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식(회장·조경기술사)

지난 6월 28일 한미정상회담으로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하여 비행기 트랩을 내려올 때 입은 의상이 눈에 확 띠었다. 김정숙 여사의 흰색 원피스에 걸쳐 입은 옷에 프린팅된 그림이 푸른 숲이었기 때문이었다.

옷 그림은 알고 보니 정영환 화백이 그린 ‘그저 바라보기-휴(休)’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정영환 화백은 2010년부터 시작한 ‘그저 바라보기-휴(休)’ 시리즈 그림을 그려 왔는데 김정숙 여사의 의상에 적용된 그림도 그 중에 하나다. 정영환 화백은 작품의 의도를 삶에 지친 현대인에게 휴식과 안정감을 주고자 그림 시리즈를 시작했고 한다.

김정숙 여사의 의상에 새겨진 ‘그저 바라보기-(休)’ 그림 속에는 ‘대한민국 걷고 싶은 길’ 중 첫 손에 드는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연상케하는 커다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그 앞에는 대한민국 민간정원1호인 천안의 ‘아름다운정원 화수목’에 올망졸망 서있는 잔잔한 향나무 열식이 눈앞에 그려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아마도 작가는 그림을 보는 이 마다 각자 자기의 경험과 추억, 인지 등을 통하여 편안한 휴식과 안정감을 느끼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선조들은 의복에 그림을 그려서 삶의 지혜와 위안을 표현한 것이 많다.

조선 최고의 여류예술가로 칭송받는 신사임당의 그림 중 치마그림은 삶의 지혜와 현명함이 압권으로 표출된 최고의 작품이다. 어느날 잔치집에 초대받아 참석한 신사임당은 우연히 국물을 나르던 하녀가 어느 부인의 치맛자락에 걸려 넘어져서 치마가 얼룩지게 된 것을 보게 됐다. 옷이 젖은 부인은 “이를 어쩌지? 빌려 온 옷을 버렸으니...”하며 난감해했다. 가난하여 잔치에 입고 올 옷이 마땅치 않아 빌려 입은 옷인데 빨아도 남아있을 얼룩 때문에 부인은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이 모습을 본 신사임당은 얼룩진 치마위에 포도송이와 잎사귀를 그려서 주었고, 난처했던 부인은 실물과 똑 같게 생긴 그림 때문에 비싼 가격에 치마를 팔아서 주인에게 되돌려주었던 감동적인 일이 있었다. 포도나무 그림 덕에 딱한 일이 해결 된 것이다.

또 하나의 포도나무 그림이 가져다준 감동이 있다. 조선 숙종 시 도승지를 지낸 청백리 홍수주의 환갑잔치에 쉰이 다되어 본 막내 딸이 빌려온 비단치마를 입고 다니다 간장방울이 튀겨서 얼룩이 지고 말았는데 당시 비단은 중국에서 들여왔기 때문에 치마 한감에 쌀 몇 섬과 가격이 같았다. 지난 10년의 귀양살이에서 문인화로 세월을 보냈던 홍수주는 치마 위에 포도 넝쿨을 그려 넣은 후 간장 얼룩 방울 위에는 포도송이를 올리고 큰 얼룩에는 포도 잎을 그렸다. 이 치마는 중국의 호족에게 비싼 가격에 팔려서 비단치마 10벌이 됐고 주인에게 치마를 되돌려주고도 남았다. 치마를 되돌려주게된 막내딸이 치마에다 그림을 또 그려서 팔면 우리집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응석을 부렸으나 홍수주는 더 이상 치마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욕심을 자제하고 삼가는 청백리정신이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 유배생활 중 딸이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다산은 예전에 부인이 보내주었던 헌 치마에 ‘매화병제도’를 그려 보내는 축하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림 속의 매화나무가지 위의 한 쌍의 새는 딸 부부를 그린 것이며 매화의 꽃과 향기는 부부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라 애틋한 마음과 감동이 더한 그림이라 하겠다.

이처럼 숲과 나무는 그림 속에서도 많은 사연과 정감을 담을 수가 있고 평온과 휴식을 주며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준다. 김정숙 여사의 의상 속 메타세쿼이아와 향나무가 옷 밖으로 나와서 현실에 펼쳐지는 공간이 많아진다면 훨씬 큰 감동과 힐링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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