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영 렌데코 지이아이 대표
백주영 렌데코 지이아이 대표

아주 오래전 신문 한 구석에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조그만한 기사였음에도 왜 그 글이 눈에 띄었을까?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정영선 선배님이 하고 계신 소박한 조경관련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을 난 조경이라는 우산 밑에 버티고 있다. 여자라는 이름으로...

지난주 남북회담이라는 세계적인 이슈가 있기 전 우리사회는 ‘미투운동’으로 인해 요동이 치고 있었다...과연 조경계는 미투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던 안전지대였을까?

건축분야와 같이 조경분야는 학생시절부터 밤샘작업이 일상화되어 있었던 듯하다. 지금도 공모전, 강의 발표 준비에 스튜디오 불이 꺼지지 않는 학교가 많고, 많은 밤샘이 있은 후에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편견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모습은 학부 및 석박사 학생들 생활에서도 아주 일상적이다. 밤샘작업은 동기 및 동료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힘든 일상 후에 즐기는 음주와 흐트러짐은 사고를 동반하기도 한다. 졸업 후 사회에 몸담게 되더라도 설계사무소나 시공현장에서 유사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했을 때 명함을 건넬 때마다 듣는 말이 있었다. 여자가 어찌 이런 건설판에서 일을 하시나요? 일 수주가 어렵지 않나요? 조경분야가 속해있는 건설분야는 일상적인 업무 외에 뒤풀이 혹은 클라이언트와 같이 하는 식사를 동반한 음주문화가 많다. 여자 조경가에 따라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고, 첨부터 이런 문화를 배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도 여자 조경가가 적응하기에는 쉬운 문화가 아니다.

조경사회 주최로 수년 전부터 지속하고 있는 ‘여성조경인 골프대회’도 단초가 된 계기는 여성 조경인들의 사업 활성화였다. 만연한 건설분야 사업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골프를 시작한 여성조경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러 가지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노력하고 있지만, 캠퍼스나 업무 중에 여성으로써 극복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고 좋아하는 조경 일을 지속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야근과 밤샘작업이 많은 업무의 특성상 조경분야 역시 ‘미투’ 프리지역은 아니었던 게 사실이다.

이 모든 일들이 궁극적으로는 남녀차별이라는 문제가 근간에 있었던 게 아닌 가 싶다. 직장이나 학교라는 울타리 내 상하관계에서 오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피해가 발생한 것이리라.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아무렇지 않게 상대방의 인권을 유린해오지는 않았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습관이 되어버린 작은 행동들이 당하는 사람들에겐 인생이 무너질 만큼의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인식은 했었는지 그동안의 시간들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한다.

어느 조경학과에는 여학생이 더 많은 학교도 있다. 여학생이 더 우수하게 설계를 풀어간다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창의적인 남학생들이 두드러질 때도 있으며, 남자들의 합리성과 추진력이 업무 추진에 더 빛을 발할 때도 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남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의지하며 도와주고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조경분야에 일하는 여자가 아닌 동료로서 여자 조경인들을 봐야 한다. 업무 외에 같이 술을 마시고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야 끈끈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문화는 이젠 그만했으면 한다. 서로를 조경분야에 종사하는 동료로 동반자로 바라보자.

지금은 학회나 조경사회에도 여성만을 위한 행사가 진행되기도 할 만큼 여자 조경가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여성을 위한 배려가 필요치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여성을 동반자로, 동료로 바라보는 성숙된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여자 조경가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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