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젊은 여자 프로골프 선수들이 세계무대를 휩쓸고 있다. 골프를 모르는 사람들도 오래 전부터 박세리라는 이름을 알고 있으며 최근 여자 프로골프 선수들의 성적과 상금 규모를 보면서 관심과 부러움을 사고 있다. 반면 남자 프로선수들의 경우는 세계 정상의 벽이 아직은 두텁게 느껴지고 있다. 세계무대 진출의 교두보가 되어야 할 국내무대가 여자골프대회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으며 상금 액수는 그보다 훨씬 적은 규모에 이르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해외에서 고군분투하며 선전하고 있는 대한 남아들의 소식을 접하면 박수가 저절로 나온다.

지난 5월 9일 월요일 새벽에 또 한명의 한국 청년이 큰 박수를 받을만한 즐거운 소식을 전해왔다. 대회가 있는 곳마다 찾아다니는 경력 때문에 골프 노마드(유목민)의 별명을 가진 약관 21세의 왕정훈 선수가 EPGA(유럽프로골프투어) 하산2세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

이 젊은 프로골프선수를 소재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진로와 자기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청년들과 주위 분들에게 교훈이 되는 점이 많기 때문이다.

왕정훈 선수는 청소년 시기에 국가대표는커녕 상비군에도 들지 못하는 평범한 아마추어 선수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세계무대 진출을 향한 열정의 시작을 중국무대에서 출발을 했다. 2012년 17세의 어린나이에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은 중국에서 프로로 데뷔를 했다. 한번은 원아시아 대회의 참가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참가비결제를 신용카드로만 하게 되는데 나이가 어려서 신용카드가 없으므로 어머니 신용카드로 지불해도 되는지를 이메일로 문의하는 순진무구하면서도 목표를 쫓는 열혈 청년이었다. 어린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이를 악물고 열정과 오기로 버틴 덕에 CPGA(중국프로골프) 상금랭킹 1위가 되었다. 그러나 워낙 세계수준과 차이가 나는 중국골프라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골프 상금왕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유럽무대에 이따금씩 얼굴을 내밀 기회를 갖게 되었다.

유럽골프투어인 ‘하산2세 트로피’ 대회가 모로코에서 열리지만 왕정훈 선수는 정식 출전자격이 아닌 대기 3번의 순위로 올라있었다. 이에 왕정훈 선수는 출전 가능성을 확신하며 머나먼 모로코까지 날아갔다. 비행기도 대기, 숙소도 대기, 대회출전도 3순위 대기였지만 그는 놓칠 수 없는 기회라며 꿈을 키웠다.

마침내 3명이상의 불참자가 생겨서 대회에 출전하게 된 왕정훈 선수는 최종라운드에서 스페인의 나초 엘비라 선수와 공동선두가 돼서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1차전에서 왕정훈 선수는 샷 미스로 거의 질 뻔한 경기를 기사회생시켰다. 상대선수의 이글 퍼트보다 2배나 먼 거리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고 이에 당황한 상대선수는 이글퍼트의 실패에 이은 쉬운 버디로 2차 연장에 돌입을 했고, 위기 뒤에 찾아온 기회인 2차 연장전에서 멋지게 승리를 했다.

왕정훈 선수의 유럽골프투어 정복까지의 과정을 보면 어리지만 본받을 점이 많다. 첫째, 우선 국내의 강자들이 많은 곳에서 지루한 경쟁을 해야 하고 대회가 적은 국내 환경 탓에 자칫 낙담을 할 수 있지만 그는 일찌감치 중국무대로 눈을 돌렸다. 본인의 골프선수로서의 진로를 해외진출을 목표로 했으므로 큰 무대로 갈 수 있는 교두보를 해외에서 찾은 것이다.

둘째, 가능성이 있는 경우로 판단되면 젊은 패기로 과감하게 밀어부치는 도전정신이다. 3순위 대기선수 신분이지만 출전 확신을 갖고 열 몇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모로코까지 달려간 것이다. 미리 포기 했다면 그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었다.

셋째, 기회가 오면 이루고 말겠다는 무서운 집념이다. 연장 1차전에서 누가 보아도 왕정훈 선수가 패배할 것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기사회생 시킨 것이다. 그는 전략을 세운 후 확신을 갖고 친 버디 퍼트를 성공 시켰고 상대방의 기를 꺾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대한민국에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방황하는 젊은이가 많다고 한다. 오죽하면 ‘중2병’보다 더 심한 병이 ‘대2병’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그러나 젊은 시절의 방황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아직 조경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과 젊은 조경인들에게 누구에게나 기회는 있으며, 준비된 자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는 진리를 공유하고 싶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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