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찬 더가든 대표
김봉찬 더가든 대표

머루(Vitis coignetiae Pulliat ex Planch.)는 포도와 같은 속(Genus) 식물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다른 물체에 줄기를 감아 올려서 사는 덩굴식물이다. 머루의 덩굴손은 줄기가 기능적으로 변화된 형태로 실처럼 가늘고 그 끝은 두 가닥으로 나뉜다. 곤충의 더듬이를 연상시키는 덩굴손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여리고 가냘픈 느낌이 들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험난한 자연의 세계에서 어찌 살아갈지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이 작은 덩굴손 하나하나가 모여 저보다 수 백 배는 크고 거칠고 무거운 전체 덩굴을 지탱하고 있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몇 해 전인가 큰 태풍이 불어 거수목이 뿌리 채 뽑힐 정도의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 농장을 둘러보다 잎이 다 헤어져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머루덩굴을 만났다. 그런데 줄기 끝에 새로 난 어린 덩굴손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하늘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 작고 여린 생명이 나에게 어떤 위기와 위험도 지나갈 일이니 의연하라고 말하는 듯 했다. 새삼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는 흔한 말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머루를 관찰하다보면 덩굴손의 인지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사람이 손으로 사물을 만져 촉감을 느끼는 것과 유사하게 머루에게도 주변 사물과의 접촉을 느끼고 접촉이 일어난 쪽으로 움직이는 능력이 존재한다. 물체와 접촉이 시작되면 접촉한 면이 함몰되듯 줄기가 굽어지면서 물체를 휘어 감는데 이러한 현상은 매우 정확하고 일관되게 나타난다.

덩굴손의 또 다른 능력은 스프링처럼 감아올리는 방식이다. 덩굴손은 물체를 감지하면 여러 바퀴를 돌아 감아올려 마치 스프링과 같은 형태를 이룬다. 단단히 부여잡는 1차적 기능도 있겠지만 스프링의 탄성이 주는 이득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물리학적 바탕이 미천하여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덩굴손은 질기고 강하기보다는 스프링의 여유로움과 탄성의 원리를 이용하는 쪽으로 진화했을지 모른다. 특히 강한 바람에 맞서 늘어날 수 있는 여유는 매우 적절하게 힘을 반감시킨다고 여겨진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호박의 덩굴손 하나가 무려 500g의 무게를 지탱한다고 하니 그 능력이 실로 대단하다.

머루의 덩굴손은 그저 기능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식물의 형태가 주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궁리하다 보니 간혹 엉뚱한 짓을 하고는 하는데 어느 날인가는 덩굴손을 잘라놓고 머루를 들여다보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 허전함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두 가닥으로 나뉘어 휘어져 있는 덩굴손의 끝 부분만 잘라도 보았는데 역시나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실 덩굴손은 머루 전체에 비하면 매우 작은데다가 산발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큰 힘을 발휘할 만큼 매스(mass)를 이루지도 않는다. 그러나 덩굴손이 없는 머루는 이상하리만큼 낯설다. 덩굴손의 형태가 아름다운 것인지 그것에 익숙해져 있는 나의 감각이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자도 후자도 결과는 마찬가지 인 것 같다.

거칠고 넓은 잎들 사이로 공간을 가르는 유연한 곡선미, 산뜩하고 가벼운 움직임, 부착된 물체를 감아올리는 강직하고 일관된 지향성, 더욱이 오랫동안 관찰하며 정이 들어 더욱 애틋 마음이니 내 눈에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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