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 칼럼] 코리아 둘레길을 조성한다구요?
[김부식 칼럼] 코리아 둘레길을 조성한다구요?
  • 김부식
  • 승인 2016.06.23
  • 호수 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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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주 청와대에서 열린 ‘문화관광사업 경쟁력 강화회의’에서 우리나라 동·서·남해안과 비무장지대(DMZ) 접경지역 등 약 4500㎞의 한반도 외곽을 네모지게 연결하는 걷기여행길인 ‘코리아 둘레길’을 2018년까지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세계적인 걷기 순례길인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순례길 1500km의 3배가 넘는 신기록(?)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리스도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며 걸었던 길이라는 유래가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프랑스 길은 프랑스 남부 국경을 출발하여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이르는 800km의 여정으로 하루에 20여 km를 걸어서 한 달이 걸리는 코스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국내 여행자도 걷다보면 만난다는 곳이며 연간 약 30만 명이 순례길을 찾아온다고 한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자아를 찾는다는 거창한 계획으로 한반도 횡단 걷기여행을 한 적이 있다. 임진각을 출발하여 연천, 철원, 화천, 양구, 원통, 진부령, 거진을 거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330km를 11박 12일 동안 걸었다.

1월 초에 시작한 걸음질이라 자아를 찾기보다는 추위와 고통 속에서 하염없이 멍 때리기를 하며 걸었던 것 같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때 찾고 싶었던 자아가 이제야 조금씩 보이는 느낌이다. 그래서 걷는 것이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생기자 너도 나도 배낭 메고 제주로 떠나고 지리산 둘레길이 생기자 구례 등지로 향하고 있다. 바야흐로 ‘걷기 시대’에 돌입한 기분이다. 그래서 각 지자체는 지역마다 여기저기에 걷는 길을 조성하여 홍보와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붐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코리아 둘레길 조성은 정부주도 방식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역사·지리 전문가가 참여하는 상향식으로 하고, 전통시장과 지역관광명소·트레일 러닝 등 이벤트와 연계하여 지역관광 활성화를 촉진할 계획으로 한다.

한국관광공사 누리집의 ‘걷기여행길’을 찾아보면 전국에 1500여 개의 걷는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강원도가 214개 코스로 가장 많고 전남이 213개로 두 번째 많으며 서울이 185개 코스, 경기가 184개가 있다. 묘하게도 1, 2위가 1개 코스 차이가 나며 3,4위도 1개 코스차이가 난다. 가장 적은 세종시에도 11개 걷기 여행 코스가 있다.

코리아 둘레길 4500km를 조성하면 물론 좋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기록과 숫자에 연연하며 폼을 재는 구태를 반복해야할지 모르겠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은 9세기에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유럽 전역에서 많은 순례객이 찾아서 세계적인 도보 관광지가 됐다. 코리아 둘레길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3배가 넘는다는 숫자에 얽매이다 보면 본말이 전도 될 수 있다.

4500km나 되는 코리아 둘레길을 있는 길을 기준으로 조성하겠지만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조성한다는 계획에서 4대강 사업의 숨결이 느껴진다. 코리아 둘레길 조성을 정부주도가 아닌 민간에서 코스와 지역관광, 각 종 이벤트를 개발한다는데 시간에 쫓기면 졸작이 나오기 마련이다.

만들고 나서 관리를 못해서 책임 추궁하느라 시간을 보낸다면 코리아 둘레길에 거미줄이 쳐질까 걱정이 앞선다. 산티아고 순례길 정도는 아니더라도 각 지역마다 역사와 문화를 내세울 수 있는 스토리를 차분히 만들어야 한다.

코리아 둘레길의 녹색인프라 구축도 신중하게 계획돼야 한다. 그동안 각 지자체에서 둘레길을 만든다고 자연훼손을 자행한 사례가 수없이 많은 것을 경험했다. 코리아 둘레길은 반드시 전문가그룹과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해서 조성돼야 한다. 자칫 소홀해서 지역주민들이 플랜카드를 들고서 둘레길에 나앉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정부는 코리아 둘레길이 완성되면 연간 550만 명의 외국관광객 유치와 7200억 원의 경제 효과를 내세우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방문객은 연간 30만 명이 채 안 된다. 근거가 모호한 자신감은 거품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4대강 사업을 끝내고 전직 대통령이 자전거 길에 나타났을 때 만감이 교차한 것과는 달리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끝내고 코리아 둘레길을 걷는 모습이 멋지고 아름답게 보였으면 좋겠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김부식
김부식 kbs3942@latimes.kr 김부식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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