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각산(명승 제10호)-만경대에서 바라본 인수봉 <사진제공 문화재청>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라는 김상헌의 시조로 잘 알려진 명승 삼각산은 마치 수묵화에서 드러난 듯 선이 굵고 부드러우며 담백하기까지 하다. ‘삼각산’과 ‘한강수’는 조선의 왕도를 상징하며 조국애와 충정의 의미로 줄곧 표현되어 왔다. 삼각산은 백운대·인수봉·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주봉을 이룬다. 산 비탈의 경사는 대체로 70°를 넘나들 정도로 가파르며 특히 만경대 정상부의 불규칙한 형상 등 산세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인수봉의 암벽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등반가들에게는 정복의 대상이기도 하다.2003년에 명승으로 지정된 삼각산은 서울시, 경기도 고양시, 양주시, 의정부시에 걸쳐있으며, 조선시대 북한산성이 축조된 이후부터 북한산으로 불리우고 있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삼각산)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바로 이 삼각산을 말한다. 그리고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할 때 백운대에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한 석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비석이 있어서 길을 다시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던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삼각산에는 독립운동가 정재용이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바위에 정자체로 새긴 3·1운동 암각문과 북한산성의 암문인 위문 등 문화재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또한 등산로를 비롯해 여러 접근로에서 사찰들과 산성 관련 유적지를 통과하며, 근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장소 또한 적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삼각산에서 북쪽을 보면 도봉산이 보이고, 남쪽으로 서울 전역이 내다보인다. 한편 삼각산은 한양의 진산으로서 한양의 외사산 범위에서 조망되는 초점경관이기도 하다. 외사산을 중심으로 멀리서 삼각산 전체를 조망함으로써 삼각산은 서울 도시경관의 배경이 되는 원경이 되고, 우이동 우이천변에서 만나는 조망경관이 뛰어나다.

유광천의 유삼각산기에 의하면 ‘삼각산 대맥은 동쪽으로 돌아서 남쪽으로 뻗어 중앙을 둘러 감싸고 북한산 한 구역을 열었고, 문수봉 한 갈래가 남쪽까지 뻗어 왕성의 북악이 되어 우리 억만년의 큰 복의 기반이 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하늘이 만든 서기(西岐)이다’고 하듯이 삼각산은 역사와 삶의 터전이자, 조선의 중심지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와 함께 해온 뛰어난 명승의 하나이다.

<자료제공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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