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찬 더가든 대표
김봉찬 더가든 대표

[Landscape Times] 오래전에 조성된 아파트나 공원에 가보면 나무들이 크게 성장해 울창해진 것을 보게 된다. 너무 조밀하게 심어 나름의 고유한 수형이 제 멋을 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하지만 한데 어우러져 풍성해진 경관은 멀리서 보면 마치 자연의 숲과 유사하다. 크게 공들이고 가꾸지 않아도 나무들은 시간과 함께 익어가며 그 아름다움을 더해가니 그저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내 속이 상해진다. 울창한 숲의 외부 경관과 달리 내부는 빈약하고 초라한 탓이다. 조성 초기에 식재되었던 관목이나 일부 초화류 들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허약해져 있고 어떤 곳은 빈 땅을 그대로 들어낸 채 운동장처럼 사람들의 발길로 단단해져 있다. 그나마 그늘에 견디는 철쭉류가 일부 버티고 있지만 짙은 그늘로 인해 꽃은 적어지고 가지는 웃자라 그 형태가 변변치 못하다. 그 중에서도 잔디(Zoysia japonica)는 여전히 대표적인 지피식물로 애용되고 있지만 왕성하게 적응하는 양지에서와는 달리 내음성이 약해 나무 그늘에서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도태되어 버리곤 한다.

나무가 있는 곳은 반드시 그늘이 지게 마련이다. 그늘은 뜨거운 태양빛을 막아주고 바람을 부드럽게 여과시켜 사람을 쉬게 한다. 그러나 그늘이 지면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거나 꽃이 좋지 않다는 불평도 생긴다. 자연의 숲은 어떨까. 숲은 대표적인 그늘이다. 그러나 숲에서 식물이 허약해지거나 그늘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그늘정원의 문제들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실수이거나 무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늘에 맞지 않는 식물을 심었거나 그늘식물이 살 수 없는 토양기반에 무턱대고 심은 것이다.

그늘정원의 조성은 자연의 숲을 이해하는데서 시작된다. 숲은 식생 천이의 마지막 단계로 숲을 이해하는 것은 천이의 흐름을 이해하는 긴 여정이기도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정원을 만드는 기반을 튼실하게 다질 수 있으니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더욱이 사람의 짧은 생 안에서 자연이 쌓아 올린 긴 시간을 읽어내는 일은 얼마나 가슴 벅차고 멋진 일인가. 틈틈이 공부하고 경험하길 바라며 여기서는 그늘정원 조성과정에서 간과하기 쉬운 몇 가지 사항만 언급하겠다.

숲의 나무들은 강한 바람과 폭우를 막아준다. 뜨거운 태양빛은 몇 겹의 나뭇잎 층을 통과하며 한층 부드러워지고 순해진다. 숲 내부는 격변하는 환경이 없어 평온하고 고요하며 늘 높은 공중습도를 유지한다. 토양은 오랜 천이의 산물로 축적된 풍성한 부엽층을 형성하며 그 성질이 매우 가볍고 내부에 공기층이 많아 물빠짐이 잘 되면서도 보습력이 뛰어나다. 이러한 환경에 적응해 온 숲의 식물들은 그 나름의 형태와 생태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때문에 숲의 식물들은 숲을 벗어나 살기 어렵고 반대로 숲 밖의 식물들은 숲 안에서 적응이 어려워 죽게 된다.

그늘정원은 숲 속 식물의 안식처가 되어주어야 한다. 수목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바람막이가 되어주며 큰 골격을 형성하는 경관요소로 작용한다. 수목을 배치할 때는 지형과의 관계를 고려하고 겨울철 북서풍을 차단할 수 있도록 식재위치를 신중하게 결정한다. 상록교목은 너무 짙은 그늘을 만들어 하부식생의 제한이 많고 질감과 색감이 다소 경직되어 보일 수 있으므로 가급적 먼 경관에 배치해 배경을 만들고 공간을 깊게 하는 것이 좋다. 조성지의 면적이 좁을 경우 정원 내부의 지면을 아래로 낮추어 함몰지를 만들거나 작은 연못이나 개울을 함께 만드는 것도 좋다. 지형의 변화감을 주어 실제보다 규모감이 크게 느껴지고 내부의 공중습도를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늘정원을 조성할 때에는 반드시 객토작업을 시행한다. 객토는 정원의 토양을 식물 재배에 적합한 토양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말한다. 식물과 토양은 진화의 시간동안 생사를 함께하며 짝을 맺어 온 관계로 식물은 토양에서 생존에 필요한 산소, 물, 유기물을 공급받는다. 식물을 심을 때는 반드시 그 식물에 맞는 토양이 함께여야 하며 그늘정원의 경우 숲의 표토층을 이루고 있는 부엽토를 재현한다. 그러나 그 정도와 비율은 비용과 구입여건을 고려해 식물과의 관계를 따져가며 계획하는 것이 좋다. 숲속 식물 내에서도 토양에 덜 민감한 식물들이 있으니 도입하고자 하는 경관이나 식물에 따라 토양 조건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공사 과정에서 단단하게 굳어진 토양을 파내어 부드럽게 풀어주어 토양의 물리적인 성질을 개선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위에 식물에 따라 부엽, 피트모스 등을 첨가하여 기존 토양을 교체하거나 개선하는 과정을 거친다.

객토작업이 끝나면 숲속 식물을 이용해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최근에는 비비추(Hosta), 노루오줌(Astilbe), 복수초(Adonis), 둥글레(Polygonatum), 앵초(Primula) 등의 그늘식물과 그 품종 들이 원예시장에 유통되고 있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어렵지 않게 구입이 가능하다. 만병초(Rhododendron), 수국(Hydrangea)과 같이 그늘에 좋은 관목이나 양치식물 이끼 등을 함께 이용해 내부 경관을 다채롭게 꾸밀 수도 있다. 각각의 품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 독립적인 주제원으로도 조성이 가능하다.

정원 선신국의 사례를 보면 최근에는 도시 한복판에서도 원시림의 식물들을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그늘정원이 조성되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깊은 숲의 내부를 마주하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놀라운 일이다.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순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고 발 아래로 잔잔히 피어난 숲속 식물들은 고요하고 평온한 위안을 내어 줄 것이다. 자연의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그 비밀을 조금씩 풀어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일, 이것이 정원을 만드는 사람들의 특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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