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경 강릉원주대 교수
김태경 강릉원주대 교수

[Landscape Times]머지않아 자치단체의 장이 새롭게 바뀐다. 같은 인물인 곳도 있겠지만...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리더가 일을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왜 내 손으로 그런 짓을 했는가?”라며 후회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한다. 제일 윗분의 뒷모습 때문에 우리는 가장 불행한 국민이 아닌가하고 자책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는가? 이것만을 연구하는 분들이 있을테고 그들의 생각과는 어긋날지도 모르지만 오늘만은 나의 방식으로 보려 한다.

scene 1. 광고주와의 협의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일로 얼마 전에는 ‘재벌가의 갑질’ 때문에 서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 사건이 있었다. 일의 세부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광고회사와의 갈등이었던 듯한데, 내용이 광고주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이란 항상 갑의 생각과 같을 수는 없기에 협의를 했던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욱’하며 음료수를 뿌렸던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전무라는 임원이기는 했지만 실소유주의 자녀이므로 회사의 장이라고 봐도 그리 잘못된 판단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의 됨됨이를 두고 사법적인 수준을 언급하는 것이 고개를 갸우뚱하게는 하지만 본질이 아니므로 이것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이 회사는 광고와 관련된 내용을 결정하는 사람이 전무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광고가 큰 업무일 수도 있겠지만 매출을 광고에만 기대고 있는 기업이 아니기에 그럴 수는 없으리라 추측해본다.

scene 2. 어느 시골학교에서~
한동안 학교에 숲을 만들어주는 지원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원요청서를 제출한 학교에 가서 현장심사를 하면서 교장에게 몇 가지 당부를 드린다. 계획은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효과를 기대해야 하기 때문에 교장이나 담당교사가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도록 수립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리고 얼마 후 숲 조성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 위해 잰걸음으로 달려간 학교의 모습이 이상하다. 학교의 울타리 역할을 하던 큰 나무가 안 보인다. 그 교사의 나이보다 오래되었을 고목이 단칼에 베어진 것이다. 꽃가루에 민감한 주민들의 민원 때문이라는 담당교사의 해명이 있기는 하지만 진실은 교장의 맘과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나무에 대한 고마움을 늘 가지고 살지는 않았겠지만, 헤아릴 수 없는 시간동안 수천 명의 학생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주고 그늘이 되었던 그래서 교장보다 먼저 학교를 생각하게 했던 거목이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교정의 한복판에서 학교의 얼굴역할을 하고 있는 향나무는 그 상징성으로 제거 혹은 이식이라도 하고 싶은데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동창회를 내세워 격렬히 반대를 하는 정반대의 상황도 발생한다. 어느 학교에서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기는 하지만 교장 자신의 취향에 따라 수목을 선정하고 어딘가의 연수지에서 감명 깊게 봤던 휴식공간과 녹지형태를 그대로 옮긴다. 그 대상이 공립학교라도 된다면 일은 더욱 심각해진다. 다음 교사의 취향은 분명히 다를테고 그렇게 만들어놓고 떠나버린 학교의 숲은 목숨을 부지할 리가 만무하다. 이럴바엔 차리리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담당교사는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으며 묵묵부답...

scene 3. 푸른 지붕집의 한 켠
“이쯔~음 되면 막가자는 것이지요?~~”라는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 전임대통령과 검사들과의 만남을 두고 과연 그것이 대통령이 할 일인가라는 조소 섞인 말들이 자자했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결과가 성공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일은 그래도 상대가 검사들이기에 인정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고 치자. 전봇대를 뽑아버려 몹쓸 규제를 한 번에 정리한 것처럼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던 또 다른 전임대통령의 업적(?)은 언뜻 보기엔 세심함이라는 착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왜 꼭 그분이 그것을 해야했나하는 의문이 생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참으로 할 일이 많구나!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왜(why), 어떻게(how)’ 이른바 6하 원칙. 이것은 하나의 행위에 대하여 모든 정황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사작성의 원칙으로 알려져 있고, 사건을 추적하고 범인을 찾아내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원칙일 것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이런 기법이 있음에도 왜 우리의 실생활은 합리적이지 못한가? 우리 주변에는 과장급의 도지사나 주사급의 시장‧군수들이 너무 많다. 교량의 색상을 파랑색에서 초록색으로 바꾸라고 명령하는 단체장을 수도 없이 보아왔던 터라 회의실을 나오면서 늘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과연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 소신껏 교량의 색상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을까? 시장과 군수가 수종과 규격 그리고 재료까지 결정해준다면 어느 직원이 일을 하겠는가? 몇날 며칠을 고민한 결과라고 해도 보고회의가 끝나면 결국은 휴지통으로 들어갈테니 일을 하는 것보다 칼 퇴근 후 아이와 한 시간이라도 더 놀아주어 가장의 품격이라도 높여야지! 너무도 자연스러워 당연스럽기까지 한 복지부동...

리더는 무엇(what)을 어떻게(how)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좀 더 힘주어 말하면 ‘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 국가를 포함하여 조직을 이끄는 데는 그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한다면 ‘언제인가?’가 중요한 결정사항이다. 그렇기에 리더는 골든타임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시기(when)에 집중하면 되는 자리라 생각한다. 교량의 구조나 건물의 색상, 식재될 수종, 전봇대 뽑기 그리고 효과적인 광고기법은 기술력(know-how)으로 해결해야 하는 대상이기에 기꺼이 기술료를 지급하고 있다. 기술자가 시원치 않아 리더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리더의 능력부족을 드러내는 증거일 뿐이다.

마키아벨리는 시골에서 칩거하며 저술한 <군주론>에서 “훌륭한 군주는 그의 신하(大臣)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능력 있고 충직한 신하가 있다면 그들을 알아보고 사용한 것이 군주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신하를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본다면 군주는 자신의 몫이 아닌 ‘어떻게(how)’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에게 중책을 맡기는 것이다. 영지와 직위를 주면서... when과 how는 다른 영역에 있는 결정대상인 것이다.

3개의 장면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겠지만 오늘만은 모든 시장과 군수들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두었기 때문일까? 이상하다! 그래도 비행기는 날아다니고, 시골학교의 교정에서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국가는 문을 닫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사회가 더욱 건강해져야 하기 때문에 기술인의 능력을 인정하고 정상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리더가 우리를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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