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가드닝 = 2017년 12 월호] 2018 서울 패션위크 오프쇼로 진행된 패션쇼 ‘SEE SEW SEEN by LEE JEAN YOUN Collection’이 쓰레기를 주제로 지난 10월 20일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에서 열렸다. 패션쇼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됐던 ‘쓰레기 전’과 연계된 행사로, 패션을 통해 쓰레기를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쓰레기’라는 주제를 런웨이로 호출했던 쇼는 식물과 환경을 생각하는 이진윤 패션디자이너와 가든스타일링을 담당한 김원희 가든디자이너의 만남으로 빛을 발했다.

쓰레기로 이어지는 소비 행위, 패션쇼로 표현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에서 이색 패션쇼가 있었다. 거기엔 압도적인 무대나 화려한 런웨이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발관이나 다방, 사진관 등 빛 바랜 상점 간판과 오래된 건물, 그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야생초화로 조성된 작은 화단들이 곳곳에 있을 뿐이다. 수차례 오튀쿠튀르에 참가한 이진윤 패션디자이너(SEE SEW SEEN 대표)의 아이디어에서 물꼬를 튼 패션쇼는 김원희 가든디자이너의 가든스타일링과 만나면서 완성도가 배가되었다.

사실 공간의 발상은 이진윤 디자이너가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됐던 ‘쓰레기 전’을 접한 후 낡았지만 소중한 우리 일상이 녹아든 패션쇼를 박물관 측에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전시에 소비되고 버려지는 또 하나의 쓰레기-옷이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애초 예산에도 없었음에도 끈질긴 설득 끝에 어렵사리 쇼를 성사시켰다.

그날 패션쇼에서는 이제는 잊힌 병풍자수나, 오래된 나무빨래판, 버려진 자투리 천, 이불 솜 같은 재생소재나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물건들을 이용한 리사이클링 메시지를 패션을 통해 전달했다.

그는 현재 넘치게 소비돼 쓰레기로 전락하는 옷을 염려한다. “글로벌 패션 회사의 등장과 함께 그 규모와 속도는 점점 거대해지고 빨라졌다. 그러나 성장 이면에서 야기되는 환경적, 사회적 문제는 세계적으로 심각한 화두로 인식되고 있다. 거대 SPA 브랜드에서 대량 생산되는 옷들의 수명주기가 점차 짧아지면서 대량 폐기된다. 매해 컬렉션을 하는 디자이너로서 환경에 대한 고민과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다.”

한국적인 색채로 물든 재생 가능한 옷, 식물과 만나다

원래 패션쇼에서 자연소재를 많이 사용했던 그는 갈대나 자작나무를 이용해 쇼를 기획했고, 또한 런웨이 위로 조명에 비친, 마치 달빛 아래인 듯 빛나는 소금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 이처럼 자연에 대한 미감은 어릴 적 자주 접했던 이름 모를 들풀이나 호수 등 예전 기억에 기대있다. 경복궁이라는 장소의 궁중 이미지에 한국적인 것을 가두고 싶지 않다는 그는 “한국적인 것은 우리 부모 세대가 관통했던 시기에 놓여있다. 추억의 거리에 있는 만화방, 미용실, 국밥집, 그리고 이름 모를 들풀이 내게는 한국적인 것이다”며 “소박함 속에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 그게 바로 한국적인 것의 포인트다”고 말한다.

해외 패션쇼에서도 항상 한국적인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이진윤 디자이너는 한국적인 것을 그만의 방식으로 풀고자 한다. 그래서 이번 쇼의 가든스타일링도 김원희 가든디자이너에게 부탁했다. “내가 아무리 식물을 알고 좋아해도 식물 레벨 등 자연스러운 연출을 위해서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함께 작업하고 교감하는 과정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에서 시너지 얻다

모델과 관람객의 시선이 교차하는 패션쇼 현장에서 식물은 더 이상 고정된 독립체가 아니라 주변 요소와 결합돼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로 다가왔다. 한번 사용되고 버려지는 것이 아닌 물과 공기만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식물은 옷과 함께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경계하는 패션쇼와 닮아 있었다.

이번 쇼의 가든스타일링에 참여한 김원희 가든디자이너는 이진윤 디자이너와의 작업에 큰 의미를 둔다. “쇼를 준비하기 전 식물에 대해 상의하고 수십 차례 의견을 주고받으며 실제 식물 질감과 디자인에 대해 탐색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짧은 시간 안에 식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정원을 디자인하는 입장에서 패션쇼장의 식재디자인이 궁금하다. “추억의 거리는 1960~70년대의 풍경이 그대로 재연된 곳으로, 중앙 런웨이와 골목 곳곳에 식물을 배치해 관객이 가을정취를 느끼게 했다. 갈사초, 억새, 모닝라이트, 쑥부쟁이, 원평소국 등 가을 들판을 바라보는 듯한 화단코너나 윤노리, 골든피라드, 검양옻나무 등으로 정원 속 한 부분인 듯 재연했다. 관객석에도 패션쇼 콘셉트와 조화롭게 식물을 심어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다”며, 이어 “기존에는 감상 대상이었던 정원이 패션쇼 무대로 옮겨와 컬렉션과 함께 전체 무대에서 연출되면서, 컬렉션과 움직이는 모델, 음악, 식물로 배치된 런웨이가 하나가 되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즐길 수 있었다”면서 정원 원래의 아름다운 풍경 외에도 다른 분야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가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음을 덧붙였다.

길 가는 행인들의 시선, 소음조차 자연스러웠던 열린 공간으로서의 런웨이 현장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패션쇼를 준비한 두 디자이너는 “단시간에 준비한 쇼라 협찬 등 지원부분이 아쉬웠지만 언젠가 비슷한 콘셉트로 다시 한 번 쇼를 열어 파트너십을 발휘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진윤 패션디자이너

LEE JEAN YOUN‧(주)씨쏘씬 대표. 홍익대 대학원 미술학 석‧박사 졸업. 2010‧2011 파리 오튀쿠튀르 컬렉션과 홍콩, 파리, 뉴욕, 서울, 바르셀로나 등 세계적인 패션위크 컬렉션에 참가한 바 있다. 2009 2nd MANGO FASHION AWARDS에서 GRAND PRIZE 수상에 이어 LEE JEAN YOUN FOR MANGO LINE 출시했다. 올해 2017 원주 한지 문화제 오픈쇼를 열었다.

김원희 가든디자이너

이화여대 졸업. 패션홍보 분야에 근무한 바 있다. 일본에서 플라워 어레인지먼트를 공부했으며 2016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일반부 정원 ‘나도 정원해 볼까’를 조성했다. 최근 개인정원, 베란다, 카페 등 다양한 장소에서 가든스타일링 작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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