 첫 단계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되다보면 머릿속에 식물의 계통관계가 그려지고 처음 보는 식물도 기존에 알고 있던 식물 그룹의 특징을 떠올리면서 대입하여 대략 무슨 속인지 무슨 과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 식물의 이름을 아는 것보다 그 식물이 어떤 부류의 식물인지를 아는 것이 진짜 전문가다.

속으로 식물을 공부할 때 RHS의 A-Z encyclopedia of Garden Plants를 권한다. 정원식물을 속별로 정리하여 알파벳순으로 나열한 책이다. 속의 공통적인 특징들을 정리하고 대표적인 식물들의 개별특징을 간단히 정리해 놓은 책으로 정원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이다. 자생지, 외형, 가든타입, 재배법, 번식법, 병해충 등의 정보들이 속별로 정리되어 있어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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