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같은 것을 울궈먹기 하기에 좋은 것들이 많다. 인기드라마가 생기면 몇 번이고 재방송하고 그것도 모자라 종편이나 케이블방송에서 반복적으로 방송을 한다. 오래전에 대학교수들 중 많은 분들이 강의노트 하나가지고 몇 십 년을 울궈먹었다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있었다. 시험 때가 되면 아는 선배를 찾아가서 시험문제를 물으면 어김없이 이번에도 같은 문제가 출제돼서 교수님의 철밥통 그릇과 울궈먹기를 힐난하곤 했다.

울궈먹기 좋은 것 중 암만 반복을 해도 시비가 안 걸리는 것이 결혼식 주례사다. 주례사의 특징은 청중은 여러 명이지만 거의 주의 깊게 듣지도 않고 혹여 시간이라도 길게 걸리면 쓸데없이 말이 길다고 핀잔을 듣게 마련이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별로 내세울 것 없는 필자에게도 주례부탁이 들어오게 됐다. 내 결혼식에 주례선생님의 주례사도 기억을 못하는 터라 주례사를 한다는 것이 탐탁치가 않아서 고사를 했지만 다른 대안 없이 부탁하는 바람에 수락을 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결혼식 주례사는 뻔해서 특별히 자료조사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동안의 예식장 순례 경험을 토대로 좋은 주례사를 떠올려봤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이 모 대학교수님이 사용한 방법을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그 분은 신랑신부가 사전에 인사를 하러오면 미리 숙제를 주고는 그 내용을 주례사로 대신 했는데 나름 좋아서 울궈먹기로 했다.

신랑 신부에게 3가지 질문을 주고 둘이서 함께 답안을 작성해 오라고 했다. 첫 번째 질문은 ‘앞으로 부부생활을 어떻게 하고 살 것인가?’ 둘째는 ‘앞으로 부모님께 어떻게 하고 살 것인가?’ 마지막 세 번째는 ‘앞으로 사회에 어떻게 하고 살 것인가?’로 하고 신랑 신부가 답을 적어오면 실제 결혼식장에서 “이 사람들이 앞으로 이렇게 살겠답니다.”라고 읽어주면 멋진 주례사로 된 것인 양 자족을 했다. 이렇게 창의적이지 못한 주례사는 다른 결혼식에 축하객으로 갔다가 똑 같은 내용이 나오는 바람에 낯 뜨거운 경험을 하게 됐는데 그래서 앞으로는 주례를 맡는 일은 절대 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것이 하기 싫다고 안하는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의형제로 지내는 후배의 아들 녀석이 결혼을 하는데 주례를 해달라는 부탁이 왔는데 신랑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성정과정을 지켜본 처지라 주례의 의미가 있으며 신랑이 꼭 해달라고 간청을 하니 안할 방도가 없게 됐다.

그래서 그동안의 식상한 주례사를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마침 얼마 전에 접한 책 중에 ‘생각의 틀’에 대한 내용이 좋아서 마음에 담아뒀는데 ‘내 생각의 틀에 상대방을 넣기 보다는 내 생각의 틀을 넓혀라’는 말로 해석을 했다. 상대방의 생각을 내 생각에 넣으려는 순간부터 갈등이 시작되고 싸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이는 부부간에도 그렇지만 부모, 형제, 자식과 사회생활에도 모두 적용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생각의 틀이 고정된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종교분쟁이나 이념의 충돌, 정치적 갈등 심지어 지금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도 자기의 생각의 틀에 고정돼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조경분야를 돌아보면 역시 생각의 틀에 붙잡힌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조경학이 대한민국에 들어오면서 조경이 지니고 있는 개념과 전공이 세분화되면서 서로가 자기 전공분야의 독립성과 특수성을 주장하게 됐다. 그런데 그것이 밥그릇 싸움으로 연장되다보니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으로 변했다. 그러다보니 타 분야에서 조경 관련된 공사를 수행하고 있는 환경까지 초래하고 됐다.

조경단체 총연합이 구성된다고 한다. 흩어져 있는 조경분야의 목소리를 담아서 조경산업의 생존을 위해 새로운 활로를 찾겠다는 포부가 생기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토부와 환경부와 농림축산부, 산림청과 농업진흥청 등의 관청과 걸려있는 현안들을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게 되면 점점 조경과는 멀어지게 된다. 조경분야의 리모델링이 절실한 시점이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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