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있어도 목적은 결국 물질적 만족감이 충족되어야 인생을 잘 살았고, 잘 살고 있구나 라며 흐뭇해한다. 어떠한 가치를 항상 좇는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항상 이중적 내면과 맞닥뜨리게 되고, 갈등을 겪으면서도 결국 현실 앞에 무너지기만 한다.

김춘수의 꽃을 읽을 수 있는 시간조차 우리는 소비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잔혹한 현실을 개탄해야 한다.

현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오아시스를 그리워하듯 마른 목을 적시기 위해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살핀다. 걷고 또 걸었다. 걷다보니 골목 한 구석에 자리한 휴 플레이스를 발견했다.

온통 초록색으로 눈이 편안해 진다. 바람은 들어왔다가 미쳐 빠져 나가지 못한 채 구석구석을 돌아 골목으로 빠져나간다.

휴 플레이스는 그런 곳이다. 나무로 벽을 만들어 뒤에 자리하고 있는 시멘트벽을 예측할 수 없도록 했다. 입구에 버팀목으로 서 있는 모과나무는 싱그러움이 자리하여 피로감을 덜어 준다. 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흔한 철재의자를 끌어당겨 앉아 잠시 넋을 놓고 있어도 좋다.

아담하게 조성된 가든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피고, 지고나면 연산홍이. 그리고 장미가 피고… 또 지고…

인생의 피고 지는 굴곡과 참으로 닮았다.

선선한 바람이 좋고, 그윽하게 퍼지는 커피 향이 좋다. 시선을 들어보니 루프탑이 보인다.

3층 루프탑에서는 또 다른 시선이 사로잡는다. 정원 속에서 나무와 풀, 초록에 빠져 한 잔의 커피를 즐겼다면 루프탑에서는 기다란 투명 컵에 적당히 담긴 노란 맥주를 생각하게 한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주변은 어느새 황금빛으로 물든다.

이중적 내면… 그랬다. 잔혹한 현실을 개탄해야 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자연이 그려낸 풍광 앞에 겸손해지고 그것을 감탄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인생의 최대 역설은 살아서 빠져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로버트 하인라인은 아마도 천재였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도시에서 발버둥 치며 숨이나 꼴딱꼴딱 쉬고 있을 때 휴 플레이스와 같은 오아시스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도시=인생’이라는 공식대로라면 결국 살아서 빠져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각박한 도심에서 휴 플레이스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는 것이다.

 

키워드
#주간힐링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