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주 (주)우리엔디자인펌 대표
강연주 (주)우리엔디자인펌 대표

[한국조경신문 강연주 객원논설위원] 사무실을 2016년에 이전했다. 강남역, 역삼역, 신논현역, 언주역이 각 꼭짓점에 있는, 강남 도심 블록의 한가운데 위치해있다. 필지의 대부분이 1종 전용주거지로 주택과 사무실, 근린생활시설이 주종을 이룬다. 공공에 열린 녹지라고는 국기원이 수십 년 동안 점유해 온 역삼공원과, 어린이공원으로 이용되는 자그마한 은행나무공원 뿐이다.

나무와 꽃을 보며 산책하기를 즐기는 필자는, 주변을 샅샅이 돌아다닌 결과, 근처에 있는 반포00 아파트가 산책에 제일 좋은 곳임을 알게 됐다. 주변의 다른 공원들은 규모가 작아, 풍부한 녹지를 즐기는 데에 한계가 있다. 또한 단독주택이나 사무실 등, 각 필지의 녹지들은 거의 대부분 외부에 폐쇄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반면 녹지율이 높은 대규모 아파트단지에서는 상대적으로 크고 다양한 녹지들과 만날 수 있다. 우면산이나 관악산의 즐거움과 견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빡빡한 도심 생활에 아파트 녹지가 여유를 안겨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삭막한 도시에 푸르름을 선물하는 것이다.

아파트의 녹지가 풍부해진 것은 1991년 대지면적에 대한 녹지의 비율이 30%로 강화되면서부터다(기존 10%). 또한 지하주차장의 설치가 법적으로 의무화되면서, 지상의 주차 공간이 줄어들었고 녹지 공간은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1997년의 IMF 외환위기는 그나마 있던 지상 주차마저 지하로 모두 들어가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아파트의 분양율을 높이기 위해 조경이 홍보에 적극 활용된 것이다. 생태면적율 기준과 비오톱, 그린웨이 등의 생태적 지침들도 녹지율 증가에 영향을 주었다.

대규모의 택지개발과 대단지의 재건축,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단지 자체의 크기가 증가하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아파트 단지 내부에서 하나의 녹지가 가지는 규모도 대형화되었고, 아파트 주동들의 배치는 중앙의 대규모 녹지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유도되었다.

크고 많아진 녹지에는 무엇을 채울 것인가? 거기에는 소비자와 건설사의 요구에 의해, 경쟁사와는 다른, 차별화된 상품이 들어가야 했다. 전통적인 정자와 대형소나무가 배치되고, 이국적인 느낌의 넓은 잔디밭과 가제보도 도입되었다. ‘천년의 나무’라는 특별한 상품성을 얻기 위해, 원래의 자리에 보호되어야 할 나무가 도심으로 들어오기도 하였다.

달동네를 부수고 지어진 아파트에는 엄청난 옹벽이 세워졌고, 이를 아름답게 가꾸고 녹화하기 위해 관련된 기술과 산업이 발전하기도 하였다. 건물의 위압감을 완화하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건축과 조경의 협업도 긴밀하게 이루어졌다. 선큰가든, 루프가든 등이 커뮤니티시설과 함께 조성되고, 개인적 활용 공간인 테라스가든, 1층 전용정원 등도 도입되었다.

최근에는 삶의 질을 중시하는 실거주자들이 늘어나면서, 분양 당시의 그림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입주 이후의 실제 조경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름뿐인 상품은 점차 그 영향력을 잃고, 상품의 기획에서부터 설계, 실제적인 구현과 이후 관리까지 일체화된 토탈 시스템이 중요하게 되었다. 아파트 내에 작가정원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러한 시대적 조류의 영향이다.

또한 주민들이 직접 만지고 느끼는, 오감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정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단지 안에 텃밭과 과수원이 있어, 이를 가꾸며 여가를 즐기고 힐링을 한다. 입주자 회의를 통해 오래된 아파트 조경을 리모델링하기도 한다. 주민들이 녹지 관리에 예전보다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할까? 더 나아가 기획 단계의 녹지 상품 자체에도 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건설사들과 설계자, 시공사의 근심은 깊어지고 있다. 주민들을 현혹시키는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설계와 시공, 이후의 관리도 잘 해내어, 입주한 주민들의 입소문을 타게 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들은 더욱 다양한 기획과 통합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입주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반영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와 함께 아파트 녹지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시설의 지하화는 인공지반녹지의 증가를 가져왔다. 거기에 대형목을 식재하다보니 유지관리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구조와 방수 등의 문제도 발생한다. 녹지에 심겨진 나무들은 평생 콘크리트 용기 안에서 성장이 아닌,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아파트 녹지는 폐쇄적이다. 단지라는 울타리 안에서 기능한다. 간혹 보행 동선은 법적, 계획적으로 주변과 연계되기도 하지만, 아파트 녹지의 연계는 권고 사항 이상의 효력을 갖지 못한다. 단지 내부의 녹지축 조성 자체도 여러 가지 여건에 의해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주변 공원·녹지와의 연계도 사실상 형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실질적인 이용자들을 위한 아파트 녹지에 대한 디테일한 고민들, 그리고 도시적 스케일에서 법적·제도적으로 다뤄야할 상대적으로 큰 스케일의 문제들, 물론 이 외에도 해결해야 할 것들이 산적해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부터 차근차근 고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아파트 녹지를 채우기에 급급했던 설계와 시공 등의 일련의 과정은, 이제 더욱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정책 관련자와 연구자들은 도시적 차원에서의 아파트 녹지가 갖는 생태적·미학적 특성에 주목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체화해야 한다.

사무실 정원의 꽃들이 꽃망울을 열기 시작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겨울, 얼마나 힘들게 버텨냈을지 생각하면 안쓰러우면서 대견하다. 추위와 무관심으로 힘들었지만, 간간히 비추던 따스한 햇볕을 받고 자라온 아파트 조경, 이제 그 꽃잎을 화사하게 틔우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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