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아파트, 경관을 담다
[조경시대] 아파트, 경관을 담다
  • 강연주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8.09.11
  • 호수 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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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주 (주)우리엔디자인펌 대표
강연주 (주)우리엔디자인펌 대표

[Landscape Times 배석희 기자]유난히 힘들었던 여름의 무더위가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바람에 따라 정원의 수목들도 자신의 가지를 흔들어댄다. 조금은 신이 난 것도 같고, 다른 이를 유혹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열매를 자랑하고 싶은 것일까?

사실 자랑할 만하다. 그들은 어쩌다 여기까지 와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내고, 결실까지 얻을 수 있었을까? 그 자그마한 열매 속에 계절의 변화가 담겨 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지고, 따먹거나, 새들에게 양보하기도 한다.

오래된 아파트에 가면, 주렁주렁 열린 감이나 모과를 가지마다 늘어뜨리고 있는 나무들을 손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무엇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자기 바로 옆에 있던 나무들은 어디로 가고, 그들만이 그토록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남았을까?

그 나무들에는 이런 팻말들이 흔히 붙어 있다. ‘위의 열매는 아파트 공동의 소유이므로, 개인적으로 함부로 채취하지 마시오.’ 개인적으로 손을 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개인이 손을 대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그 열매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공동의 손을 거쳐 어디론가 가는 걸까?

주렁주렁 열매가 달린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파트에 사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의 아파트는 공원이나 단독 주택의 정원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경관은 수많은 아파트들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초기의 아파트는 살기 좋은,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산업화에 따른 서민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손쉬운 방편이었을 뿐이다. 닭장, 벌집으로 표현되던 이런 아파트에 넓은 잔디밭과 깔끔하게 전지된 조형 수목, 그리고 예술작품들이 들어서게 된다. 고급 주택이 되기 위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아파트 조경은 하나의 그림이 된다. 녹색의 물결 속에 동선은 조형적 패턴이 되고, 화려한 조명은 밤의 풍경을 낮보다 아름답게 한다. 도화지는 점점 커지고, 커진 공간을 더욱 넓어 보이게 하는 설계적 장치들이 도입된다. 아파트의 경관은 도시적 스케일과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주변의 자연 경관도 적극 끌어들인다. 산과 하천을 끼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가치가 배로 높아진다. 빽빽한 아파트 건물 숲을 지나 맞이하게 되는 탁 트인 공간은, 주변의 산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드라마틱한 경관을 연출한다. 자연물을 중심으로 조형적으로 다듬어진 녹을 통해 비스타를 형성하거나, 자연으로 향하는 여정을 스토리텔링으로 엮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 안에 아름다운 풍경을 새롭게 만들어 내기도 한다. 기존의 기하학적이고 인공적인 패턴을 벗어나,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모방하여 표현한다. 자연적 숲과 함께 하는 대규모의 호수를 조성하고, 지형을 조작하여 산의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돌로 이루어진 가공된 석가산(石假山)은 이제 아파트에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고급 주택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다듬어진 녹과 희귀한 품종의 수목·초화들 또한 아파트 경관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적재적소에 위치한 물의 쓰임은 더욱 다양해지고 적극적이 되었다. 지역의 이야기를 차용한 시설이나 디지털 등의 첨단 시설을 활용한 시설 등도 색다른 경관을 연출한다.

이와 같이 단순하게 같은 것을 바라만 보던 아파트 조경은, 주변의 자연을 적극 끌어들이고 그 자연을 새롭게 해석·구현하면서, 다양한 연출을 통해 변화·발전하고 있다. 이는 보는 감각뿐만 아니라 직접 만지고, 맛보고, 듣고, 냄새 맡는 모든 오감을 자극하게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자연과의 공생을 생각하는, 공감의 능력 또한 유도한다.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나는 감나무 열매는, 오히려 지난 여름철의 무더위를 생각나게 한다. 회사를 가려고 나서는 길에 만난 아파트 연못가에서, 상사의, 거래처의 고단한 요구는 사라진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경쟁한다. 사람들은 자연을 지배하고 그 안에서 평안하게 안주하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집 앞의 자연에서 벌어지는 경쟁에 대해서 종종 잊는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이 경관 안에서, 우리 모두는 다 경쟁자다. 식물을 조금이라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자연물은 금세 변한다. 어디에도 ‘정지된 위로’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경관을 ‘정지된 하나의 장면’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은 변화하기 때문에,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된다. 총림 숲 사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총림의 아름다움을 반도 느끼지 못 할 것이다. 아파트 조경이 오감의 경관, 변화하는 경관, 공감의 경관이 될 때, 이는 진정 우리를 향한 위로의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파트 고층에서 빗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예전 어느 선배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창문도 못 여는 고층 집에서 나와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타고 학교에 가는 요즘 아파트 키즈들에게, 빗소리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벌레가 싫어 학교의 야외 활동이 싫다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일까?

기성세대 또한 사회라는 정글이 징글징글하고 괴롭고 지겨울 때, 그런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정글을 있는 그대로, 혹은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지된 자연만이 아름다운 경관이라고 배운 우리에게, 변화하는 자연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그러나 꽃이 핀 상태로 박제되었을 때,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살아 있는 것들의 이면에 갖고 있는 처절한 투쟁들, 기계적 편안함에 갇혀 버린 우리의 자유로운 사고들, 이들을 다시금 일깨워야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아름다움을 느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인생의 아주 충격적인 사고나 사건을 경험하며 생길 수 있다. 지금까지와 다른 환경이나 오지를 탐험하는 여행 속에도 있을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 속에 - 아파트 잔디밭의 잡초 하나를 뽑는 행위 속에, 산책하다 갑자기 만난 소나기에 흠뻑 젖은 채 비를 맛보는 행위 속에, 그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일상적 변화의 아름다움은, 다른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따뜻한 위로가 된다. 때론 삶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조금만 더 아파트 경관에 자신의 모든 오감을 맡기고 사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강연주 객원 논설위원
강연주 객원 논설위원 urien0000@naver.com 강연주 객원 논설위원님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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