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경주 지진에 이어 지난 11월 포항에서도 진도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더 이상 우리나라도 지진에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지만 이에 대비하는 우리의 준비는 미흡하기만 하다. 지난해 경주 지진 발생 이후 조경계에서도 지진에 대비하는 조경의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현실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이에 본지에서는 더 이상 지진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진단하고 지진에 대비하는 조경계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도창희 (사)영남지역발전연구원 대표의 ‘지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내용의 원고를 3회에 거쳐 싣는다.

① 지진을 겪고 난 우리의 현실
② 지진을 대하는 이웃(일본, 대만)의 자세
③ 지진에 대비하는 조경의 역할

지진으로 우리가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주변 이웃나라는 어떻게 지진에 대비하고 대응하고 있을까? 수 많은 피해와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준비 되고 매뉴얼이 만들어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경험해야 할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가능하면 피해를 입기 전 이웃의 대비과정을 살펴보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배우는 지진

▲ 일본의 방재공원 안내판

일본이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를 뒤로 하더라도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타산지석이 되어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일본은 ‘지진다발국’으로 경주나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보다 피해나 규모가 큰 지진이 더 자주 일어났으며, 불행하게도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나라다.

일본은 막대한 인명 피해나 물적 피해를 겪으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지진에 대비하고 대응해 왔다. 국가적 차원에서 방재체계를 세우고 이를 토대로 각 지방에서 그에 상응하는 대비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 입구안내판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일본의 지진에 대한 대비책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는 지진은 대비해야 하지만 대비 그 자체가 평소 생활을 옥죄고 지나친 불편을 주는 상황까지는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비책은 곳곳에 잘 설치되어 있다. 단지 눈에 띄게 두드러지지 않을 뿐이다.

재난을 예측하고 발생 즉시 통보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주요 도시 어디를 가더라도 조금만 관심 갖고 보면 지진 등의 재해가 발생했을 때 현재 위치에서 가장 빨리 피난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안내판이 곳곳에 있음을 알게 된다.

피난장소를 가기 위한 피난로도 녹도라는 형태로 정비되어 있고, 우선 몸을 피하는 곳과 좀 더 오래 머무는 곳에 따라 정비하거나 준비하는 형태를 달리해서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화제가 되었던 지진 대비 매뉴얼은 동경도에서 만들어 배포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한글판도 있어 국내에서 만든 지진대비 매뉴얼로 회자되기도 했다.

이 매뉴얼에는 일시 집합 장소로 학교와 근처공원을, 화재 위험으로 일시 집합 장소를 가지 못할 경우 큰 공원이나 광장으로 피난하도록 하는 등 공원을 피난소의 하나로 지정하고 있다.

한신 대지진 등 엄청난 규모의 지진에 도시가 초토화되고 나면 그 후유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아무리 대비를 하고 대응을 해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다.

일본의 전반적인 도시방재 정책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보다 세부적으로 실행에 도움이 되기 위한 지침을 세우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구마모토 지진에 또 당하고 피해를 입은 것을 보면 예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가차원의 방재체계는 물론이지만 도시공원을 활용한 지진 피난공간과 복구활동을 돕는 부흥공간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방재공원은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검토하고 적극적으로 도입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도시공원이 방재공원으로
일본의 방재공원은 법적인 지위를 가진 도시공원은 아니다. 기존 도시공원법에서 분류하고 있는 공원을 크기에 따라 피난권역과 피난인구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기능을 부여했으며, 각 유형별로 재해때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시설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권장하고 있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필요성과 역할을 충분히 공감하기에 일본의 많은 도시공원이 평상시 오픈스페이스로써 도시공원 기능을 유지하다가 유사시 방재공원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표> 일본 방재공원 유형과 우리나라 도시공원
종류 역할 공원종류
일본 한국
광역방재거점 기능을 지닌 도시공원
(광역방재거점형 공원)
주로 광역적 복구, 부흥활동 거점을 하는 도시공원 광역공원 등 광역권 근린공원
광역피난지 기능을 지닌 도시공원
(광역피난지형 공원)
지진, 화재 등 재해 발생한 경우 광역적 피난에 이용되는 도시공원 도시기간공원 도시지역권 근린공원
1차 피난지 기능을 지닌 도시공원
(1차피난지형 공원)
지진, 화재 등 재해 발생한 경우 일시적 피난에 이용되는 도시공원 근린공원 근린생활권, 도보권 근린공원
피난로 기능을 지닌 도시공원 광역피난지와 안전한 장소로 연결되는 피난로나 녹도 녹도 등  
석유화학공장 지대 등과 배후 일반시가지를 차단하는 완충녹지 주된 재해를 방지하는 목적과 완충녹지 등의 도시공원 완충녹지 완충녹지
생활권방재거점 기능을 지닌 도시공원
(생활권방재거점형 공원)
주로 생활권방재활동 거점을 하는 도시공원 가구공원 등 소공원
어린이공원
자료 : 건설성도시국 공원녹지과(1999) 방재공원계획·설계 가이드라인, 필자 재정리

일본의 공원은 규모에 따라 지진 같은 재해가 왔을 때 긴급히 피난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하루 이틀 머물기도 하며 어쩔 수 없이 장기간 거주하기도 한다. 생존배낭을 들고 오는 것이 아니라 공원에 가면 각 공원기능에 맞게 필요한 것을 갖추어 놓았다.

