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찬 (주)더가든 대표

[한국조경신문 김봉찬 객원 논설위원] 자연은 매우 복잡하고 또한 질서정연한 힘의 체계에 의해 작동된다. 사람이 살고 죽는 일도 꽃이 피고 지는 일도 빙하가 얼고 다시 녹아내리는 일도 모두 이 체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자연의 힘에 의해 서로 얽혀있고 발길에 채여 구르는 작은 돌도 제멋대로 무질서해보이지만 사실은 이 엄격한 질서 체계에 순응하는 과정이다. 인간도 이 체계 안에서 생명을 시작해 진화해 왔으며 본능적으로 이를 직감하며 살아간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대단히 어려운 질문이다. 감각적으로 또는 직관적으로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는 나는 그러나 늘 그랬던 것처럼 나의 방식으로 해답을 찾고자 궁리한다. 그리고 막연하게 인간이 느끼는 본능적 아름다움은 자연을 만들어가는 힘의 질서체계와 연계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다양한 자연의 힘이 그 균형점을 찾았을 때 우리는 안정된 상태를 만나게 된다. 이 안정된 상태는 사람에게 위험요인이 없는 안전성을 보장해준다. 이것은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단계의 정서적 편안함을 주며 그러한 감정들이 좀 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가다듬어져서 일종의 ‘아름다움’이라는 인식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균형과 조화와 같은 미적 표현들은 모두 이 안정적 상태를 나타내는 생태적 표현이기도 하니 말이다.

식생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점차 안정화된 극상림으로 수렴한다. 치열하게 경쟁하며 자신의 지위를 탐하던 식물들은 극상림의 단계에서 갈등을 이겨내고 화합하듯 균형과 조화의 미덕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자신의 생태적 지위를 확고히 하면서도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극상림의 식물들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 인간이 내면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기도 한다. 오래된 숲 안에서 마음이 평화롭고 숙연해지며 겸손해지는 것은 그들이 먼저 배우고 익힌 지혜를 우리에게 조용히 전해주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연에는 안정된 상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의 절대적 진리인 생성과 사멸의 순환체계 안에서 안정은 늘 불안정과 운명처럼 짝지어져 굴러간다. 다양한 힘의 상호작용 속에는 늘 교란이 발생하는데 강력한 산불이나 화산폭발, 대규모의 지각변동과 같은 강한 힘의 변화는 그 영향권 내에 있는 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불안정한 상태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돌출된 힘의 변화는 그 자체로도 매우 흥미롭고 파격적이며 이것이 다시 안정화 되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된다. 뉴질랜드나 제주도와 같이 지구의 역사 속에서 커다란 지각변동을 겪었던 지역들이 경이롭고 다채로운 경관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안정과 불안정 사이, 힘의 균형과 불균형 사이에서 우리는 간혹 예외적인 경관을 만나기도 한다. 마치 외줄타기와도 같이 거대한 잠재적 교란을 낭떠러지처럼 깔고 그 위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의 접점을 찾아 살아가는 식생이 있다. 알파인(Alpine)이라고 불리는 고산지대는 주극 식물이 분포하는 천상의 정원이다. 일률적으로 잘 맞추어진 나무들의 높이, 군락과 군락의 명확한 구획, 이 낮선 대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절묘한 완충지대와 태양을 등지고 곳곳에 펼쳐진 스노우베드(snow bed)는 자연이 아닌 마치 확고한 의도와 계획아래 만들어진 작품처럼 절제되어있다. 이러한 경관은 해안가 식생에서도 발견된다. 순천만 갯벌에 카펫처럼 펼쳐진 칠면초나 해홍나물 군락, 제주 갯바위 지대에 갯잔디 군락 등은 일반적인 식생에서 보여 지는 다양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너무 획일적이어서 오히려 인공적이기까지 하다.

고산지대는 지독하게 춥고 척박한 곳이다. 겨울은 길고 바람은 매서우며 땅은 거칠고 메말라 있다. 이 곳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일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해안가 역시 작열하는 태양과 거센 바람, 강한 염분과 수분스트레스에 맞서 싸워야 한다. 두 곳 모두 특정의 힘이 매우 강력하게 작용하는 대단히 예외적인 공간이며 식물이 생명의 끈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다. 이 혹독하고 강력한 힘은 식생의 다양성을 현저하게 줄여 놓았고 오랜 진화의 시간을 견디어낸 일부 식물들만이 자신들의 한계치 내에서 최소한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극한의 힘이 만들어내는 경관은 더 없이 단순하며 이 단순함은 내공이 깊은 노화가의 그림처럼 깊은 울림을 준다.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움은 나에게 어려운 숙제다. 그저 오랜 시간 자연을 기웃거리며 슬쩍 슬쩍 엿보았던 것들을 흉내 내는 수준이다. 그러나 재주 많고 열정이 넘치는 나의 후배들은 좀 더 용감하게 자연 안으로 발을 디디고 그 아름다움을 탐하길 바란다. 자연의 힘이 작용하는 원리를 궁리하고 그 힘의 결과물로 그려지는 디자인을 익혀 나에게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해주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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