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경 강릉원주대 교수

변하는 세상, 승자와 패자는 있는가?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듯이 밀어대는 시대상황. 수 천개의 퍼즐조각 앞에서 조경이라는 조각하나를 손에 쥐고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애쓰는 우리의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다. 달리는 차가 빠르면 빠를수록 좌우의 시야는 줄어들기 마련인데 지금의 우리는 앞만 보기도 바쁘다. 2016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던져놓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는 우리분야에서도 심심찮게 언급되고 있다. 아직은 이거다라고 확정지을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로 상징되는 구글의 인공지능이 그렇고 신경기술, 3D프린팅, 유전자 편집, 퀀텀 컴퓨팅(양자 컴퓨터공학) 그리고 아마존 등에서 한창 공을 들이고 있는 드론 기술들이 우리 차창 밖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들이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서 공개한 2018년 인간 삶을 바꾸어 놓을 10대 혁신기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가운데 ‘감각도시’라는 개념은 우리의 눈을 잠시 머물게 한다. 광대역 고성능 통신망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시티, 실제내용이야 어떻든 도시를 만드는 기술의 하나라고 이해되기 때문에 우리의 업역과 전혀 관련이 없지는 않은 듯하다. 생소한 개념임에는 틀림없지만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주니퍼리서치가 TOP20을 발표했고 서울이 6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세상의 속도는 아무래도 따라가기가 숨 가쁘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간의 몇몇 세미나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에는 사물인터넷, 드론, 3D 프린팅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과연 우리의 것 아니 우리의 영역 안에나 있는 것들인가? 오래 전부터 우리는 건설의 한 축, 복원의 주인공, 녹색복지, 재생의 선봉장 등 정부의 핵심정책이 바뀔 때마다 우리가 같이 하고 있음을 목놓아 외쳐댔다. 이해는 충분히 간다. 어떻게든 일거리를 늘려야 하기 때문이고 공공부문이 대부분인 입장에서 우리가 정책의 적임자임을 강조해야만 했다. 이것에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패자가 되는 것처럼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저들의 세상, 우리의 영토는 어디인가?
산업혁명이 화두라고 하니 한 번 되짚어 보자. 석탄을 사용하는 증기기관으로 시작된 1차, 자동차와 전기로 상징되는 2차, 인터넷과 자동화를 키워드로 하는 3차 산업혁명에 이어 빅데이터, 인공지능, 3D프린팅 등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과학부터 심리학과 역사 심지어는 문학과 경제학까지 들여다봐야 했다. 우리는 이것을 ‘종합과학’이라고 포장했고, 이들을 한 땀 한 땀 모아서 공원을 만들고 정원을 만들었다. 코디네이터로서 이것과 저것을 엮는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컴퓨터 회로설계를 위해 개발했던 AutoCAD를 빌려 평면도를 그리고 각종 통계에 쓰였던 Excel을 가져와 공사비를 산출했다. 연필과 로트링펜을 대신하고 주판과 계산기를 대체했던 것이다. 영미, 영미친구, 영미동생, 영미동생 친구들로 기억되는 겨울올림픽의 개막식에서 인텔이 띄운 2018대의 드론은 기네스북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우리도 그것을 가지고 싶어 한다.

드론,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용어를 입에 올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런데 무인헬기를 활용한 나의 경험은 거의 20년 가까이 된다. 하늘에 올라가 사진을 찍겠다는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아마추어 기술자와 함께 세운상가로 달려 가서 재료를 구입한 후 무인모형 헬기에 짐벌을 만들어 달고 그 위에 카메라를 장착했었다. 수 많은 추락을 경험한 끝에 필름으로 시작한 사진 찍기가 1000만 화소라는 디지털 이미지로 모니터에 올라온 순간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것을 만들었다고는 했지만 촬영의 본질적인 기술과는 상관없이 모형헬기+짐벌+카메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전형적인 코디네이터. 그 이후 기술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모형헬기가 드론으로 대체되면서 아이들의 놀잇감 수준이 되었고 나도 지금은 그 장난감을 구입해서 쓰고 있다. 나름 이것에 누구보다 많은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지금도 그것을 활용만 할 뿐이다. 땅을 기록하는 일외에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의 세상, 함께 하는...
정원과 공원을 만드는데 산업혁명이 왜 연관을 맺어야 하며 최소한 그들의 보폭에라도 꼭 맞추려 하는가? 혁명이라 명명된 신기술들은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쓰였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는 것임을 생각하면 ‘쾌적하고 안전한 인간환경 만들기’라는 목표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우리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다른 산업이 아닌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오면 사라질 직업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빅데이터에 맞설 수밖에 없는 분야는 완벽히 멸종될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과연 어떨까? 안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잠들지 못할 만큼의 걱정은 필요없다고 조심스럽게 예견하고 싶다. 조경은 인간의 자존감에 기반을 둔 분야라는 사실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여자의 화장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들 때문에 그리고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자기표현, 자기실현. 매슬로우의 인간욕구의 단계에서 이들은 최상위 단계로 분류되고 있는데 화장은 대표적인 자기실현의 모습이다. 수쩌우(蘇州)를 대표로하는 중국남방의 정원은 사대부들의 유산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를 쌓은 상인들이나 평민들이 이들을 모방하여 정원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 목적은 갖지 못한 신분의 대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땅을 갖고 그 안에 나무를 심고 연못을 만드는 것은 생존욕구가 아니다. 정원을 만들면서 생기는 근육통은 괴로움(痛)이 아니라 즐거움(悅)이 되고 꽃피는 봄철을 기다리는 마음은 활력으로 바뀐다. 알파고도 그럴 수 있을까?

3차에 걸친 산업혁명의 퍼즐 속에 우리의 조각이 한번이라도 맞았던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지금까지의 산업혁명에서 핵심역할은 물론이거나 그들과 함께 보폭을 맞췄던 기억도 없다. 4차의 시기인 지금은 더욱 멀어져 있는 듯하다. 우린 증기기관을 만들기 전부터 정원을 만들었다. 애초부터 그런 혁명과의 관련성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 지금와서 그들과 관련을 맺지 못하여 애를 태우고 있는가? 첨단의 시대에 첨단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는 것일까? 오히려 이런 첨단의 시대에 그들과 멀수록 우리의 개성이 더욱 커질 수도 있는데...

시대의 정신(zeitgaist)을 찾고 따르려는 노력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눈을 감아서는 안되지만 시대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우리의 영토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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