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청와대가 비었다. 그리고 국회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국민이 직접 손으로 뽑은 정치인들이 제 몫을 못하고 있으니 볼썽사납다. 원래 청와대 터는 고려 숙종 때 풍수도참설에 근거하여 왕이 몇 달씩 머물 수 있는 이궁(離宮)을 설치한 곳이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신무문 밖에 조성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지세가 뛰어난 정원이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후 계속 방치되다가 고종 때 대원군이 비로소 중건하였고 후원에 전각을 세우고 문과, 무과 과거장과 권농, 연무의 장으로 복구가 된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경복궁 안마당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우고 경복궁 후원에 있는 전각을 허물어 조선총독의 관사를 지어서 사용했으며, 해방 후 미 군정청 치하에서는 하지 중장의 관저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이 곳을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사용하다가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로 이름만 바꾸었고 노태우 대통령이 낡고 좁다는 이유로 철거하고 본관과 관저를 신축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와대 관저 공사 당시 땅을 파다가 ‘천하제일복지’라는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이 곳은 고종 때 비문과 샘이 있는 오운각 권역으로 왕의 개인공간으로 이용되던 곳이었다. 일제는 어쩌면 총독부 관저 공사를 하면서 이곳을 일부러 묻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발견 당시 국운이 다시 오른다는 기대감이 부풀었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았다.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북악산의 정기를 끊고자 일제가 조선총독부 관저를 지은 자리에 100년이 가깝도록 민족정기를 복원시키지 못하는 후손들이어서 청와대가 지속적으로 격랑에 쌓인다는 풍수학자들의 주장을 차치하고라도 경복궁 후원은 예전의 모습으로 복구돼야 하겠다.

그리고 청와대는 행정수도가 있는 세종시로 옮기면 좋겠다.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40여 개의 행정부처가 세종시에 있는데 행정수반이 서울에 있는 것은 업무 효율적인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비능률적이다.

국무회의를 한번 하려면 세종시에 있는 국무총리, 장관들이 모두 청와대로 올라와야 한다. 국가에 위급한 상황이 생기거나 중요한 결정을 시급히 해야 할 때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이다. 따라서 청와대는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세종시로 가야만 한다.

그 다음으로 청와대 터는 옛날 경복궁 후원으로 복원하고 일제가 훼손하여 지금은 전남 영광에 옮겨진 융무당(융무당)과 융문당(융문당)을 원래 위치로 돌아오게 하고 다른 전각들도 복원하여 창덕궁 후원처럼 대한민국 궁궐정원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 그러면 600년 역사도시 서울의 품격은 한껏 올라갈 것이고 일제에 의해 망가진 역사도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는 한강물의 오랜 퇴적작용으로 토사가 쌓이고 쌓여서 생긴 모래섬이었다. 국회의사당 자리에는 양말산(190m)이 있었는데, 예로부터 양과 말을 기르던 장소였고 조선시대에 사축서(가축의 목장관리 관청)가 설치된 곳이다. 양말산 주위에는 울창한 소나무와 낙엽송과 갈참나무 등이 숲을 이루어 뻐꾸기, 매, 산토끼, 쥐, 뱀, 다람쥐, 부엉이, 족제비, 너구리도 있었다. 겨울철새도 날아들고 산에서부터 강줄기까지 옹기종기 작은 마을이 모여 있었고 농사는 모래땅이라 땅콩농사가 대부분이었다. 6·25 동란 중에는 미국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의 미군 위문공연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의도는 바로 옆의 밤섬을 폭파한 바위로 윤중제를 만들어 홍수 피해를 없게 하였으며 양말산을 허물어 국회의사당을 지었다.

1975년에 준공된 국회의사당은 설계 과정부터 온당치 않았지만 옥상의 평지붕을 돔지붕으로 바꾸고 열주를 세우는 것도 권력의 힘이 작용했다.

당초 설계의 평지붕은 친밀감과 안정감을 강조했는데 권위와 위세를 보여 주는 돔지붕으로 변경한 것이다. 건축가 자문위원회에서 단 한 사람의 건축가도 의사당 건물에 돔을 올리자는 의견에 동의를 하지 않았지만 권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지 약 33만㎡(10만평) 연면적 약 8만3천㎡(2만5천평)의 국회의사당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조성됐다.

국회의사당에는 300명의 국회의원과 사무처직원 등이 근무하고 있고 국회의사당 본관과 의원회관 그리고 국회도서관이 있다. 대한민국의 입법, 재정, 기타 일반 국정에 결정적으로 참여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기관인데 이곳과 연관된 정부기관은 거의 세종시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일이 생기면 세종시에 있는 공무원들은 보따리를 싸들고 여의도 국회로 달려간다. 국정질의와 기관 보고, 예산 협의 등에 수많은 공무원들이 시간과 경비를 낭비하며 서울과 세종시를 왕복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1년간 서울과 세종시간의 길바닥에 버려지는 비용만 해도 수천억 원은 될 것이라 짐작한다. 예산낭비도 그렇지만 시기를 놓쳐버리는 일을 생각하면 천하에 없는 비능률적인 국가 조직의 운영 형태다.

그래서 국회도 청와대와 함께 세종시로 내려가서 관련 기관과 순발력 있는 국정 논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워싱턴과 뉴욕의 구조를 서울과 세종시와 비교해보면 두 기관이 이전해야 하는 사유가 더욱 명확해진다.

그리고 지금의 국회의사당은 국제적인 컨벤션센터와 공공도서관, 야외공연장 등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켜서 한류문화의 메카로 변모하게 된다면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다. 영국의 첼시플라워쇼에 버금가는 국제적 수준의 정원박람회도 개최하고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맘먹는 평화포럼 연차 총회를 만드는데 장소성 의미에서 최고의 자리다.

지금 일부 정치권에서도 청와대와 국회의 이전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옮겨야 하는 이유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력과 예산낭비의 중심에 있는 청와대와 국회가 서울에 있는 한 대한민국의 발전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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