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조경에서 벗어나기
[조경시대] 조경에서 벗어나기
  • 임병을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8.07.03
  • 호수 4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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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을 더자이언트(주) 대표
임병을 더자이언트(주) 대표

[Landscape Times] 나는, 조경인이었다.

조경기사 자격증, 조경학석사 학위를 가지고 조경책임자로 일하며 건설기술인협회에 등록된 특급기술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에도 나를 조경인이라고 부를만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직장에서 퇴사하여 사업체를 차린 지금 나는 건설업도, 식재 또는 시설물업도, 엔지니어링업도 아닌 서비스업을 주업종으로 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경진흥시설 지정을 위해 필요한 업체 수에서 내 회사는 아무런 영향도 주질 못한다. 도움이 되고 싶은데 도움이 안되는 상황이다. 조경진흥시설 지정이 되려면 5개 업체 이상의 조경사업자가 입주(서울은 10개 이상)해있어야 하는데, "조경사업자"란 「건설산업기본법」 제9조, 「기술사법」 제5조의7 및 제6조, 「엔지니어링산업 진흥법」 제21조에 따라 등록 또는 신고를 하고 조경사업을 하는 자만을 말하기 때문이다.

분명, 조경식재에 관한 진단, 컨설팅과 조경수 생산 및 시공품질 고도화를 위한 연구개발을 하고 있으면서 간혹 조경학회에 논문도 게재하는, 한국조경학회와 한국조경협회 회원이지만 나는 조경분야 학자도 기술자도 아닌 그냥 오지랖 넓게 조경을 기웃거리는 외부인인 셈이다. 얼마 전에는 건설기술자 교육 인정 기한도 초과되어 더 이상 특급기술자 지위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안내 메일도 받았다.

조경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 그러한 외부인 취급을 받고 있다. 조경을 위해 일하고 조경의 발전에 공헌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을 텐데, 그들은 법에서 인정되는 조경사업자 혹은 조경인이 아닌 셈이다. 내가 조경수에 대한 자문을 ‘조경인’으로서 수행하고 있었지만, 입찰이나 공모의 경우엔 오히려 산림사업법인인 ‘나무병원’을 찾는 실정이기도 한다. 한편으론, 우리가 굳이 조경업이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화훼, 원예, 산림 분야 사업자들은 너도나도 간판이나 명함에 조경이라는 말을 달아놓고 있으며, 실내외에 꽃과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일을 조경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무원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조경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경인’과 ‘외부인’의 시각차가 크며, 법과 제도적으로 조경의 분야를 너무 한정지어두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구나 조경은 쉽고, 어려운 기술을 요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나는 조경이라는 것이 인류가 멸망할 때까진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행위라 생각한다. 설령 그 명칭이 달리 불릴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조경이라는 것을 항상 내 삶에서 함께할 동반자로 생각하지만, 조경인으로서 혹은 조경기술자로서 조경업의 범위 내에 있을 생각은 없다. 조경에서 법적으로 배제 당했기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지 모르나, 굳이 나는 조경인이라는 틀 안에 갇혀있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진 않다는 말이다. 조경이라는 공간 및 소재와 함께하는 나무전략가로서의 삶은 살 것이지만 조경업을 할 생각은 없다.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경영+농림+조경의 융합과 적절한 배합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가고자 애쓰고 있다. 조경을 좀 열어두고 다른 것과 융합도 해보면 좋겠다.

누군가는 종종 말한다. 조경계가 굳이 4차산업혁명이라는 화두에 초조해하거나 그것을 좇아가야할 이유는 없다고. 우리의 색깔을 지키자고. 한편, 내가 대표로 있는 회사에서 컨테이너 모듈이라는 신기술을 만들고 좀 알려지자 누군가는 말했다. 그것은 컨테이너가 아니라고.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래서요?” 위 두 가지 이야기들에 일부 동의한다. 우리의 모습을 지켜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형이 아니라 본질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되어야 하며 ‘태연자약’한 조경의 모습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틀’이 아니라 그것이 제공하는 ‘가치’가 핵심이다. 더 정확히는 소비자, 사용자가 느끼는 가치 말이다. 지금의 애플사가 휴대폰 회사였는가? 지금의 아이폰, 스마트폰은 정말 휴대폰인가? 컴퓨터, MP3플레이어 등을 만들던 회사가 엉뚱하게도 스마트폰을 만들자 그 분야와 기술의 편견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반대했지만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제공하는 기능과 가치에 의미가 있었기에 수용된 것이다. 카메라는 필름이 있어야만 된다는 편견으로 인해 실패한 ‘코닥’은 이제 그 단어가 ‘실패’를 비웃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기까지 하다. ‘조경’이란 단어가 그래서는 안된다. “우리 조경은 언제 어디에서나 당신과 함께 존재한다.”라는 것을 더 부각하고 “당신의 삶에 ‘조경’이 살아 숨 쉴 때 그것을 행복, 건강, 힐링이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조경의 본질이자 가장 기초적인 가치 아닐까? 여기에 세부적인 컨셉을 만들어 본질은 유지되지만 형식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조경이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Rogers의 (기술)혁신의 수용 모델(혁신수용곡선)에 따르면, 전체 소비자들 중 약 13.5%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로서 비교적 빠르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대중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는 인플루언서(Influencer)이기에 중요한 존재이다. 얼리어답터보다 더 일찍 다소 무모하게 도전적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따르는 2.5%의 혁신가(Innovator)와는 그 존재감 자체가 다르다. 얼리어답터들 세상을 리드하는 존재가 되기에 모든 기업은 이들을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 4차산업혁명 기술에 관해서도 조경은 혁신가가 될 필요가 없으며, 4차산업혁명 기술을 만들어내는 당사자가 될 필요도 없다. 단지 얼리어답터로서 새로운 변화를 잘 감지하고 민첩하게 대응하여 시장의 트렌드를 이끄는 열린 마인드의 민첩한 사용자가 되면 충분하다. 4차산업혁명 기술을 우리 분야에 어떻게 사용할 것이며, 반대로 4차산업혁명 기술에 조경을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 4차산업혁명에 적응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조경을 접하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할 때이다. 굳이 그런 시류에 끌려갈 필요가 없다며 현재의 모습을 굳건히 유지하는 느림보(Laggard)는 언제나 모든 혜택에서 뒤처지고,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도태된 존재일 뿐이다. 개인적으로도 느림보와 같은 표현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잘 나가는 걸 보지는 못했다. 오히려 사업을 잘하고, 존재감있는 분들은 신속하게 변화하고 대응하는 전문가들이었다. 틀에서 벗어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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