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나무는 공익적 기능이 매우 많다. 그리고 그 최대 수혜자는 인간이다.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간단하면서 명료하게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어린 소년이 성장과정부터 노년에 이르는 동안 나무가 제 몸을 아낌없이 내주는 희생의 과정을 그린 내용으로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까지 많은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다. 주인공인 사과나무가 한 소년의 유년시절에는 사과를 생산해 주는 것 이외에도 나뭇잎으로 그늘로 시원하게 해주고 나무 아래에서의 낮잠, 나무 줄기에 그네를 설치하게 하는 등의 놀이감이 되어주었다. 소년이 성인이 되니 나무 가지를 내주어 집을 짓게 해주었고, 장년이 되어서는 몸통을 내주어 배를 만들게 해줘서 소년을 넓은 바다로 진출하게 해주었다. 노인이 돼서 고향에 돌아온 소년에게 베어진 늙은 나무는 그루터기로 남아서 같이 늙어버린 소년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까지 제공해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야기는 여전히 감동적이다.

며칠 전에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나무와 관련하여 2천억대의 소송 건이 생겼다. 세 아들과 센트럴파크를 산책 중이던 한 엄마가 쓰러지는 거대한 느릅나무에 깔린 것이다. 4살과 2살배기 아이는 엄마가 밀쳐내어 무사했지만 안고 있던 생후 1개월짜리 아가와 엄마가 큰 사고를 당했다. 아이 엄마는 뇌진탕, 척추골절 등의 중상을 입었고 아기도 두개골 골절상을 입었다. 아직 엄마는 24시간 중환자실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본인의 피해가 더 깊었을 것이다. 공원 관리를 잘 하기로 이름난 센트럴파크에서 일어난 일이라 충격이 더 크다. 점점 노후화되는 공원이 늘어나는 우리나라의 공원관리도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현대 도시의 30년 정도가 지난 아파트의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자원 낭비에 대한 지적이 많다. 그 곳에 살아있는 생명인 나무가 재건축으로 인하여 수명을 단축하고 있다. 그 중에 올해 문제로 삼을만한 대표적인 아파트인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둔촌 주공아파트의 경우를 살펴보자. 5층짜리 아파트가 지어진 1980년에 심어진 나무는 당시에는 작은 나무였지만 38년이란 세월이 흐르자 많은 나무가 아름드리 거목이 되었다. 대단지 아파트가 입주 초기에는 콘크리트 숲이지만 세월이 지나자 40살이 훨씬 넘은 조경수가 아파트 단지를 푸르름이 우거진 숲으로 바꾸어 놓았다.

재건축을 하기위한 인허가 조건 중에 기존 수목을 옮겨야 하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수목 이식을 계획했지만 실제 이식수목은 전체의 8% 밖에 안 된다고 한다. 큰 나무 한 그루 옮기는데 100만원 씩 소요되고, 옮겨진다고 해도 세심한 수목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가져가는 사람이 없어서 이곳의 큰 나무들은 베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인근의 상황이 비슷한 대규모 재건축 아파트단지의 철거현장을 보면 커다란 고목들이 무참히 베어져서 산처럼 쌓여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경북 군위에 1000년 전부터 거주하던 느티나무가 인간에 의해 날벼락을 맞았다. 근원 직경이 4m에 이르는 이 나무는 매년 마을 주민들에게 수호신 대접을 받으며 제사상을 받아먹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와 6.25 동란 등의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건재한 덕에 마을의 수호신이 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이 마을에 군위댐이 건설되자 수몰지구 속하게 된 느티나무는 경북 고령으로 조심스럽게 이식되었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고령 땅에서 미처 자리 잡기도 전에 서울 강남의 유명 아파트 재건축 단지로 다시 옮겨졌다.

그 사이에 커다란 덩치의 느티나무 가지와 뿌리는 이리저리 잘리고 찢겨졌다. 사람으로 치면 100살 노인에게 대수술을 짧은 기간에 두 번씩이나 한 셈이 된 것이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 1000년이나 된 나무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세간의 큰 화제가 되어 입주 당시에는 유명세를 꽤나 탔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서 대수술의 후유증을 못 견딘 느티나무는 윗부분부터 제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본래의 모습을 깡그리 잃어버려서 기둥만 남은 느티나무의 몸체에 인간은 이를 대신하려고 다른 느티나무 가지를 덧붙여 놓았다. 식물학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다시 생각해 본다. 나무가 주는 공익적 기능과 녹색치유의 기쁨, 생명의 경외감 등을 차치하고라도 인간이 자신들의 이득만을 추구하느라 대안도 없이 사라지는 늙은 고목나무의 슬픔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