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더불어민주당, 파주을) 국회의원

내 부모, 내 조상 묘라면 맘 편할 법도 하겠지만, 연고 없는 묘들은 어쩐 일인지 숙연하면서도 낯설다. 죽음도 우리의 삶의 일부분인데 묘지는 여전히 가까이 하기 어려운 장소로 남아있다. 이는 매우 정상적인 듯 하면서도 새삼 의문스러운 일이다.

여러 문헌을 참고해 보면 전국에 걸쳐 묘지 수는 2100만 기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주거면적의 1/3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전 국토의 묘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묘지 신설이 까다로워지고, 화장·수목장 증가 등 장묘 문화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어 묘지 수 증가는 주춤해졌지만, 종래에 조성된 묘지 풍경은 여전히 별다른 변화 없이 존속되고 있다.

묘지의 소유 주체도 다양하다. 개인 묘들이 가장 많겠지만 종교단체, 법인, 종중, 가족묘 등 사설묘지도 있고, 지자체 공립묘지도 있다. 또 관리 상태에 따라 무연고 묘, 묘지주가 있지만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묘도 있고, 애시당초 공동묘지로 조성된 곳과 자연적으로 형성된 묘지 밀집 지역도 있다.

현대사 속에서 공동묘지라는 집단매장 형태는 주로 1960~70년대 주로 조성되었고, 서울의 경우, 인구가 과밀화되면서 그 주변부인 경기도권에 대규모 공동묘지가 집중 조성되기도 했다. 서울의 성장을 위해 주변지역이 희생한 것이다. 그런데 도심의 확장을 거듭하면서 기존에 형성된 대규모 묘지 공간들이 도시공학적 관점, 환경과 자연경관적 관점에서 큰 숙제를 남기고 있다.

그간에 우리 사회는 묘지 공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재했다. 아니, 어쩌면 회피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누구도 선뜻 나서 묘지 경관의 혁신을 주창하지 않았다. ‘유교적 전통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 여길 정도는 아니더라도, 묘지에 관한 문제 제기는 ‘감히 우리 조상이 묻혀 계신 묘를 뭐 건드리려 해’라며 불경스러움으로 받아들여질까 주저됐을 법 하다.

산수 좋고 양지 바른 곳을 찾아 자리 잡아 온 묘지의 형성은 자연스러운 정신문화의 산물이다. 아쉬운 것은 산업화 시기부터 지금까지 국토의 효율적 활용과 자연 보존이라는 대의 아래 적절히 지속가능한 관리 방향이 제대로 수립된 적이 없다는 데에 있다. 이는 관료와 정치권 모두의 총체적 책임이다.

한편 정부는 자연장, 수목장 활성화를 적극 주창하고 나섰지만 사실 이것도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변형된 형태로 국토의 묘지화를 가속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새로운 장지를 수목장화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존의 공동묘지를 변모시키면서 신규 장례 수요를 흡수하는 방향으로 가야 국토자원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시급히 묘지에 대한 재창조를 고민해야 할 때다. 망자의 품격 있는 안식과 산 자의 쾌적한 생활이 조화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아주 수려하면서도 특별한 공간이 되게 해야 한다. 유족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일말의 거리낌 없이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묘지가 아니라 인문적인 묘지공원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편백나무 숲이나 금강송 등 선호종이 울창한 숲 지대로 재구성 한다면 사계절이 아름다운 도시숲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납골당과 같은 시설의 경우에도, 주민들을 위한 아주 건축미학적인 도서관, 문학관 기능과 융합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 사례처럼 묘지공원 안에 유명한 문호나 가수, 연예인이나 사상가들의 묘역을 두고, 각종 예술조형물들도 설치하는 등 공간에 스토리와 미적 감성을 입힐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 전역에 걸친 묘지 공간에 일대 혁신을 기할 수 있는 입법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많은 고민 끝에 ‘집단묘지 등의 정비 및 경관개선 특별법’을 대표발의를 앞두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됨으로써 삭막한 봉분묘 중심의 경관을 온 국민이 힐링할 수 있는 사색과 휴식의 공간으로 변모하길 기대해 본다.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줄 가장 아름다운 장례문화가 무엇일지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박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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