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산은 아내이자, 최악의 재산도 아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반대로 아내의 처지에서 볼 때도 같은 조건이 성립된다는 말이다. 결혼이라는 생활은 어떻게 보면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 만나 최상의 조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둘의 관계는 가장 많은 변명으로 점철되는 이혼 사유의 핫 키워드인 ‘성격차이’가 확실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여기 올해로 결혼 17년차를 맞이한 부부가 있다. 그들의 이름은 46살 박성구씨와 아내 41살 김상임씨가 바로 주인공들이다. 이들에게는 북한 김정은이도 무서워 한다는 2남 1녀 세 명의 10대 자녀들도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주목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폭염으로 전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던 올 8월 어느 날 남편 성구씨는 아내에게 이혼합의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이혼서류를 내 보였다. 아내 상임씨는 어이가 없었지만 침착하게 서류를 모두 찢어버렸다.

하지만 성구씨는 작정이라도 한 듯 법원에 찾아가 서류를 다시 받아 내밀었다. 상임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난 17년이라는 결혼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남편이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과 마음의 준비조차 하지 못한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었기에 억울함과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끓어올랐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이들의 냉각관계는 그야말로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이 불만이고 못마땅했다. 작은 문제는 말다툼으로 크게 번졌다. 다른 사람들처럼 홧김에 상대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 동안의 서운했던 일들과 감정들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지난 17년간 부부가 쌓아 온 성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급기야 8월에 성구씨는 이혼서류를 두 번이나 상임씨에게 내밀 게 되는 사태까지 가게 된 것이다. 첫 번째는 상임씨가 찢었지만 두 번째 내민 서류에는 상임씨도 도장을 찍었다.

 

“도장을 찍는 것을 봤을 때 조금 당황했다. 어떤 말이라도 하면서 한 번은 대화를 시도할 줄 알았는데 행동만 있으니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고 성구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멋쩍어 한다.

 

그런 파경의 위기가 있은 2개월 후. 지금 이들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었다.

도장을 찍은 후 며칠 동안 서로에 대해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헤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미묘한 감정의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이미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사업실패로 몇 개월간 생활비도 못주고 힘들게 했던 내 자신의 무기력함에 지쳐있던 것을 아내에게 화살이 간 것 같다”고 성구씨는 말한다.

 

요즘 이들 부부는 가능하면 주말에 공원이든 장터든 같이 다닌다고 한다. 비록 좋은 환경의 전환점의 계기는 아니었지만 이혼서류에 도장 하나 찍은 것이 오히려 시간을 돌려놓는 중요한 시점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레가 된 것이다.

 

“그 일이 있고부터 우리는 여행을 같이 계획하고 가능하면 매주 근교에라도 나가고 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손을 잡고 다녔다.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작은 행동이지만 큰 파고를 넘는 중요한 연결고리임을 새삼 느끼고 있다.”

 

남편 성구씨에 대해 상임씨는 요즘 많이 놀란다고 한다. “남편이 많이 노력하는 게 보인다. 너무 자주하면 버릇 나빠진다고 1년에 1~2회 하던 설거지도 자주해 주고, 아이들도 잘 챙겨주고 있다. 말도 툭툭 던지는 타입이었는데 조금 더 세심해지고 다정하게 변했다. 이러한 모습들이 조금 애잔하게 느껴질 정도다.”

 

부부 간에 서로에게 설렘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건물을 보듯 나무를 보듯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무미건조한 일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임씨는 설렘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편에 대한 설렘은 남편의 행동과 변화가 가져다 준 선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올 여름은 서로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부부는 상하관계도 아닌데 가부장적인 생활을 해 온 것이 조금 지나친 것 같다. 완전한 회복을 한 상황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한쪽 눈이 되고 팔이 되어주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고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성구씨는 아내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이에 상임씨도 “미안한 게 많다. 남편이자 아이들 아빠로서 짊어진 짐이 많다. 아내로서 삶의 보조자로서 몫을 다 해 나갈 것이고, 늘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서로를 아껴주면서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이들 부부는 아직 도장 찍은 이혼서류를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 합의 이혼을 위한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불행과의 이혼을 통해 행복이라는 달콤함을 담기 위함이다. 성구씨 부부는 아무리 크게 싸워도 한 이불 속에 같이 잠들고 함께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각방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단서다. ‘각방=별거=이별’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중요한 문제를 슬기롭게 이겨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결혼 15년이 넘으면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의리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사랑이든 의리가 됐든 서로에게 느끼는 설렘의 감정이 없다면 그건 상대가 문제가 아니라 보여주고 있는 내 자신의 문제가 아닌 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남편은 격렬한 형의 에로티시즘을 바라고 있지만 아내는 단순히 손을 잡는다거나 입맞춤을 기다린다. 권태기의 여자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랑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부부에 대해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남자는 아직 여자의 마음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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