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주 (주)우리엔디자인펌 대표
강연주 (주)우리엔디자인펌 대표

[Landscape Times] 7월이 되면 항상 설렌다. 학생들은 방학을 맞이하고, 직장인들은 휴가를 준비하며 새로운 여행길을 계획한다.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 일탈을 꿈꾸는 것이다. 또한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시여기고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등 사회적 여건이 변화하면서, 굳이 붐비는 휴가철이 아니어도 평소에 짬짬이 즐기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집 주변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내에도 일상적으로 자연과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아파트를 계획할 때 단지 안에 건강을 위한 산책로나 조깅 코스를 만들고, 주변과 연계된 보행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일이다. 글램핑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돕는 게스트 하우스를 단지 내에 만들기도 한다.

단지 내의 길은 아파트 출입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부 공간으로 이어진다. 아파트 필로티의 휴게공간을 통과하기도 하고, 꽃이 가득한 정원을 지나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 안에 차들이 가득하고 보도의 연결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걷는 것조차 위험했던 길들이, 이제 서서히 바뀌고 있다. 아파트 단지의 길은 안전할 뿐만 아니라, 쾌적하고 편안한 길이 되고 있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나는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는 것이 얼마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이다. 길을 걸으면서 직업상 주변 공간을 유심히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그때그때의 상념에 빠지게 된다(편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출발점에 다시 와있거나, 혹은 막다른 길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막다른 길 바깥은 보통 문으로 닫혀 있고, 입주자가 아니면 그 뒤의 길로 더 이상 나가지 못한다. 그러면 갔던 길을 되돌아 와서 정문으로 나가야 한다. 입구에서부터 들어가지 못하게 잡히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그렇게 막아 놓으면 더 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 담을 넘고 싶을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별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와, 출발점을 다시 보고 집으로 가는 길은 왜 그리 지루한지 모르겠다. 익숙하고 편안한 길도 좋지만,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새로운 일탈의 기회가 제한된다는 느낌이다. 길은 끊임없이 뻗어나가고 이어져야 한다. 그래봤자 정해진 시간이 있고, 거기에 맞춰 다시 편안하고 안전한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지만 말이다.

나는 상도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은 전형적인 1970년대 단독 주택지였고, 아버지는 언덕 위 자그마한 땅에 집을 지으셨다. 집이 있던 곳은 경사지이나 택지로 개발된 곳이라, 격자 모양의 길을 중심으로 집들이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반면 학교에 가는 길은 험난했던 것 같다. 자그마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늘 헷갈렸다. 다른 길에 들어서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많이 헤매었다.

그 시절 나는 자주 학교 가는 길에 대한 꿈을 꿨다. 학교에 가기 위해 아무개 집의 거실을 몰래 통과하고 담을 넘어 옆집 장독대에 올라가기도 했다. 또 다른 누군가의 집 욕실 변기와 하수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한바탕 모험을 마치고 나면, 온몸에 땀이 뒤범벅이 되어 깨어나기 일쑤였다.

나의 학교 가는 길은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인, 늘 새로운 공간이었던 것 같다. 바로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다. 그 길에서 나는 멈추지 않았고, 멈출 수도 없었다. 물론 꿈이었지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짜릿한 기분마저 든다.

요즘도 나는 현실에서 길을 자주 헤맨다. 물론 도심의 길을 걷는 것이고 휴대폰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헤매는 것이 예전처럼 두렵거나 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곳에 혼자 있을 때가 있다. 일상의 도심에서 길을 잃는 것이다. 그럴 때면 여전히 당황스럽지만, 누군가에게 길을 묻기도 하고 온 길을 되짚어 보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늘 가던 길로만 가면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어린 시절, 매일의 학교 가는 길 위에서 배웠던 것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길에서 그렇게 나름의 삶을 배우고 있는지 모른다.

잘 짜인 도심의 길이 아니어도, 미지의 자연 속에 의도적으로 들어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가보지 않은 길에는 난색을 표하며, 자신의 길만을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길을 걷는지는 각자의 몫이겠으나, 선택을 위한 기회는 다양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집을 나와 학교에 가는 매일의 길을 각자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지각한 날은 항상 가던 익숙한 길로 뛰어갈 것이다. 또 어느 날은 복잡하고 헷갈리는 길로 들어서,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새로운 모험을 즐길 수도 있다. 우리 아파트의 모든 길을 다 알아 지겨워졌다면, 옆 동네 아파트로 간단히 배낭 하나 짊어지고 주말을 즐기러 떠날 수도 있다. 우리 아파트에 옆 동네 사람들이 놀러오기도 한다. 아파트의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파트는 개인의 소유물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공간을 외부와 연결하는 것이 바로 아파트의 길이다. 또한 이곳은 주거지가 주는 익숙한 안전함과,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위험함이 함께 있는 중간지대이다. 아파트의 길 위에서 재미를 느끼고, 외부의 충격에 대한 유연성을 쌓으며, 그래서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자그마한 힘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이제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는 모든 대문들을 꽁꽁 잠그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파트의 길이 조금 더 복잡하고, 예측불가하며, 많이 돌아다니게 되고, 그러는 중에 색다른 곳에 – 익숙한 우리 아파트 단지가 아닌 곳에 다다르고, 그래서 당황하더라도 안전하게 다시 집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됐으면 한다. 헤매는 아파트의 길이 많아지길,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다양하고 행복한 이야기도 많아지길 기대한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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