▲ 비상용 화장실 안내판
▲ 비상용 화장실 맨홀













당장 일본의 방재공원은 피난에 대비해서 경계부에 단차나 계단을 배제하고 쉽게 공원으로 뛰어갈 수 있도록 하였고 공원에 어떤 방재시설이 있는지 알기 쉽게 안내판을 설치해 두었다.

또한 지진으로 끊어진 기반시설에 대비해 내진성 저수조와 우물, 비상용 발전시설이나 태양광 공원 등을 설치하고 있다. 사람이 동시에 몰리는 것을 대비해 광장 등 오픈스페이스를 충분히 갖추고 비상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재물품들을 방재비축창고에 보관하고 상시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야외에서의 피난생활이 길어질수록 화장실의 경우도 큰 문제가 되는데 평상시 전혀 눈에 띄지 않도록 맨홀 형태로 유지하다가 유사시 화장실로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 방재퍼걸러

한편으로 공원에서 흔히 쓰는 퍼걸러나 벤치 등도 유사시 텐트기능이나 불을 피울 수 있는 화덕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어린이놀이시설도 방재 기능이 있는 다기능 시설로 설치하고 있다.

처음에 일본의 이런 준비를 보고 신기하기도 하고 극성스럽다싶을 정도였지만, 이 정도의 준비로 인해 평상시 대비 훈련을 하고 몸소 익혀 둔다는 것은 집집마다 생존배낭을 두고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와 비교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 방재벤치 안내판
▲ 공원에 설치된 방재벤치









 


 

▲ 조합놀이대 방재활용 안내판
▲ 조합놀이대












 

뒤늦은 준비, 대만에서 배운다
상대적으로 지진에 안전하다고 여겨 대비하지 않았던 대만의 경우도 1999년 9월 21일에 발생한 진도 7.3의 대만 찌찌대지진(921 台灣集集大地震)으로 진원지인 난타우현현 타이중현, 타이중시 등에 큰 재해를 가져왔다. 지진재해로 사망자 2455명, 부상자 1만1305명, 도괴 건물이 약 8만4000동 이상, 피난 인구는 10만 명, 경제적 손해는 3조6000억 원으로 대만에서 20세기 최대의 재해가 되었다. 오랜 세월 대만은 대규모 재해를 당한 적이 없고 방재 등 재해 대책을 경시해 왔다.

대만 당국은 이듬해부터 9월 21일을 재해 방지일로 정해 매년 재난 대피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지진 대피훈련과 함께 지진발생 행동 요령에 관한 홍보물을 제작, 배포하고 9.21 지진 교육관을 조성, 지진을 가상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경각심을 고취시켰다. 

<표> 대만의 피난거점 분류
구분 지정 종류
긴급피난거점 빈터, 공원, 도로
일시적 피난거점 근린공원, 녹지
임시수용거점 초중학교, 면적1ha이상의 공원
중장기수용거점 고등학교, 대학(체육관 등) 전시형 공원
자료 : 楊舒淇(2005), 台湾の防災復興とオープンスペース. 都市の緑化技術 No.58 p. 38 

일본처럼 대만도 공원을 규모에 따라 피난 거점을 정하고, 방재공원으로 계획하고 만들어 가고 있다.

일본은 물론 대만도 처음부터 지진에 대비하고 피난공간이 될 수 있도록 방재공원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직접 지진을 겪고 피해를 입으면서 건물이 무너지고 집안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공원이 하나의 대안이 되었고 그로 인해 개인 땅을 기부하면서까지 방재공원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 공원은 단순한 오픈스페이스나 경관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곳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겪고 나서 만들기 시작할 것인가? 그러기에는 그들이 겪은 피해가 너무도 컸다. 더 큰 피해가 오기 전에 지금부터 준비하고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 도창희 대표

※도창희 (사)영남지역발전연구원 대표는 동아대 대학원(조경학과)에서 ‘도시공원의 방재력 평가와 방재공원 계획에 관한 연구 : 부산시 사하구를 대상으로’를 내용으로 박사논문으로 썼다. 이에 앞서 ▲부산광역시 도시공원의 방재력 평가와 방재공원의 계획에 대한 연구(2011.부산발전연구원, 강영조, 도창희, 윤성융) ▲도시공원의 방재력 평가에 관한 연구(2012. 강영조, 박준규, 도창희) 등 방재 관련 논문에 참여했다. 농어촌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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