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창희 (사)영남지역발전연구원 대표

2016년 경주 지진에 이어 지난 11월 포항에서도 진도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더 이상 우리나라도 지진에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지만 이에 대비하는 우리의 준비는 미흡하기만 하다. 지난해 경주 지진 발생 이후 조경계에서도 지진에 대비하는 조경의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현실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이에 본지에서는 더 이상 지진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진단하고 지진에 대비하는 조경계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도창희 (사)영남지역발전연구원 대표의 ‘지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내용의 원고를 3회에 거쳐 싣는다.

① 지진을 겪고 난 우리의 현실
② 지진을 대하는 이웃(일본, 대만)의 자세
(마지막회)지진에 대비하는 조경의 역할

경주와 포항 지진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지진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됐다. 늦게나마 시작된 논의가 생활 속에 적절히 녹아들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줄여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현 단계에서 조경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당장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자
경주에서 지진이 난 후 일부 시민들은 대피장소로 지정된 경주 황성공원에 약 10동의 텐트를 쳤다. 그러나 얼마 후 경주시는 텐트마다 자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붙였는데 도시공원에서 야영을 금지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텐트 설치가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고조한다는 내용과 잔디훼손 등의 이유도 들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재난대피 시스템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일수록 생활공간 주변의 작은 공원부터 큰 공원까지 분포되어 있다. 대다수 시민은 일상생활에서 공원을 이용하고 즐기고 있는데,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 이용도가 높은 공원이 재해가 발생했을 때 대피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새롭게 공원을 만들고 대피소를 만들고 내진설계가 된 건물을 짓는 것도 해야 할 일이지만, 이는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일이다.

지진 피해를 경험한 많은 시민들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피난 장소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공원은 여러 피난 장소 중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일은 현재 조성 중인 공원부터 대피소 기능 추가해 안전한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하고, 조성된 공원은 방재공원으로서의 가능성과 부족한 점을 점검해야 한다. 현재 법 테두리 안에서 바로 실행할 방법부터 적용해야 한다. 가령 재해 발생 시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과 함께 건물붕괴 위험이 없는 공원이 안전한 피난장소로 작동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공원은 양적 확보에 매달리다가 최근 들어 공원문화와 주제를 담은 다양한 디자인이 적용되는 등 질적으로 향상됐다. 이웃 일본의 공원들과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 공원이 질적으로 높아진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오픈스페이스로써 공원기능을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살펴봐야 할 점이 있다.

첫째로, 관리문제와 범죄예방 등의 문제로 인해 공원경계는 막혀 있고 주진입구를 제외한 곳에서 접근이 어렵다는 것이다. 대피장소는 무엇보다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공원의 입지나 주변 환경으로 인해 막힌 경우를 제외하면 공원은 최대한 열려있어야 한다. 그래야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다.

둘째로 여러 가지 기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평상시 공원으로서 이용하다가 지진과 같은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공원은 안전한 피난장소로 기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벤치나 퍼걸러, 조합놀이대 같은 시설물에 피난민을 위한 보관함이나 임시텐트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 공원 규모에 따라 보관창고를 둬서 재난으로 대피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필요한 물품을 비치해야 한다. 저마다 생존배낭을 챙겨오도록 할 게 아니라 공원에서 비치해 둔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활용한다
공원을 활용해서 대피장소로 만드는 과정과 함께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준비가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주민이나 단체 등과 함께 공원으로 대피하기 위한 공원체험 활동이나 방재훈련 등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평상시에 준비하고 대비하면 재난 시 조금은 덜 당황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포항 지진이 발생했을 때 대피훈련과 재난체험 활동을 한 초등학교에서 차분하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은 생활 속에서 대피 훈련과 재난 체험활동의 필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 사례라 하겠다.

최근 조경계는 물론 각 도시차원에서도 현안이 되는 장기미집행공원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공원을 재난 시 도시의 중요한 대피소로 활용하게 된다면 많은 공원을 유지하고 살릴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공원은 만들고 유지하는데 많은 돈이 든다고 하지만, 안전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한다면 미조성공원의 조성방향이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더 확산될 것이다. 또한 도심 내 빈집을 활용하는 등 소규모공원 확보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실제로 지진에 대비한 공원은 아니지만, 전국적으로 여러 가지 사업의 일환으로 빈집을 활용한 방재공원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지역에 빈집을 헐고 쌈지공원을 만들어 평상시 주민의 쉼터로 활용하고 유사시 소화전을 활용한 화재진압이나 대피공간으로 활용하는 형태로 만들고 있다.

지진에 대비하여 대규모 방재공원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기존 공원을 활용하여 일상에서 이용하다가 유사시 방재공간이자 대피장소로 전환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원을 방재공원으로 조성하는데 있어 여전히 걸리는 문제는 법과 제도다. 우리 분야에서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공원과 방재체계 및 피난체계를 결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특히 방재공원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현재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과 배치되는 내용이 많아 적용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공원을 안전한 대피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법개정에 대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참사’를 겪고 난 이후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6년 전 고베에서 할머니가 해준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한신대지진 이후 자기땅 일부를 내놓아 공원을 만들고 현재 공원운영과 관리를 직접 해나가는 할머니는 공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원은 우리에게 보험 같은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니까요.”

※도창희 (사)영남지역발전연구원 대표는 동아대 대학원(조경학과)에서 ‘도시공원의 방재력 평가와 방재공원 계획에 관한 연구 : 부산시 사하구를 대상으로’를 내용으로 박사논문으로 썼다. 이에 앞서 ▲부산광역시 도시공원의 방재력 평가와 방재공원의 계획에 대한 연구(2011.부산발전연구원, 강영조, 도창희, 윤성융) ▲도시공원의 방재력 평가에 관한 연구(2012. 강영조, 박준규, 도창희) 등 방재 관련 논문에 참여했다. 농어촌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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