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벚꽃 엔딩
[조경시대] 벚꽃 엔딩
  • 임병을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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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을
임병을 더자이언트(주) 대표

[Landscape Times]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은 언제나 들어도 봄 향기가 물씬 느껴지며 기분이 좋아진다. 노래 몇 곡의 저작권 수입이 많아 굳이 더 일을 안 해도 될 상황이라고 인터뷰하던 그 가수의 모습도 생생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부러워한다. 우리 조경계에 있는 분들도 마찬가지리라. 나무는 조경계에서 심었는데 떼돈은 노래 만든 사람이 번다는 투정을 한번 부려본다.

벚꽃이 가득한 곳에는 어디나 사람도 가득하고 꽃을 만지거나 사진 찍는 친구, 연인, 가족들의 모습이 예쁘다. 하지만 어디서나 축제 같던 그 벚나무와 사람의 섞임은 금세 엔딩을 맞이한다. 대략 2~3주가 흐르면 사람들에게 벚꽃은 찰나의 아름다움과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뿐, 눈꽃 같은 화려함을 선사해줬던 주인공은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그때뿐이다. 사람들에게 벚나무 특히 왕벚나무가 아름답게 인식되는 것은.

5월의 여의도 윤중로. 한동안 아름다웠을 벚꽃 길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벚나무들은 그 화려했던 벚꽃을 떨 군 채 비로소 줄기 곳곳의 상처와 수술의 흔적, 고난의 몸짓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진 찍기에 바쁘고 행복해보였던 사람들의 모습은 간데없고 자기 갈 길에 바쁜 소수의 행인들, 나무가 거기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 한 번도 올려다보지 않고 지나는 굳은 표정의 사람만 보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365일 중 보름 남짓의 꽃에만 환호하고 관심을 가졌을 뿐, 꽃을 피우는 나무 자체의 존재나 꽃을 피우기 전, 후의 나무의 삶엔 관심이 없다.

2018년 5월 중순을 살아가고 있는 벚나무들은,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더라도 꽃이 진 자리에 열매를 키워내고 있었다. 수목관리자들의 도움을 받아 병해충과도 싸우고 있었다. 벚나무로서 나이가 많은 상황이라 언제 운명을 맞이할지는 모르지만 그 나무들은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한층 더 성장하고 결실을 맺는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징조,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지구촌과 우리나라, 그리고 경기침체와 업역 침탈 논쟁, 젊은 층의 조경분야 진로 기피 현상으로 시름이 깊은 조경계는 모두 대대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경기호황과 조경에 대한 관심 등으로 조경계가 꽃을 피웠고 종사자들은 이익과 찬사를 얻었다. 물론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수많은 번뇌와 생존 투쟁이 있었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이제는 더욱 더 치명적인 위협을 견디며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야하는 ‘성장’과 ‘결실’, 즉 더욱 가치의 규모를 키우고 후계자, 후계기업, 후계산업을 키워야하는 시기에 있다는 말이다. 꽃피는 봄을 지나 극한의 열기와 가뭄, 집중호우, 태풍, 창궐하는 병해충과 싸우면서 현상유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열매를 충실하게 맺어야만 하는 사명이 있는 벚나무의 남은 계절처럼...

성장은 ‘거울나라의 엘리스’에서 등장한 붉은 여왕을 소재로 이론화한 경영학적 표현 ‘붉은여왕 효과’에서 말하듯, 현상유지 혹은 천천히 변화하는 것은 곧 도태된다는 의미이기에 주변 나무와 환경보다 더 빠르고 왕성하게, 혹은 튼튼하게 자라서 햇빛을 충분히 받으며 경쟁에서 이긴다는 의미이다. 주변의 경쟁 환경에 뒤지지 않게 성장하고 변화해야 열매도 충실하게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실은 수확, 결과물의 의미가 아니라 베풂과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을 의미한다. 열매의 과육 안에 씨앗을 담아두고, 그 씨앗에 스스로 초기 생육을 할 수 있는 에너지와 공격을 견뎌낼 내성, 그리고 우수한 형질을 주입하여 세상 어디서든 뿌리내릴 수 있는 곳만 찾아낸다면 정착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자손에게 베풂은 물론이며 열매를 먹는 동물, 새롭게 나무가 자라날 곳의 환경에도 베푸는 일이다.

조경계의 전환기에 서서, 이제는 파이 나눠먹기를 넘어 파이 키우기를 함께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 내야 하지 않을까? 이미 파이를 많이 키웠다고 하시는 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기존 방식의 파이 키우기를 넘어 완전히 다른 분야로 ‘조경’을 넘겨 보내보자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나오면 그런 요소를 기존의 조경에 도입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며 부정적 견해를 표하는 분들이 있는 듯하다. 그건 하나의 예일 뿐, 실제론 다양한 분야에 조경을 어떻게 도입시킬 것인지, 조경을 널리 퍼뜨리는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의 요소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성장을 위해 조경을 어떻게 변화 및 적응시킬 것인지 머리를 맞대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조경인’끼리만 머리를 맞대선 불가능한 일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해야 할 것이다.

관찰자 입장에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조경계는 하나로 뜻과 힘이 모아지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조경’이란 이름으로 있기는 하지만 누구는 농림업으로서의 조경, 누구는 경관 및 디자인으로의 조경, 누구는 생태 및 환경으로서의 조경, 누구는 건축 또는 엔지니어링으로서의 조경, 누구는 다른 업무의 소재나 도구로서의 조경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서로의 생각과 추구방향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건설업, 엔지니어링업이 아닌 조경관련 종사자들(조경수 재배, 조경 컨설팅, 조경 유지관리서비스, 실내조경 및 원예화훼로서의 조경 종사자)은 법과 정책의 테두리에서 배제되고 있기도 하다.

가장 큰 문제는, 조경을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국토부, 하나의 공기업일 뿐 정책연구 및 입안 기관은 아닌 LH, 그리고 각 지자체나 조달청 등에서 조경산업의 변화를 주도하기엔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조경지원센터가 그나마 가장 적절한 대안일 것이지만, 어차피 제대로 챙겨줄 정부기관은 없어 보인다. 아니면 차라리 산림청에서 그런 일을 하기에 더 적합한 헤드쿼터, 컨트롤타워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게 조경의 현실이다. 실제로 조경용으로 사용될 조경수 품종개발, 특성연구 등도 다 산림청 산하기관인 산림과학원 등에서 하지 않는가.

지금은 내 것을 지킨다는 생각보다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퍼뜨리는 벡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선배와 후배, 이 분야와 저 분야, 학계와 업계가 서로 간에 일부는 내어주고 일부는 얻으면서 상호작용하고 동반성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최선을 다해 성장한 후 탐스럽게 익힌 과육을 동물에게 내어주면서 진정한 생명과 가치를 품은 씨앗만은 굳건히 보호되게 하여 과육을 먹은 동물에 의해 곳곳에 펼쳐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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